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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과 일본인의 ‘허리’

미국캘리포니아주의밝은햇살과자유속에서오랜학업과연구로박사학위를딴A교수는,

한때객원교수로초청받아독일베를린에서지내었던당신의1년을되새길때마다,고개를설레설레내저으신다.

생활속에서확고한도덕관과규범을고집하는독일인들의융통성없고경직된태도가(적어도그의눈에는)

다감한자유인이자한국적지성인A교수를자주진퇴양난의고충(苦衷)빠지게했었던

호탕한A교수지만당신의독일에서의낭패담을들려주실때만은,정말로난감한표정을절실히얼굴에드러내신다.

한편,내경우,

독일에서생활하는동안얻은느낌은안정감이었다.

일단그네들의규범과도덕관을파악하면,

내자신의행동이유발할<‘/‘,’/불쾌를확연하게예측,준비>할수있었기때문이다.

그네들의사회논리를존중하여그범주안에서행동을했을때에는,예외없이그네들의친절과우정이뒤따랐으며,

느슨한기분으로조금허실애매한행동을했을때에는,매몰차게그네들의경멸과비난의과녁이된다

반해서,한국사회익숙한사람에게는,

그때그때의행동자체보다도–<어떤사람인가성격은?지위는?부자?…’더평가의기준>이되고,

또는평소의인간관계이라는이름으로<암묵적으로’대강대강이해하고용서받는것’에익숙한사람>에게는,

특히나후자의,<‘눈앞에벌어진일만의타당성>을따지며

<가차없이신랄히과실을지적해오는>독일인들이모습은,매정하기짝이없는것일지도모르겠다

물론,그들과’다른문화적배경’을가진외국인인나에게,

독일인들의논리성,합리성은때때도반박,challenge의여지‘도있어보일때도있으나,

그럼에도,다음2가지이유로해서,

나는지금도<독일인들의‘Gemeinschaft-사회상을긍정한다>.

*

첫째는,<명료함>이다.

본디,인간의불안혹은근심은

앞을예측할수없는불확실성에서오는것이대부분이다.

독일사회의구성인들이공유하는분명한도덕관과규범은,

<굳이상대의안색을살피거나눈치보거나,혹은은근히과한보상이나기대를품는등>

생활속에서의부적절한에너지나시간의낭비를떨치게한다.

지난날,’군주포도청으로대표되는권력의알량한기분변화에의해

부당하게도수많은삶과생명력이일그러지고손상당했던인류의긴역사를헤아릴때,

,똑같은행동이라도,행위자의성분이나지위에따라<‘달리’평가되는무절제’는’세련되지못한’추함>이다.

-이것이야말로,그사회의구성원들에게,커다란혼란과불안을갖게하는터이다….

<자신의행동/삶을명확히하며,그뒤따르는책임을질각오되어있다면>,

독일처럼살기좋은곳은없지않을까싶다.

그렇기때문에,독일에서는,

상황에따라서는,외국인이라하더라도,'<보다합당한논리>를가지고있다면’,

당당히다수의독일인의머리를끄덕이게도할수있다…

(이러한독일사회의현정치적양상을블러그이웃인김세린님이힘있는글로적었다.

논문표절,국방장관퇴진–지성인들의정의감을본다

베트남전쟁고아,독일부총리된다!)

*

두번째는,

독일인의<earnest-노력을마다하지않는진지함>이다.

우리들은,

괴테나토마스만의소설주인공,파우스트(Faust)’니이체가적은짜라투스트라(Zarathustra)의모습에서

이미독일인의이러한이상형을읽을수가있다.

이들은<인간의이성적존재로서의자의식성장>을삶의지표로,

결코’노력’을아끼지않는다.

그래서,냉정하리만큼<성실하고근면한모습>을

사회를향해서도삶속에옮기려고분투한다.

진리대로바로살고,

그진리를주위에전하여공유하며,

그래서,삶속에서평안을얻는것

소위삶의명분으로서,독일인들의의식속에자리잡고있다.

그래서,’자신에게조금불편하더라도’,

<사회도덕관과규범이요구하는‘should’생활>을독일인들은수용한다.

*

,이러한그들의<확고한신념과노력>은,

때때로,그들스스로에게<지나치게위풍당당한태도>를취하게하여

뭇작품속에서의악마와의교섭장면을연상시킬정도로

이들은,철저하리만치,<타인앞에서자기를낮추는것을거부한다>.

"누군가가당신앞에서너무굽실거리면,

그것은지금그가’거짓말을하고있다’는것이다"

라는말이독일에는있을정도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이<결코거짓말을하고있지않다는것>을보여주기위해서라도,

이들은결코가볍게<허리를굽히지않는다>.

그들은상대앞에서,

언제나,<‘등을바르게펴고얼굴을똑바로쳐드는’태도>를취하려고하며,

그래서,행여,더욱더세상눈이좁아유연하지못한전형적인독일의촌부’를만나게되면,

본래의독일인의뻣뻣한그태도위에,<자주목을뒤로젖히며턱을앞으로내세우는모습>까지섞으면서,

그들이<일부러친절함을누르며인색한인상을강하게하려는’촌극’>까지도보게된다.

종종<‘자의식의절정에이르는독일인들>은,–파우스트나짜라투스트라로대표되는사람들은

신의수준에까지극히가까이접근하며,

결국은신과의투쟁속에서,<정신이돌아버리는실례>도어렵지않게찾아낼수있다.

그만큼

그들은에일직선으로진지하다‘…

이러한<독일인들의명료함진지함‘>을이유로,

–조금은무뚝뚝하기는하나,<‘이성적인사고와삶의실천에노력하는독일인들과의생활>속에서

나는,<불안을떨쳐낸평안함><진리를좇는나의호기심>이만족되는즐거움을얻을수있었다.

*

한편,인생의전개는흥미로운것이어서,

내가그런독일을떠나살게된나라’일본’은

위에언급한독일과는너무나양극단의일면을가지고있어,

이<새로운천지에서의첫출발>은내게저윽이많은당혹함을느끼게했었었다

(한때,’형제동맹’을맺기도하고

근면성이나단체여행을즐기는등’공통점’도많이지적받는두나라사람들이건만…)

우선,’아이마이(애매曖昧)’라고하는일본어로잘알려진

일본인들의<‘모호한표현력>이는,내가그토록평가하는독일적명료함에지극히상반되는가치.

한,일본인들은,–독일인들의’경직된허리’와상반되게–,

언제라도<상대에게허리를굽히는을마지하지않는다>.

더욱이이<겸허를넘어자조(自嘲)적으로까지보이는태도>는

일본인들에게있어지복(至福)’을느끼게하는미덕인듯,

오히려이’겸허/자조’를,

<‘즐기고있는듯한그들의삶의태도>를보게되었을때는,또다시내눈이휘둥그레졌었다.

내앞에서일본인들은너무나자주허리를굽실대며자신들을낮추어서,

진정이들이나의그어떤모습에존경과예의’를표하고있는것인지,

아니면’타성에젖은그들의일면’을그냥드러내고있는중인지,

외국인인나로서는,판단이서지않을때가많았었다.

그래서내게

<‘불필요한불안과삶의에너지낭비를초래시키는>일본인들의태도이지만,

그뜻이어디에있든–이곳에서일본인들의이모습은,<그렇게’일관되고있다>는점.

이’일관성’은,

한편,표면적으로는독일인들과달리보이면서도,지극히공통되는미덕으로,

내게’늘’친절한미소와예의바른몸놀림으로

나를평안하게해주는것에는차이가없어,

순진한나는또,

금방그네들과똑같은태도로답하며

<그들의원만하고화기애애한시간’>과익숙한’관계’를갖게되었다

*

이렇듯<‘허리를낮추는일본인들>을이해하기위해서는,

우리가마치,독일인을알기위해,괴테,니이체의파우스트나짜라투스트라를인지하듯이–,

일본다례(茶禮)를완성시킨인물,센노리큐우(利休せんのりきゅう1522-1591)’기억할필요가있다.

*

일반적으로

인류의차를마시는행위의목적을<친목돈독>에두는것은세계의공통적인해석이다.

그러나,이를실천하기위해치루는그’형식’은

각나라에따라’제각기의특징’을가지고있다.

유명한영국의애프터눈티(afternoontea)’에서볼수있듯이,

우아함과유우머가섞힌담소를나누면서정을돈독히하는예가있는가하면,

남미의아르헨티나에서처럼,

마테(MateCocido)’라고하는한잔의진한녹차를모두가돌려마시며,

노래도부르고춤도추며흥겹게마시는찻자리도있다.

한편,일본의경우,

<질소하고조용한와비사비(わびさび)‘>준한독특한차문화로유명한데,

이곳에서,우리는

스스로허리를낮추는‘<일본인들’의식의근거’>를읽어낼수가있다

*

와비차는본래,

승려인무라따쥬코우(村田珠光むらたじゅこう、1422-1502)

당시의화려하고현란한중국찻기를동경하며흥청망청히행해지던귀족들의세계를외면하며,

질소하고간소한찻도구로도조용히차를마시며평안을나누는<와비차(わびちゃ)의세계>를창시,

그후,오늘이포우스팅에서소개하고자하는

센노리큐우에의해<일본의정통적차의식(다례茶禮)>으로확립된,일본을대표하는문화이다.

특히나,리큐우에이르러서는,

<모든불필요한장식을절제한긴장된정적속에서–‘(와비わび)’

마음을비움으로써–‘(사비さび)’

평온을얻는"

차를즐기는공간(空間)의미가구상되었다.

그래서,그는

타다미(90X180cm)2-3장의좁은차만의공간찻실을만들고

이공간에들어가차를즐기기위해서는

마음을비우는과정으로<먼저몸을굽혀자신을겸허하게할것>을권하여

일부러이찻실의아주낮게설계하였다.

(사진왼쪽의좁고낮은입구가차실의문)

당시대의장군이었던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조차도’한잔의차를마시기위해’

–‘다례’는그사회의교양인으로서의풍모를갖추는것이어서

리큐우의찻실에들어설때는

그낮은문을통과할때마다언제나자신의머리를낮추고허리를굽혀야했다.

한반도를넘보고큰민폐를준잔혹한장군이었던그는

결국,그정도의인간이어서,

일본다례를통해서도인격적고양을이루지못하고,

오히려,리큐우의찻실에들어가면서<허리를낮춘경험>을모욕으로가슴에담으며크게불만을품었던듯

결국,리큐우는그의나이70세의때,

이토요토미히데요시로부터할복의명을받게되고,

그래서,이’아름다웠던인재’는,스스로목숨을끊어야하는처연한화()–자결을해야했다

히데요시가리큐우에내린이무모한명령에는,그원인으로4,5개의역사적추론이열거되나,

무엇보다도,자신이차실에들어갈때마다센노리큐우앞에서허리를굽혀야했던일을

옹졸하고조잡한히데요시의인간성은,굴욕감으로밖에는담지못한데에

그감추어진원인이있었음은물론이다.

(토요토미히데요시는,<바르고성실한거목,리큐우를바르게분별할그릇>이못되었다.

그는,우리조선에뿐만아니라,자국의국민에도커다란폐를끼친악인.)

이렇듯,리큐우자신은,

살아있을시대에는,’험한삶의마무리’를강요받았으나,

후세의일본인들은그를존경하며

그의가르침–"허영을절제한긴장된정적속에서마음을비워평온을얻는"미덕을

오랜동안기억하면서오늘에이르른다.

그리고,이<‘소박하고질소한’리큐우의찻실분위기‘>

일본인들의삶의<이상향(理想鄕)>인것이어서,

그들은지금도생활속에서이를실천하려고하는것.

오늘날의일본사회에서

<‘와비사비라고하는일본인의미의식의정화(精華)’를보게되는것>은이런연유이다.

*

나는가끔,

파우스트나짜라투스트라처럼,신에의도전까지도마다하지않는독일인의강경한허리와함께,

리큐우의삶처럼,조용히허리를굽혀자신을낮추는일본인들의유연한허리를겹쳐떠올린다.

그형태는너무나대조적으로드러나나,

이두허리모두,

삶에대한진지한노력부단한근면을통해

일관해서’인간의저력을드러내는것으로,

나를감복시키고또숙연케한다.

(사진은yahoo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