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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눈썹’ 오드리 헵번의 또 다른 얼굴 – <안네 프랑크>와 함께

조선닷컴이올린기사속의사진에서

가문신을넣으셨다는짙은눈썹을보며,너무나망측해서,웃음이나왔다.

그분고민이많으셨고한다…,눈썹이흐려서?직업이…<배우>이신분?

여느성형을하셨다는사람들의이야기를들으면,

….,성형을결심하기전까지,

얼마나큰어려움이있었기에,얼마나감당키어려운힘듬이었으면…’

하는연민이먼저든다.-가여운사람들

이분도그런사람들중의한사람,-<하시는일이당신힘에너무버거우셨나‘>보다….

그러나,본디<자신의삶에쉬이불안과불만을느끼는사람들>에게

성형은,<‘냄새나는것위에,그저뚜껑만덮는행위’>일뿐이어서…

*

하물며,<40이넘으면,자신의얼굴에책임을지어야한다>는말도있건만

그간어떻게살아온연륜이길래,

연세가되도록,<손바닥만한당신얼굴하나>제대로다스리지못하셨는지??

제얼굴하나스스로만들지못하는사람이

어찌‘5천만의국민의삶’을어깨에지는정치를하시려하시는지???…

나랏일에,강해<보이는사람>이설자리는없다.

-‘진정한의미로강한사람에게정치는위탁된다.

그는,–이번문신성형을통해–,

<자신이얼마나강하지못한사람인가>를,런<자신의미련함유약함을드러냈을>뿐.

**

그렇게허한웃음이나던내게,

역시<‘짙은눈썹을그리던한여인>이떠올랐다.

연이어떠오르는두사람의정신’이,하늘과땅과같은차이임에는비장감마저느끼며.

물론,그녀가’그렇게짙은눈썹을가졌던것’은,아주젊었을때.(또그럴수밖에여배우였으니까.)

그러나,–우리사회의한정치인과는달리

나이가들면서는더욱당당해진여인.

더욱인간의아름다움을두드러지게한여인이었다.

그래서또,오히려나이가들어가면서,그녀의눈썹은점점더겸손해진다.

젊었을때그토록’검고두껍게’아주두드러지게그려졌던눈썹이

중년이되었을때는,같은검정이나’아주얇고가늘어진것’이되었고

그리고말년에는,’나무기둥색의고동’으로그색의채도를낮춘여인

그리고,연륜과함께,이렇게’마음과정신을아름답게성숙시킨여인’은

자신의힘을필요로하는이웃들을위해사용한다.

,이천지의차이!누구는,그나이에도,제얼굴에밖에는힘을쓰지못하건만…–

물론,젊었을때는,어느젊은이들처럼,

그녀도조금은주저하듯,조금은겁먹은듯한표정

하지만연륜은그녀를훨씬용감하게하였다.

나이가들어서는,–훨씬더가까이,훨씬더깊숙히–,이웃에다가설수있게되었다.

그리고그들속에’서슴없이들어가섞이며’함께나란히걸었다.

오드리헵번(AudreyHepburn,1929-1993).전술한대로,배우이다.

한편,’영국배우로적히나,그녀의삶이거치는나라는복수.-Cosmopolitan.

그래서국적에관계없이세계의어렵고힘든아이들에게커다란사랑을보인

그녀는또한,’Humanitarian-인간애에넘친<인도주의자>’로도불리운다.

***

오드리는,–‘네덜랜드귀족인어머니와영국보험회사에근무하던영국인의아버지의사이–,

1929벨기에의브루셀에서태어난다.

그후아버지의고국인영국으로이전.

그러나,파시즘에공명한아버지는,–오드리가5살때–,가족을버리고…-부모는이혼,

이때부터어린그녀는영국의기숙학교에보내져교육을받는다.

그리고,1939년영국과독일사이에전쟁이시작되던해

어머니는오드리를데리고네덜랜드에귀국.

-6살때부터발레를배우기시작해,15살때는이미유망주로무대에오른다.

그러나,점차나찌즘의침략을받게되는네덜랜드에서의

오드리의생활은너무나암울하고어려운것이었다.

이부(異父)의형제인두오빠는독일의강제수용소에끌려가고,

어머니의형제와사촌들은독일에저항하는귀족이라하여,–,오드리의눈앞에서총살을당했다.

그녀자신도,영양실조로하여,빈혈과호흡곤란,수종,황달등중체로병원에입원하기도

험하고거친삶이었다.

(참고:위의사진은물론,여배우가되어명성을날릴때의오드리의모습.

그러나이보다’조금더어리고천진난만한모습’으로자전거를타고있었으려니

그런신발을신었을그녀의을한번더주목하고파참고로올린다.)

점령군독일에저항한’이런친척들’의영향이었으리라

1943,좋지않은영양으로바싹말랐던15살의오드리는,

네덜랜드Arnhem이라는마을의거리에서자전거를달리고있었다.

자전거산보를즐기듯이,자연스러이,페달을밟아야했다.(그녀의연기는이때몸에배이게된것?)

실은,<밑창에’레지스탕스에전할비밀멧시지’를숨긴신발>을신고있었기에

그리고그녀가무대에올라가발레를추어올린수입은

레지스탕스활동의기금이되었다..

****

한편,오드리가태어난똑같은1929,

독일프랑크후르트(Frankfurt)에서한소녀가태어났다.

그리고오드리보다6년앞선1933,

역시’네덜랜드’로이사해온다.마을은암스테르담.

본명아넬리스마리프랑크(AnneliesMarieFrank,1929-1945).우리에게는안네라는이름으로더욱잘알려져있다.

안네와오드리,두소녀는

–서로다른모습으로–‘같은하늘을공유하고있었다.

-한소녀오드리가,그래도자전거를타고

햇살속을달릴수있었던나찌즘점령하의하늘밑을

-같은나라,같은시대에,

다른한소녀안네는가족들과함께비밀의집에몸을감추고

공포속에서,작은창문을통해서만그저바라다볼수있었을뿐

그럼에도,안네는,–그런생활의하루하루속에서–,

놀라웁도록아름다운<‘사랑과자유에의동경을일기>에적고있었다.

이비밀의집에서2년을지낸194484,독일비밀경찰에발각되어강제수용소에보내진다.

(안네의일기는,이엄청난비극이있기3일전인81일까지계속적히었다…)

그리고네덜랜드가나찌즘에서해방되기2개월전인19453,

‘Bergen-Belsen수용소’에서장티푸스를앓은안네는,그아름다운생명을잃는다.

원인은,오드리와같은영양실조.

다만,더불행히도,안네쪽에는그작고무디어진몸에,’몹쓸병원균’마저가돌습해맞은죽음이었다.

*****

그후,<로마의휴일(RomanHoliday,1953)>에서가련한왕녀를연기하여,일약’세계의연인’이된오드리헵번.

그녀가안네를알게되는것은,

물론,1947년안네의아버지의편집으로출판된<안네의일기(HetAchterhuis,ADiaryofAYoungGirl)>이후였다.

-"Readingherdiarywaslikereadingaboutmyownlife."

안네가적은일기를읽으면서,오드리는<자신의아프고슬펐던소녀시대를읽는것같았다>고말했다.

그리고,1959<안네의일기>의영화화가준비될때,

오드리는누구보다도먼저,안네역의여주인공으로출연교섭을받게되나..,

그러나,아직젊었던오드리는,–지난악몽을다시되새기는것이두려워–이를연신거부한다

(결국,영화속에서’안네역’은FrancesGoodrich가연기하게된다.이영화로

GeorgeStevens감독,그리고남녀주인공FrancesGoodrichAlbertHackett,세사람모두아카데미상을수상한다.

그리고FrancesAlbert는이영화에서사랑을키워실제로부부가된다.)

그러나,’나이가든오드리’는변했다.-성숙했다.

위에올린만년의오드리의활동사진을통해알수있듯,

그녀는적극적으로,<아프리카,남미,아시아등,세계에사는가난하고어려운어린아이들>을위한활동을계속했다.

그리고,1990,Unicef의자선음악회에서오드리는<안네의일기>의귀절을낭독하고있다.

"어린안네가적었던슬픔을넘어비참한인류의역사

보다많은세상사람들에게알려지게되는것,망각하기쉬운사람들에게그기억들을되새기게하는것이라면.."

오드리는<–세상에서안네같은,그리고자신같은아픈성장을하고있는아이들>을위해,

자신이무엇을해야하는지이미잘알고있었다.

"Ithinksheishappythattodayherwordsgivecomforttosomanychildrenhavingahardtime."

지금안네는행복해하고있다고생각되네요.

그녀가남긴글들이어려움속에있는그토록많은아이들에게큰위안을주고있으니까요

삶을다른이들과함께나누는시간을통해서얻어지는참기쁨,참행복,

성숙과함께맛볼줄알게된오드리가그낭독회에서한말이다.

동시대를살았던아름다웠던두소녀,

죽은후에도영원히그영혼은살아있는‘안네와오드리를회상하는사이에,

-어제우리사회에서본,한망측한늙은얼굴의사진을조금은잊을수있었다

정말은,

<‘나이가든다는것,삶을거듭한다는것은,정말은더없는축복>.

그리고’뒤에따라오는세대’에게전할<많은진실들을담은‘넓은뒷등을갖게되는것>이거늘…

******

한국정치계의그망측한얼굴은잊어도,어찌그이름을잊으리

가슴에꼬옥담아두고다음선거때반드시떠올려야한다

-<당신스스로의얼굴하나도다스리지못하는사람‘>에게한국정치를맡길수는없다.

(사진은Google에서)

노르웨이의 슬픔을 함께 하며… 한 젊은 굴절된 혼도 불쌍해하며

테러

선포없이커다란인명피해를주는돌연한공격이라면모두이렇게일컬어지는것인가?

한사람을죽이면살인범이고,

다수를죽이면영웅‘?…

*

90명이넘는(이후,공식적으로76)이라는사상자의수때문일까,

정통파언론미디어인,’신문과뉴스방송’은늘그렇듯,–한정된지면‘,한정된시간의탓도있는지…–,

언제나사건의’표면’만드러내며

유럽각나라에서의극우주의의움직임,

유럽경제의침체,

이민자의과도유입등등의

사회적상황만을열거,보도한다.

그리고그범인을,

평소경제에관심을둔사람들과함께극우주의자라고도

종교에한계를느끼는사람들과함께는근본주의자라고도부른다.

세계의정황을읽으며

이러한언론과지성인들이느끼는안타까움을이해하지못하는바는아니나,

역시,‘배수의진을치고,그저옹졸하게자신의찌들린속감정을폭발시킨한개인에게는

‘너무나아까운칭호’이다.

오히려,나는,이’황당무계한일을벌인굴절된의식의한젊은이’가,

그런사상을대표하는것처럼주목되며,

그래서,–물론극단적사고이어서그수가많지않더라도그런이들의영웅의자리에앉혀지는것이,

극히우려스럽다.

그스스로도,역시이런사회의시선을의식할만큼영악하여,–1,500쪽의글까지적으면서

마치자신이유럽의극우주의자로,유럽에넘치는이교도이민자들에대해불만을가지고있다고입에올리며

대의명분을팔고있다는사실역시

내게는경악이고불쾌

이치졸한한개인,범죄자는,모든것을사회의탓으로시선을돌리게하여

제어깨위의짐을가벼이하려했을뿐.자신의불행을세상의탓으로돌리려는’가장유치한인간의태도’이다.

세상을경악하게한이사건은,

태어났을때부터정상적인사랑을받은적이없이성장해,

청년기에조차도누구에게도사랑을받지못했던

한굴절된젊은이개인의

자기파괴적행위의연장이며

자기와는달리,

많은사랑받으며건전하게성장했을수많은소년소녀에대한증오심으로

함께저승길을데리고가려한

가증스런반사회적행위‘.

(–한편,이런굴절되고난푹한혼을갖고성장할수밖에없었던한인간이가엽기도해–)

또그런증오심을키운그못난부모의얼굴이보고싶다

나는적고자한다.

이번노르웨이의참사는,–그결과로뿌려진커다란아픔의크기로는,물론수용하기힘든결론이나

범인안드르스브레이빜이라는,그저너무나젊고미련해서더없이잔인할수있었던

한개인,’살인범의만행이다.

*

마마보이로불렸던노르웨이테러살인마의기구한가족관계

나와똑같은시선을가진블러그이웃의글을만났다.

사실을알게하는너무나명확한글이어서,이곳에옮겨본다.

"노르웨이테러의범인안데르스브레이빅(32)은1m90의거구이다.

두려움에떨며죽은체하고있던소년·소녀까지찾아내머리에총을쏜극악무도한살인마다.

어린시절까지만해도아주평범한소년이었다.’마마보이’로불릴정도로양처럼온순했다.

그런그가냉혈한살인마가된배경에는기구했던가족사가있다.

아버지는영국런던과프랑스파리주재노르웨이대사관의상무관이었다.

전처(前妻)와세자녀를둔아버지,첫결혼에서딸하나를둔어머니가재혼해서낳은아이가브레이빅이었다.

부모는그가한살때헤어졌다.

아버지는런던에남았고,간호사였던어머니와브레이빅은노르웨이로돌아가임대아파트에살게됐다.

그때이후2009년까지30년간어머니와함께살아왔다.

어머니는한때노르웨이육군소장과다시결혼했다가이내헤어졌다.

아버지도런던에서대사관동료직원과결혼했다.

그들은어머니를상대로브레이빅양육권다툼을벌였지만수포로돌아갔다.

하지만이후에도브레이빅은가끔런던과파리로아버지를찾아갔다.

아버지의새부인과도원만하게지냈다.그러나그들도브레이빅이열두살때갈라섰다.

브레이빅이아버지와완전히결별한것은15세때였다.

그가공공장소벽에스프레이를뿌리고다니다가경찰에입건된사실을알게된아버지가아들과인연을끊겠다며만나주지않기시작했다.

이번사건5년전,브레이빅이마지막으로한번만만나달라고간청했지만,아버지는매정하게거절해버렸다.

브레이빅은집단살인극을저지른이유로집권노동당,친(親)이슬람이민정책,남녀평등주의를요구하는페미니즘등에대한반감과기독교전쟁을언급했다.왜그랬을까.

아버지는집권노동당지지자였고,아버지를빼앗아간새부인은이민자신청업무를다루는정부기관에서일했다.

(친)어머니는여성인권운운하며아버지를떠나버린페미니스트였고,누나는성생활이문란한여성이었다.

육군소장이었던새아버지는퇴역후생활을태국에서창녀들과보냈다.

이번참사는21세기십자군전쟁을감행한기독교원리주의자가아니라,

드러나있지는않지만온갖부조리로가득한노르웨이사회가만들어낸괴물’트랜스포머’가저지른것이다."

이블러그의글을통해

그가경험한복잡하고냉냉했던성장과정’을이해하면,

그가왜,소년소녀들을모으고는,먼저예쁜아이부터죽였는지…,–외국인청소년이아니고…–

그가왜,’극우주의자에게서의,그리고근본주의자에게서의,<사상적가면>을빌려쓰게되었는지

그가왜,이성과건전한사랑과교제를갖지못했는지

등등을추렴할수있으리라믿는다.

그래서,한편,–앞서도적었으나–

이런과거를가진젊은이도참으로불쌍하다는마음까지

그러나,그를동정하기에는,그가행한행위의결과는너무나큰고통이다…

()도젊은사람이걸렸을때는,그전개나폐해가더강렬하다고한다.

이젊은청년의가슴속에사무쳤을증오,고독이–삶의시간이가져다줄수도있는성숙없이–

배수의진을치며악랄하게밖으로내보여졌을때,

너무나극악무도하고잔인하게드러났다.

*

다른나라에서외국인으로살아,

제나라의터를외국인인나와공유하는사람들’과의생활이긴나는,

1992년독일에서살때는베트남인에대한신나찌즘의폭동을,

그리고이번로스앤젤스를찾았을때는

1994년의로스폭동의숨은이야기를체험자의재미동포로부터자세히들으며

범인,안데르스정도는아니더라도,편협한내국인들의모습을

실제로내눈으로직접보고경험도해왔다.

그럼에도,늘내가내리는결론은,

–‘~‘,’그나라사람’이나쁜것이아니라,

그런편협성은본인들의개인적인한계라는것.

‘보다상냥하고생각깊은사람(내국인)들의수가,이들보다훨씬더많음’을

나는또,나의긴외국생활중에서경험해왔다.

*


선진국은<사건후의처리>가다르다.

앞서도적은1992년독일에서의폭동에있어서는,

그폭동후금방,전국각지에서수많은양심적인독일국민들이인간사슬의촛불집회를열어

자국민의수치를반성하는모습을보여,

오히려,만행을일으키는극우주의자들은극소수이며,

대다수의독일인들은성숙하게깨어있음이더욱어필되었었다.

(당시독일텔레비는,사건보다이모습을더긴시간방영했다.)

그리고,또이번사건후에도,

당사국노르웨이의총리는"테러,더큰민주주의와인류애로대응하겠다"고선언했다.

이번테러/참사가준공포로해서,노르웨이와세계가소수의에주춤하거나물러섬없이,

더단호히인류애에넘친발전을계속해줄것을

그리고한사람한사람이

자신의가족을더자상하게보살피게되기를

신뢰하며기대하고싶다.

(사진은Googl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