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터
2002-12-08 19:50:12
평창강!
그 강줄기에는 겨울에 따뜻한 샘물이 흐르는 곳이 있었습니다.
중리 쪽에서 제방둑을 넘어 가면 강물과 제방둑 사이의 모래와 자갈이 섞인 강변에
이상하게 따뜻한 샘물이 퐁퐁 솟아 났습니다.
고무 장갑도 없던 그 옛날
겨울이면 동내 아낙들이 그곳에 가서 빨래를 하였습니다.
그즈음
많은 식구들 옷을 빨아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였을 겁니다.

겨울이면 우리어머니께서
포근하고햇살 맑은날을 골라 빨래를 합니다.
빨래 삶는 솥과 나무를 가지고 가서 강변에 솥을 걸어 놓고
삶아서 빠는 옷은 즉석에서 삶아 빱니다.
삶지 않아도 되는 옷은 강둑에 널어서 말립니다.
어머니가 빨아 주시는 옷을 강둑에 너는 일과
빨래 삶는 솥에 불 때는 일을 오빠와 내가 했습니다.
오빠와 뛰어 다니며 빨래 너는 일도 재미있고
강변에서 불장난(?)하는 것도 재미 있었습니다.
어머니랑 소풍온 기분으로 놀았던 것 같습니다.
짧은 겨울해가 어스름해 지면
아버지가 지개를 지고 빨래를 가지러 오십니다.
그때까지 마르지 않은 옷은, 젖은 옷대로 개고 마른옷은 따로 개고 해도
빨래 삶는 솥까지 한지개가 됩니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하신 빨래로 허리가 아픈듯
한손으로 허리를 잡고 일어 서시며 한손엔 수건을 들고 먼지도 없는 옷을 탁탁 터시던 모습이 아직 선명히 머리속에 있습니다.
축축하게 젖은 옷의 습기를 털어 내시는 작업이였던 것입니다.
우린 아버지 지개 뒤를 따라 노래 부르며 집으로 옵니다.

오빠와 뛰어 놀던 그 강변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겨울이라 해도 물자가 귀한 그때는 옷이 변변히 있을리 없습니다.
국방색 사지코트..(사지가 무슨 기진지 정확한 것은 모르겠습니다…미군 담요 같은 천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오빠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마련해 준 코트였는데
오빠가 체격이 커져서 옷이 작게 되자 그코트가 내 차지가 되었습니다.
오빠가 입던 회색 남자 내복, 오빠가 입던 코트…
그런것만 물려 받았기 때문에 나는 늘 남자 같은 모습이였습니다
나도 빨간색 내복과 빨간색 잠바가 입고 싶었지만
가난한 부모님께 말씀 드리진 못했습니다
이발소에서 깍은 까만 단발머리에 석케는 늘 있게 마련이고
몸에도 이가 기어 가는지 스물 거려서 시간만 나면 벅벅 긁었습니다
몸은 말라서 가느다란 나무 장작 같았을겁니다.
보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냐?"라고 물어볼 정도로 얼굴은 창백하고
콧물은 늘 범벅을 하고 하고 살았어도
그시절 오빠와 즐겁게 마음껏 뛰어 놀고,
부모님 그늘에서 마음에 근심이 없었던 시절이라
그 유년의 한때가 그립습니다.

오전에
주일 아침이라 거실쇼파에 앉아서 어머니께서 빨래 하시는 모습을
오래 바라 보았습니다.
남향의 베란다에 어머니의 빨래터가 있습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빨래터 입니다.
배란다 한쪽을 턱을 지게 만들고 수도를 설치하고 빨래판으로 쓸수 있는 넓적한 돌을 놓아 드렸습니다.
고향 빨래터 같지야 않겠지만
물을 좋아 하시는 어머니께서 마음껏 물을 쓰시고 노실수 있는 공간입니다.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셔도 되지만 어머니는 전용 빨래터를 좋아 하십니다.
물론 세탁기도 있고 일을 도와 주는분이 계셔서 굳이 빨래를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당신 빨래는 손수 하시길 고집하십니다.
이사 오기전 점빵 오층에 살 땐
건물 옥상 매일농장에 어머니의 빨래터가 있었는데
몇년전 춥던 겨울날 수도가 동파 하는 바람에
고무 호스로 물을 올려서 사용 하였고
옥상이라 추운날은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번엔 배란다이긴 하지만 실내라 요즘 같은 겨울에도 빨래를 하실수 있습니다.

쉐타를 빠시는데 힘이 부쳐 보여서
"어머니 제가 해 드릴까요?" 하였더니
"아니다, 내가 해야지. 아직 빨래할 기운은 있다."고 하십니다.
"어머니, 평창강에서 빨래하던때 생각나세요?"
"그래…그런데 전에 언제 가 보니까 강물이 줄어서 없더라…
평창강 물이 참 좋았는데…."
"평창 가시고 싶으세요?"
"가기 싫다. 이젠 아무도 없는데….누가 반겨 준다고 가겠냐?"
"그냥 여만리가 바라 보이는 여관에 가서 하룻밤 자고 놀다 오면 어떨까요?
강가도 가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시더니 " 고향에 날 반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뭐하러 가냐…"라시며 한숨을 푹 쉬십니다.
돌아가신 형제분들을 생각 하시는 듯 하였습니다.

모친이 물먹은 쉐타와 씨름을 하시는 것을 보니 저도 화가 좀 났습니다.
그거 일하는 분에게 맞기면 좀 잘해 주실텐데
뭐하러 노인이 고집스럽게 그러시는지….
"어머니 빨래 방망이 하나 사드릴까요?
빨래 펑펑 두드려 빠시게요?"
"엉? 빨래 방망이?….요즘 그런게 있냐?
다들 세탁기에 빨지…"
빨래 방망이 소리가 반가우신 것 갔습니다.
어디 빨래 방망이가 보이면 하나 사야 하겠습니다.

눈오는 주일 오전 모친이 빨래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을 그려 보았습니다.
겨울에 화롯가에서 이 잡던 이야기를 하면
또 한바닥은 쓸 수 있는데
화장실에서 잠잔 이야기 보다 더 엽기적이라….^^

눈오는 날은 별게 다 회상되어 집니다.

순이

1 Comment

  1. 봉쥬르

    2006-01-26 at 05:49

    너무 정겹고 아련한 얘기 들에 무슨 댓글을 달아야 할지..

    고운 추억 한자락 단내나는 세월 이야기 흠뻑 취하다가 갑니다.   

Leave a Reply

응답 취소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