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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보이로불렸던노르웨이테러살인마의기구한가족관계
나와똑같은시선을가진블러그이웃의글을만났다.
사실을알게하는너무나명확한글이어서,이곳에옮겨본다.
"노르웨이테러의범인안데르스브레이빅(32)은1m90의거구이다.
두려움에떨며죽은체하고있던소년·소녀까지찾아내머리에총을쏜극악무도한살인마다.
어린시절까지만해도아주평범한소년이었다.’마마보이’로불릴정도로양처럼온순했다.
그런그가냉혈한살인마가된배경에는기구했던가족사가있다.
아버지는영국런던과프랑스파리주재노르웨이대사관의상무관이었다.
전처(前妻)와세자녀를둔아버지,첫결혼에서딸하나를둔어머니가재혼해서낳은아이가브레이빅이었다.
부모는그가한살때헤어졌다.
아버지는런던에남았고,간호사였던어머니와브레이빅은노르웨이로돌아가임대아파트에살게됐다.
그때이후2009년까지30년간어머니와함께살아왔다.
어머니는한때노르웨이육군소장과다시결혼했다가이내헤어졌다.
아버지도런던에서대사관동료직원과결혼했다.
그들은어머니를상대로브레이빅양육권다툼을벌였지만수포로돌아갔다.
하지만이후에도브레이빅은가끔런던과파리로아버지를찾아갔다.
아버지의새부인과도원만하게지냈다.그러나그들도브레이빅이열두살때갈라섰다.
브레이빅이아버지와완전히결별한것은15세때였다.
그가공공장소벽에스프레이를뿌리고다니다가경찰에입건된사실을알게된아버지가아들과인연을끊겠다며만나주지않기시작했다.
이번사건5년전,브레이빅이마지막으로한번만만나달라고간청했지만,아버지는매정하게거절해버렸다.
브레이빅은집단살인극을저지른이유로집권노동당,친(親)이슬람이민정책,남녀평등주의를요구하는페미니즘등에대한반감과기독교전쟁을언급했다.왜그랬을까.
아버지는집권노동당지지자였고,아버지를빼앗아간새부인은이민자신청업무를다루는정부기관에서일했다.
(친)어머니는여성인권운운하며아버지를떠나버린페미니스트였고,누나는성생활이문란한여성이었다.
육군소장이었던새아버지는퇴역후생활을태국에서창녀들과보냈다.
이번참사는21세기십자군전쟁을감행한기독교원리주의자가아니라,
드러나있지는않지만온갖부조리로가득한노르웨이사회가만들어낸괴물’트랜스포머’가저지른것이다."
이블러그의글을통해
그가경험한‘복잡하고냉냉했던성장과정’을이해하면,
그가왜,소년소녀들을모으고는,먼저예쁜아이부터죽였는지…,–외국인청소년이아니고…–
그가왜,’극우주의자‘에게서의,그리고‘근본주의자‘에게서의,<사상적가면>을빌려쓰게되었는지
그가왜,이성과건전한사랑과교제를갖지못했는지…
…등등을추렴할수있으리라믿는다.
그래서,한편,–앞서도적었으나–
이런과거를가진젊은이도참으로불쌍하다는마음까지…
그러나,그를동정하기에는,그가행한행위의결과는너무나큰고통이다…
암(癌)도젊은사람이걸렸을때는,그전개나폐해가더강렬하다고한다.
이젊은청년의가슴속에사무쳤을‘증오,고독‘이–삶의시간이가져다줄수도있는성숙없이–
배수의진을치며악랄하게밖으로내보여졌을때,
너무나극악무도하고잔인하게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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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외국인으로살아,
‘제나라의터를외국인인나와공유하는사람들’과의생활이긴나는,
1992년독일에서살때는베트남인에대한신나찌즘의폭동을,
그리고이번로스앤젤스를찾았을때는
1994년의로스폭동의숨은이야기를체험자의재미동포로부터자세히들으며…
범인,안데르스정도는아니더라도,편협한각내국인들의모습을
실제로내눈으로직접보고경험도해왔다.
그럼에도,늘내가내리는결론은,
–‘~인‘,’그나라사람’이나쁜것이아니라,
그런편협성은본인들의‘개인적인한계‘라는것.
‘보다상냥하고생각깊은사람(내국인)들의수가,이들보다훨씬더많음’을
나는또,나의긴외국생활중에서경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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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사건후의처리>가다르다.
앞서도적은1992년독일에서의폭동에있어서는,
그폭동후금방,전국각지에서수많은양심적인독일국민들이‘인간사슬의촛불집회‘를열어
자국민의수치를반성하는모습을보여,
오히려,만행을일으키는극우주의자들은극소수이며,
대다수의독일인들은‘성숙하게깨어있음‘이더욱어필되었었다.
(당시독일텔레비는,사건보다이모습을더긴시간방영했다.)
그리고,또이번사건후에도,
당사국노르웨이의총리는"테러,더큰민주주의와인류애로대응하겠다"고선언했다.
이번테러/참사가준공포로해서,노르웨이와세계가소수의‘악‘에주춤하거나물러섬없이,
더단호히인류애에넘친발전을계속해줄것을…
그리고한사람한사람이
자신의가족을더자상하게보살피게되기를…
신뢰하며기대하고싶다.
(사진은Googl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