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말이독일에는있을정도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이<결코거짓말을하고있지않다는것>을보여주기위해서라도,
이들은결코가볍게<허리를굽히지않는다>.
그들은상대앞에서,
언제나,<‘등을바르게펴고얼굴을똑바로쳐드는’태도>를취하려고하며,
그래서,행여,더욱더세상눈이좁아유연하지못한전형적인독일의‘촌부’를만나게되면,
본래의독일인의뻣뻣한그태도위에,<자주목을뒤로젖히며턱을앞으로내세우는모습>까지섞으면서,
그들이<일부러친절함을누르며인색한인상을강하게하려는’촌극’>까지도보게된다.
종종<‘자의식‘의절정에이르는독일인들>은,–파우스트나짜라투스트라로대표되는사람들은—
‘신의수준‘에까지극히가까이접근하며,
결국은신과의투쟁속에서,<‘정신이돌아버리는‘실례>도어렵지않게찾아낼수있다.
…그만큼
그들은‘삶‘에일직선으로‘진지하다‘…
이러한<독일인들의‘명료함‘과‘진지함‘>을이유로,
–조금은무뚝뚝하기는하나,<‘이성적인사고와삶의실천‘에노력하는독일인들과의생활>속에서
나는,<불안을떨쳐낸평안함>과<진리를좇는나의호기심>이만족되는‘즐거움‘을얻을수있었다.
*
한편,인생의전개는흥미로운것이어서,
내가그런독일을떠나살게된나라’일본’은
위에언급한독일과는너무나양극단의일면을가지고있어,
이<새로운천지에서의첫출발>은내게저윽이많은당혹함을느끼게했었었다…
(한때,’형제동맹’을맺기도하고
근면성이나단체여행을더즐기는등’공통점’도많이지적받는두나라사람들이건만…)
우선,’아이마이(애매曖昧)’라고하는일본어로잘알려진
일본인들의<‘모호한‘표현력>—이는,내가그토록평가하는‘독일적명료함‘에지극히상반되는가치.
또한,일본인들은,–독일인들의’경직된허리’와상반되게–,
언제라도<상대에게‘허리를굽히는것‘을마지하지않는다>.
더욱이이<겸허를넘어자조(自嘲)적으로까지보이는태도>는
일본인들에게있어‘지복(至福)’을느끼게하는미덕인듯,
오히려이’겸허/자조’를,
<‘즐기고있는듯‘한그들의삶의태도>를보게되었을때는,또다시내눈이휘둥그레졌었다.
내앞에서일본인들은너무나자주허리를굽실대며자신들을낮추어서,
–진정이들이나의그어떤모습에‘존경과예의’를표하고있는것인지,
–아니면’타성에젖은그들의일면’을그냥드러내고있는중인지,
외국인인나로서는,판단이서지않을때가많았었다.
그래서내게
<‘불필요한불안과삶의에너지낭비‘를초래시키는>일본인들의태도이지만,
—그뜻이어디에있든–이곳에서일본인들의이모습은,<늘그렇게’일관‘되고있다>는점.
이’일관성’은
,
한편,표면적으로는독일인들과달리보이면서도,지극히‘공통되는미덕‘으로,
내게’늘’친절한미소와예의바른몸놀림으로
나를‘평안하게‘해주는것에는차이가없어,
순진한나는또,
금방그네들과똑같은태도로답하며
<그들의원만하고화기애애한‘시간’>과익숙한’관계’를갖게되었다…
*
이렇듯<‘허리를낮추는‘일본인들>을이해하기위해서는,
—우리가마치,독일인을알기위해,괴테,니이체의파우스트나짜라투스트라를인지하듯이–,
일본다례(茶禮)를완성시킨인물,‘센노리큐우(千利休せんのりきゅう、1522-1591)’를기억할필요가있다.
*
일반적으로
인류의‘차를마시는행위‘의목적을<친목돈독>에두는것은세계의공통적인해석이다.
그러나,이를실천하기위해치루는그’형식’은
각나라에따라’제각기의특징’을가지고있다.
유명한영국의‘애프터눈티(afternoontea)’에서볼수있듯이,
우아함과유우머가섞힌담소를나누면서정을돈독히하는예가있는가하면,
남미의아르헨티나에서처럼,
‘마테(MateCocido)’라고하는한잔의진한녹차를모두가‘돌려마시며,
노래도부르고춤도추며흥겹게마시는찻자리도있다.
한편,일본의경우,
<질소하고조용한‘와비・사비(わび侘・さび寂)‘>에준한독특한차문화로유명한데,
이곳에서,우리는
‘스스로허리를낮추는‘<일본인들’의식의근거’>를읽어낼수가있다…
*
‘와비차‘는본래,
승려인무라따쥬코우(村田珠光むらたじゅこう、1422-1502)가
당시의화려하고현란한중국찻기를동경하며흥청망청히행해지던귀족들의세계를외면하며,
‘질소하고간소한찻도구‘로도조용히차를마시며평안을나누는<와비차(わびちゃ侘び茶)의세계>를창시,
그후,오늘이포우스팅에서소개하고자하는
센노리큐우에의해<일본의정통적차의식(다례茶禮)>으로확립된,일본을대표하는문화이다.
특히나,리큐우에이르러서는,
<모든불필요한장식을절제한‘긴장된정적속‘에서–‘(와비わび侘)’
‘마음을비움‘으로써–‘(사비さび寂)’
평온을얻는"
차를즐기는‘공간(空間)의미‘가구상되었다.
그래서,그는
타다미(90X180cm)의2-3장의좁은‘차만의공간–찻실‘을만들고
이공간에들어가차를즐기기위해서는
마음을비우는과정으로<먼저몸을굽혀자신을겸허하게할것>을권하여
일부러이‘찻실의문‘을아주낮게설계하였다.
(사진왼쪽의‘좁고낮은‘입구가차실의문)
당시대의장군이었던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조차도’한잔의차를마시기위해’
–‘다례’는그사회의교양인으로서의풍모를갖추는것이어서—
리큐우의찻실에들어설때는
그낮은문을통과할때마다언제나자신의‘머리를낮추고허리를굽혀야‘했다.
한반도를넘보고큰민폐를준잔혹한장군이었던그는
결국,‘그정도의인간‘이어서,
일본다례를통해서도인격적고양을이루지못하고,
오히려,리큐우의찻실에들어가면서<허리를낮춘경험>을모욕으로가슴에담으며크게불만을품었던듯…
결국,리큐우는그의나이70세의때,
이토요토미히데요시로부터‘할복‘의명을받게되고,
그래서,이’아름다웠던인재’는,—스스로목숨을끊어야하는처연한화(禍)–자결을해야했다…
히데요시가리큐우에내린이무모한명령에는,그원인으로4,5개의역사적추론이열거되나,
무엇보다도,자신이차실에들어갈때마다센노리큐우앞에서허리를굽혀야했던일을
옹졸하고조잡한히데요시의인간성은,굴욕감으로밖에는담지못한데에
그감추어진원인이있었음은물론이다.
(토요토미히데요시는,<바르고성실한거목,리큐우를바르게분별할그릇>이못되었다.
그는,우리조선에뿐만아니라,자국의국민에도커다란폐를끼친악인.)
이렇듯,리큐우자신은,
살아있을시대에는,’험한삶의마무리’를강요받았으나,
후세의일본인들은그를존경하며
그의가르침–"허영을절제한‘긴장된정적속에서”마음을비워‘평온을얻는"미덕을—
오랜동안기억하면서오늘에이르른다.
그리고,이<‘소박하고질소한’리큐우의‘찻실분위기‘>는
일본인들의‘삶의<이상향(理想鄕)>인것이어서,
그들은지금도생활속에서이를실천하려고하는것.
오늘날의일본사회에서
<‘와비사비‘라고하는일본인의‘미의식의정화(精華)’를보게되는것>은이런연유이다.
*
나는가끔,
파우스트나짜라투스트라처럼,신에의도전까지도마다하지않는독일인의‘강경한허리‘와함께,
리큐우의삶처럼,조용히허리를굽혀자신을낮추는일본인들의‘유연한허리‘를겹쳐떠올린다.
그형태는너무나대조적으로드러나나,
이두허리모두,
삶에대한‘진지한노력‘과‘부단한근면‘을통해
일관해서’인간의저력‘을드러내는것으로,
나를감복시키고또숙연케한다.
(사진은yahoo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