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에서
2005/10/22 (토) 13:22

춤바람 동생이
구일산에서 춤방을 시작해서 신일산으로
인천, 부천까지 주변부에서만 점포를 확장해 가더니
드디어 서울 압구정동으로 진출을 했습니다.
해서 저도 어쩌다 한번은 압구정동 구경을 갈 껀수가 생겼습니다.

월요일 개업을 앞두고 사업장을 어머니께 보여드린다고 해서
일요일 오후에 식구들이 다함께 압구정까지 나들이를 갔습니다.
동생 조카들을 불러 모으니 20명가량 되었습니다.
춤방은 플로어가 가장 중요하고 다른것은 그다지 어려운일이 없나봅니다.
넓은 마루가 깔려서 춤추는 공간만 있으면 되니까 며칠 뚝딱 거리더니 오픈한다고 하는군요.
위치는 압구정동 대로변에 자리잡고 있고
정면이 넓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길 건너에서 충분히 들여다 보이겠더라구요.
영화 쉘위댄스에서 댄서가 창문으로 내다보던 장면이 생각나서
저도 대로변을 한참 내려다 봤지만 아무도 쳐다보는 분이 없더군요. ^^
일요일 밤이라 그런지 자동차만 바삐 지나갈 뿐 행인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강남에 사는 분들께 나와바리 신고를 할까하다가
일요일 오후라 집에 계실텐데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나중에 또 가게 되면 신고하고 가겠습니다.
강남에 사는분들이 윤선헌 오라버니 석천오라버니 해군님 요트언니 망찰갑장 개기님
머시님 채샘님 또 누가 계신가요?
(아마 채샘님댁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단히 개업식을 하고(목사님 모시고 개업예배 드리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어머니와 형제들이 다함께
춤바람 동생이 예약해 둔 어느 한정식집으로 갔습니다.
압구정동 한복판에 있는 한정식집 실내장식이 특이했습니다.
다듬이돌을 출입구 받침돌로 사용했고
커다란 망태기와 조롱박, 볏단,단감이 달린 가지도 보이고 꽹가리도 걸려있습니다.
옛날 시골집 분위기를 연출했더군요.

더욱 눈길을 끈것은 연탄이였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까만 연탄한장에 새끼줄이 가운데 구멍에 껴있습니다.
혹시 생각 나는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짧은 새끼줄 아래부분에 마디를 만들어 연탄을 꿰어 낱장으로 연탄을 팔던때가 있었습니다.
우리집도 어느 한 때 새끼줄에 낀 연탄한장을 사서 하루를 살았습니다.
내 생각으로 연탄 500장 이나 1000장을 한꺼번에 들여 놓은 집은 어마어마한 부잣집이였습니다.
연탄 한장으로 취사와 난방을 겸하였으니 연탄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물건이겠습니까?
난방을 하려면 연탄을 방고래에 깊이 밀어넣고 밥을 할 때는 꺼내어 화덕에 넣고 합니다.
그때는 연탄가스 사고가 지금의 교통사고 만큼이나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연탄한장에 목을 멨던 시절입니다.

연탄이 새끼줄에 꿰여서 장식용으로 놓여있는 것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은 어머니와 저 둘입니다.
나보다 4살이 어린 도야지띠 큰여동생만 해도 연탄한장에 목을 메던 시절을
약간 벗어날 수 있었기에 연탄에 대한 큰 감흥은 없어 보였습니다.
나이가 어려도 큰딸은 큰딸이라 어머니의 삶에 조력을 해야 했기에
저는 어머니의 어려움을 그대로 느끼고 살았습니다.
식구들이 시골에서 갓 도시로 나왔던 시점이라 가난의 정점에 이르러 있었나 봅니다.
연탄 한장에 9원인가 했었는데( 40년전 연탄값이라 정확하진않습니다.)
어느날 12원으로 오르자 다른집들도 난리가 났습니다.
연탄재가 많이 섞여서 그렇다던가 화력이 떨어진다고 도 했습니다.
지금 기름값 오르는 것 보다 더 연탄값에 민감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거지요.
그래도 오른값의 연탄을 때고 용케도 살아왔네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니 40년 전 일 입니다
연탄 한장을 사가지고 오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졌습니다.
넘어지면서 연탄도 함께 떨어뜨렸습니다.
다행히 팍삭 깨지지는 않고 밑둥이 많이 떨어져 나갔지만
새끼줄이 걸려 있어서 조심해 들고 집으로 가서 어머니께 드렸더니
연탄이 뭍은 내 손과 얼굴을 씻겨 주시면서 어머니가 몹시 쓸쓸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난 깨어진 연탄을 가져온것이 어머니께 미안했구요.
연탄 한장을 새로살 여력이 없어서 밑둥이 깨어진 연탄으로 여전히 하루를 살았습니다.
화덕속에 연탄이 기웃하게 누워서 불을 피워내고 있어서 난방은 별 불편없이 되었겠지만
냄비를 얹어서 밥을 지을 때는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식탁에 앉아서 어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 때 연탄 깨고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야단을 안치셔서 더 죄송했다고 하니까
어린걸 연탄을 들고 오게해서 어머니가 오히려 가슴이 아팟다고 하시고
언젠가는 연탄까스에 질식해서 온가족이 죽을 뻔 하기도 했고
언제는 낱장으로 연탄을 사다 쓰다가 50장을 한몫에 들이고 나니 부자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하십니다.

서민과 애환을 함께했던 연탄이
지금은 장식용으로 음식점에 놓여 있는 것을 본 어머니나 저는 추억이 많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 감회가 없나봅니다.
자기들끼리 임대료가 어쩌고 수리비가 어쩌고 떠들다가
연탄얘기만 하는 것이 싫었는지 춤바람 동생이 한소리 합니다.

"엄마! 큰언니! 연탄 필요해요? 한 천장 들여놔 드려요?"

"그래 알았다 그렇지만 너네가 연탄을 알아?"

그날저녁 압구정동에서 만난것은 화려한 도심의 밤이 아니라
새끼줄에 꿰인 연탄 한장 이였습니다.

순이

2 Comments

  1. 고운정

    2006-03-04 at 11:36

    지나간 세월,
    서민들의 겨울준비용 땔감, 연탄,
    참 많은 사연도 있고,,,,
    나 또한 지난해 쓴 ‘아주 먼 옜날,이란 글도 있어요
    정말 난 연탄세데이네요,,,   

  2. 포사

    2009-05-02 at 03:41

    장작으로 군불지피든시대 서울 오니 연탄피우든데 엄청 편리해보이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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