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폰
2005-03-04 13:40:27
며칠전
눈이 많이 온 날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보니 어머니가 안계셔서
어머니 방문도 열어보고 혹시 옥상에 가셨나 했더니
눈 쓸러 나가셨다고 이모님이 말씀하십니다.
그제서야 "눈 왔어요?" 놀라서 창문을 열어보니 온 세상이
힌눈으로 덮혔습니다.
아~~ 오랜만에 보는 눈이네!

점빵에 나오다가 보니
집앞은 벌써 눈이 훤하게 쓸려 있고
점빵앞도 한편은 다 쓸으셨고 돌아서서 다른쪽을 쓸고 계십니다.
제법 많이 온 눈이라 치우는 일이 쉽지가 않으신데
노인이 힘을 쓰고 계시는 겁니다.
"아고! 어머니~~ 젊은 사람 수두룩 놔두고 노인이 눈을 치우시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하겠어요? 제가 할께 들어가세요." 했더니
"괜찮다. 넌 들어가서 일해라."이러십니다.
"날이 푸근해서 금방 녹을 것 같은데 힘드시게 하지말고 그만 하세요."라며
빗자루를 뺏으려 했더니
"들어가서 일하라는데도…눈 쓰는 것 재미있다. 내가 이제 많은 눈을 몇번이나 더 쓸어 보겠냐?"
이러시니 할말이 없습니다.

"내가 이제 몇번이나 더 하겠냐?"
어머니께서 하시는 일을 말리지 못하게 하는 단호한 한마딥니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도
저는 어머니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거의 말려보지 못합니다.

다른 어른들이 휴대폰을 다 가지고 다니시길래
작년에 어머니 휴대폰을 하나 해 드린다고 했다가
"집에 있는 사람이 뭔 휴대폰이 필요하냐"고 하시며
"휴대폰 없을때도 다 살았는데 쓸데없이 돈을 허공에 날려 보낸다"고 야단만 맞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의사표현을 하시면 번복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른들이 다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 하나 못 사드리고 말았습니다.

3월이 되자
춤바람동생 자녀인 준이가 유치원에 정식으로 입학하게 되었고
훈이도 2학년에 진급을 하게 되어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오니
어머니께서 낮시간이 자유롭게 되셨습니다.
항상 쉬시는 법이 없는 분이라 아기를 한명 대려다 키운다고 하시는 것을
온 식구가 다 말렸더니 교회에서 하는 경노대학을 다니시기로 하셨습니다.
다음주 개강을 하는데 아무래도 휴대폰을 하나 장만해 드려야 하겠기에
무작정 하나 사다가 드렸더니 의외로 좋아하시는군요.
말씀은 "이왕 사온거니까 들고 다니겠다"고 하시면서요
허락을 맞고 사다 드릴려고 했으면 또 퇴짜를 맞을뻔 했습니다.

휴대폰에 단축다이얼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항상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점빵전화번호를 1번으로 하고
2번은 오라버니
3번은 작은아들
4번 5번 6번….
뉴질랜드 동화네 까지 번호를 하니까 7번이 됩니다.

"어머니! 동화엄마랑 통화하고 싶으시면 4번을 길게 누르시면
동화엄마랑 통화 할 수 있거든요. 한번 해 보세요." 라고 말씀 드리니
"전화요금 많이 나오는데 뭐하러 쓸데없이 전화를 하냐?" 이러십니다.
전화요금이 많이 싸 져서 맘 놓고 쓰셔도 된다고 말씀 드려도
전화요금을 아주 무서워(?) 하십니다.
내 통장에서 결제 하는거니까 안심하고 쓰시라고 했지만 잘 쓰실것 같지는 않습니다.
거절 하지 않고 받아 주신것 만으로도 다행이긴 합니다.
단축번호 일번을 오라버니 전화로 해 드릴까 하다가
만약의 응급상황일때 가까이 있고 항상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점빵전화가 요긴 할 듯 해서 내가 일번으로 했는데
오라버니를 일번으로 해 드릴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형제 들에게 전화로 다 알렸습니다.
어머니 휴대폰이 개통 되었으니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문안 인사를 넣으라구요.
어머니 아시면 쓸데없이 허공에 돈을 날린다고 야단 맞을 일입니다.

경노대학에 가면
황수관 박사님도 오시고 김동길 박사님도 강의 오신다고 기대가 만만이신데
그것보다 좋은 할아버지 만나서 데이트라도 좀 하시지.ㅎㅎ
실버폰에 단축다이얼 8번을 드린다고 클라스메이트중 짝꿍할아버지 생기면
휴대폰 번호 알려 달라고 해 봐야 하겠습니다. ^^

2)

휴대폰이나 엠피쓰리 디지털 카메라등
새로운 물건이 생기면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르다는 것을 느끼셨을겁니다.
어머니 휴대폰을 하나 장만해 드리고는 벨소리 같은 기본 설정을 하려니
메뉴얼을 보고 또 보고 해도 자판이 틀리고 버튼 기능이 틀리고 해서
씨름하고 있었더니 초등학교 5학년 다니는 조카여자아이가
"고모 제가 해드릴께요." 하더니 메뉴얼을 볼 것도 없이 뚝딱 해 치웁니다.
내가 기계치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요즘 애들은 기계를 다루는데 남다른 재능이 있던지 아님 기계를 두려워 하지 않던지
하여간 세대차를 여실히 느낍니다.

뭐든지 절약하시고 아끼는데는 일가견이 있으신 우리 어머니!
요즘도 수돗물이나 전기요금 가스요금 같은 것으로 속을 끓이십니다
오래전에 말씀 드린적이 있는데 고향을 떠나 강릉에서 살때는
세든집에서 짧게는 일주일만에 동생이 주인집 석류를 따는 바람에 쫒겨나기도했고
길게는 2년마다 이사를 다녔습니다.
여러자녀를 거느리고 남의 집 세 살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는 상상을 하고도 남음이 있는 일입니다.
어려움 중에서도 집주인과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을 가지고 분쟁을 많이 겪으셨는데
식구가 많다 보니 늘 부당하리 만큼 많은 요금을 내야 했고
어머니는 그부분을 억울해 하셨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유하신 아버지께서 싸우지 말고 집주인이 달라는 대로 주라고 하시는데
달라는 대로 줄 만큼 넉넉한 살림이면 싸웠겠습니까?
30촉짜리 알전등 수대로 전기요금을 내야 하는데 우리집은 공부하는 학생이 있으니
늦은 밤까지 불켜진 시간이 많다며 전기요금이 많이 나와도 순이네 탓이고
물세가 많이 나와도 식구 많은 탓을 듣다보니
어머니께서 억울하게 쌓인게 많으신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물세 전기세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어머니께선 어찌나 전기를 아끼시는지 모릅니다.
현관문을 열면 자동으로 켜지는 등도 스위치를 꺼 놓으시고
복도에 센서가 있어서 인기척이 있으면 자동으로 불이 켜 졌다가
몇분후면 자동으로 꺼지는 것도 아깝다며 꼭 끄고 다니셔서
늦은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야합니다.
낮에는 보일러도 안켜시고 추워도 그냥 지내십니다.
추운데 그러고 계시냐고 하면 더추운 강원도에서도 사는데
집안에서 뭐가 춥냐고 하시는군요.

휴대폰을 방에 모셔두고만 있어서
점빵에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봤더니 받지를 않으십니다.
어쩔수 없이 집전화로 했더니 받으시기에
휴대폰을 좀 받으시지 그러냐고 말씀드렸더니
"쓸데없이 뭐하러 집전화 놔두고 휴대전화를 쓰느냐"고 하십니다.
기계는 자꾸 써야 익숙해 진다고 해도 아직은 모셔두는 형편입니다.

제가 어머니 실버폰을 해 드렸다는 글을 올렸더니
그날 오후 한건모오라버니께서 어머니 휴대폰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시더군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축하해 드리시겠다구요.
그래서 전화거신분이 누구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하실꺼냐고 했더니
"도치엄마 친구"라고 하시겠데요.
우리어머니가 딸의 남자친구를 수용할 만큼 세련된 분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뉴질랜드 동화엄마 친구라고 하시겠데요.
그럼 더 기절 하실지 모르니까 그냥 참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전화선이 울리도록 건모오라버니랑 둘이서 크게 웃었습니다.
우리어머니는 컴퓨터로는 " 일 " 하는 걸로 알고 계시는데
컴퓨터로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다면 놀라서 기절 하시지 않겠습니까?^^
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그다지 빠른 속도로 변화하지 못하시거든요.
어머니께 친구라는 범위를 설명 드릴 수 없는 일이더군요.

건모오라버니를 수니 남자친구라고 했다고
꽃도야지들 한테 미움 받겠지요?
그래도 울 어머니께 수니남자친구라고 전화하시겠다고 한분은
공식적으로 건모오라버니가 처음이셨으니
무지 멋있는 영국신사라서 수니가 좀 기울긴 하지만
건모오라버니가 수니 공식 남자친구인 것을 선언합니다. ㅎㅎㅎ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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