‘일하는 모습’ ‘사랑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는 것.

( http://sternesjh.blog.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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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곳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 ‘사랑하는 모습’ ‘죽음을 맞는 모습’을 주목, 확인하는 것이다.
..The easiest way of making a town’s acquaintance is to ascertain
how the people in it work, how they love, and how they die.’
( 페스트(The Plague 1947), 까뮈 Albert Camus, 1913-60)

어제오늘, 한국의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앙천할 사건들은
‘70년전 한 유럽인이 주목했던 사회접근법'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19살 수리공을 죽음으로 몰고간 그 ‘지하철 공사와 외주회사’의 일하는 모습…
남양주 공사에서의 일용직들의 떼죽음을 야기시킨 ‘고용 시스템’…
한 공시생을 자살하게 하고, 그런 그에 의해 무고한 죽음이 겹치는 사회…
그리고, 경제를 안정시킨 OECD국가들중 ‘가장 불행하다는 한국노인들이 맞이할 죽음까지도…

되돌아보면,

2년전, 300에 가까운 생명이 바다에 매장되던 ‘세월호 참사’도…
대학입학을 기뻐하던 학생들을 덮은 마우나오션 리조트 건물붕괴 등등 수많은 인재들..

우리 사회가,
–70년전, 프랑스 작가 까뮈의 눈에, 마치 14세기 2천만명의 유럽인을 죽음으로 몰았던 ‘흑사병’을 재현시킨 사회로 보였던 그 유럽처럼–,
‘이유도 모르고 무방비속에 수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되어서야…

*

1957년, 프랑스 작가라는 이름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까뮈’이나
본디는 프랑스계 이민자로 북아프리카의 프랑스식민지 알제리(Algeria)에서 태어나 성장한 작가.
대학 졸업후, 아버지의 나라 프랑스로 돌아와, '펜을 든 자'로 작가, 저널리스트로 활약한다.

이런 배경으로하여, 까뮈는
당시 ‘돈버는 일(doing business with the object of getting rich)’에 피폐되어가고 있는 유럽인의 인간성의 몰락을,
–자신이 잘 아는 알제리의 도시, 오랑(Oran)시를 무대로–
전염병 페스트(흑사병)으로 폐쇄되는 도시에 남겨진 사람들의 떼죽음으로 비유,
소설 페스트를 적었다.

그리고 당시의 유럽의 지성을 각성시키며, 그에 대한 평가로 노벨상의 명예를 얻게된 것…

우리는 –1947년에 적힌 이 까뮈의 소설 를 통해–,
지금은 ‘선진 사회’라고 불리우는 그 어떤 곳도
불과 ‘70십년 전’까지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 무절제속’에서 부패와 혼돈 속이었음을 알게된다….

*

한편, 그런 유럽이 그러했듯,
지금은 혼란한 우리 사회도 ‘십년 후, 그때가 되면 절로 이 선진사회처럼 될 것’이라는 안이함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도 있는 듯..

유럽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사회상에 눈뜨게 하고 소설속의 의사와 기자와 같은 용기있는 행동을 하게했던 소설 페스트는,
작가의 모국인 '알제리'의 사람들과 사회까지도 변화시켰을까?

2016년 현재, 각 나라의 1인당 GDP:

프랑스 35,670 USD
이탈리아 28,484 USD
알제리 3,316 USD… (http://www.tradingeconomics.com/algeria/indicators)

그저, 지중해를 사이에 두었을 뿐이어서 '자연적 조건'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인건만….?
또, 기원전 즉 약 2천년전에는 의 후손인 알제리 사람들이건만…?

결국, 사회는 –'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

우리 한국인들은 알제리를 '반면교사'로 하기를 빈다.

안심하며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느는 한국이기를!
'바르게 일하는모습', '바르게 사랑하는 모습'으로 소진하는 100년 후, 평안히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은 더욱 아름다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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