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독후감)

1)

2005-12-20 14:11:01

년말 모임에서
다작상으로 책을 한권 받았습니다.
최인호씨가 지은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라는 책을 방장님께서 하사 하시면서
독후감을 세편 쓰라고 하시더군요.
방장님께서 본전 생각이 나셔서 그러시겠지만
(사실 방장님이라고 해서 판공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급여를 드리는 것도 아닌데 개인 지출로 좀 과할때가 많이 있어서
걱정이 되지만 가정선생님 퇴직금을 믿어 봅니다.ㅎㅎㅎ)
독후감 세편이 그리 쉬운 숙제는 아니 잖아요?

그러나 책 선택이 탁월했습니다.
제가 그렇잖아도 우리 어머니 팔아서 글 쓰는데는 이력이 난 사람이고
세탁기까지 탄사람인데 그까이꺼^^ 어머니 이야기로 세편 정도는 너끈히 써 낼 것 같아서 시작을 합니다.
사실은 울이쁜 또따 자랑도 좀 하고 싶고, 울도치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년말 번개때 또따님과 두어시간 데이트를 했는데 어찌나 이쁘고 마음에 쏙 드는지 모릅니다.
해서 앞으로 또따님 이야기를 좀 많이 할 것 같습니다.)
우선 방장님이 내준 숙제 부터 하겠습니다.
제가 시간이 좀 많이 얻어진다면 좋은데 요즘 감기환자가 많아서
점심도 서서 후루룩 먹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글 한편 올릴려고 서두르는 형편입니다.

어제가 저의 어머니 생신이셨습니다.
멀리 대구에서 오라버니 내외분이 오셨고
뉴질랜드 동생식구들만 불참한 가운데 형제들이 모여서 어머니 생신을 축하드렸습니다.
저녁 먹을 식당을 정하는데 어머니께서 작년 어머니생신에 갔던 그 식당을 가자고 하십니다.
이유는 6월에 먼저간 남동생 웅이와 함께 갔던 곳이라서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20명이 넘는 식구들이 몇차에 분승을 해서 예약된 방 한칸을 차지하고
식사를 하는데 작년에 갔던 바로 그 방입니다.
어머니만 그러신것이 아니라 동생이 앉았던 자리 웃던 모습, 나에게 많이 먹으라며
고기를 구워서 건네주던 모습등이 선연히 떠 오릅니다.
어린이들만 모를까 형제들이나 어머니는 말을 안할 뿐 다 같은 느낌으로
가슴이 싸하게 아파지는 겁니다.
그래도 그런 내색들을 감추고 즐거운듯 이야기를 나누며 배불리 먹고 났더니
울도치가
"엄마! 엄마가 나를 보는 눈빛보다 할머니께서 큰삼촌을 바라보는 눈길이 더 깊은 것 같아"
그래서 웃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도 제 아이를 바라볼 때 이뻐서 견딜수 없는 심정이 되지만
어머니께서 큰아들을 바라보는 눈길은 애처로울 만큼 간절히 좋아하십니다.
큰 아들과 나란히 앉으셔서 서로 더 들게 하려고 고깃점을 주고 받고
어머니 드시는 것을 오라버니가 만족한 눈으로 바라보시고
오라버니 드시는 것을 어머니는 황홀한 듯 바라보십니다.(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그런 광경을 본 울도치가 엄마만 저를 그렇게 바라보는 줄 알았는데
80이 되어가는 노인이 머리가 허연 아들을 그런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놀란겁니다.

우리 어머니는
큰아들만 있으면 사랑스런 막내아들도 차선이 됩니다.
막내동생의 표현으로는 "형님 계시면 난 마붑니다." 라고 말합니다.
마부라는 것은 운전기사라는 뜻인데 형님이 KTX타고 행신역에 도착 한다는 연락을 받고
막내동생을 채근해서 형님 모시고 오라고 하고 또 시간을 맞춰 모셔다 드리라고 하시는등
모든 포커스를 형에게 맞춘다고 해서 하는 말입니다.
KTX가 빠르긴 정말 빠릅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2시간 조금 넘게 걸리나 봅니다.
오라버니댁에서 예매한 표를 가지고 출발해서 우리집까지 도착하는데 3시간 조금 더 걸린다고 하니
얼마나 빠른겁니까?
마침 행신역이 있어서 우리집까지의 거리가 승용차로 20여분 정도면 되나 봅니다.
대구에서 오전에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해서 어머니랑 6~7시간을 함께 보내고
다시 대구집에 도착하기까지 12~3시간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저는 아직 KTX를 못 타 봤습니다.
언제고 한번 타 봐야겠는데 누가 KTX데이트 신청하면 받아 드리겠습니다.^^

최인호씨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보면
어머니께서 아들이 입던 헌 속옷 그러니까 남자용팬티를
그것도 기워서 입으신 모습이 나옵니다.
비슷한 세대를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역시 교회에 갈때 빼고는
집에서 아들이 입던 오래된 바지에 낡은 넥타이를 매서 입으시고
쉐타도 20 년쯤 입었을까 30 년쯤 입었을까 햇수도 가늠이 안되는 옷을 입고 계십니다.
옷좀 사드리라구요?
물론 사드리지요. 이번 생신에도 백화점에 가서 좋은것으로 한벌 사드렸습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아꼈다가 불쌍한 노인을 드리기도 하고
아끼시느라 잘 안입으십니다.
좋은것 좀 입으시라고 성화를 하면
"헌것이 있어야 새것이 있지…..지금 이만해도 옛날 왕 부럽지 않다."이러십니다.
누구 도와주는것은 아낌없이 하시면서 자신을 위하는 일에는 인색하신것을 봅니다.

방장님께서 주신책을 우리어머니의 경우와 비교를 하면서 읽는 맛도 좋습니다.
그대신 잠농사가 조금 손해입니다.

2)

아버지를 갑자기 잃고
사춘기의 벼랑끝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우리 찬이에게 휴대폰이 생겼습니다.

이번 어머니 생신에 다니러오신 오라버님이
조카 찬이에게 휴대폰을 하나 사 주신겁니다.
mp3도 되고 카메라가 부착된 최신형 휴대폰을 장만해 주면서
오라버니께서 조카에게 요구한 내용은
"하루에 한번씩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라." 입니다.

대게는 말썽을 부리지 마라, 공부를 열심히 해라, 학교 결석하지마라….
이런것을 요구할 만 한 사안인데 그런것은 입밖에도 내지 않으시고
찬이의 손을 꼭 잡고 간절한 표정으로
"찬이야! 하루에 한번 할머니께 전화해서 할 말이 없으면 ‘안녕하세요 저 찬이예요.’
이렇게 한마디만 하고 끊어도 된다. 그러니 언제 어느곳에 있던지 하루에 한번만 할머니께
목소리를 들려 드려라.
그리고 큰아빠 생각이 나면 언제든지 전화해도 좋다. 큰아빠가 설교시간만 아니면
아무리 중요한 미팅중이라도 찬이 전화가 오면 받으마." 이러는군요.

휴대폰이 생긴다고 하니
앞뒤 젤 것도 없이 찬이녀석이 좋다고 합니다만
찬이가 하루에 한번 할머니께 문안전화 드린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닐겁니다.
그러나 약속이 약속인 만큼 며칠째 전화를 한답니다.
별 내용없는 전화라 할지라도 찬이의 전화를 받으면 어머니께서 좋아하십니다.

얼마전 찬이엄마는
찬이가 말썽을 부리자 어머니께 달려와서
"찬이가 속을 썩여서 못살겠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하자
어머니는 "할미의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라시며 새벽기도에 더욱 열심을 내십니다
겨울날은 길도 미끄럽고 춥고 해서 노인이 새벽에 나가시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할 일이라 날씨가 추워지면서 잠정 쉬고 계시던 새벽기도를
찬이 때문에 쉴 수 없다며 요즘 같은 때도 새벽기도를 다녀오십니다.
"애비도 없는데 손자라도 잘 커야지, 찬이 잘 못 되면 모두 책임이다."라고 말씀하셔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을 지워주십니다.
자녀의 일은 부모가 책임지고 잘 키워야하지 아무리 남편이 없다고 하나
엄마가 열심으로 사랑하고 잘 단속하면 될 일을 노인에게 까지 알려서 힘들게 하는
찬이엄마가 한편으론 야속합니다.
비교하기는 좀 거석하지만 야무진 엄마들은 남편이 죽고 없어도
자녀들 잘 키우고 부모님까지 모시고 돈도 벌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도 많이 있잖아요?

찬이 전화를 받으면 할머니가 별 말씀이야 하시겠습니까?
"찬이야 밥 먹었냐?
옷은 따습게 입었고?
아프지는 않니?
주머니에 돈은 있고?"
할머니께 거는 전화 한통화!
우리 찬이가 사춘기를 벗어 나는데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험한곳에 있다가도 할머니 생각이 나서 전화하다 보면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힘이 되지 않을까 믿어 봅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어머니의 기도가 사는데 늘 힘이 되었던것 처럼
찬이에게도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길 빌어 봅니다.

3)

어머니께서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혈압이 있으신가 해서 첵크해 보면 노인같지 않게 혈압도 지극히 정상이고
혹 열이 있나 해서 봐도 없고, 체하신것도 아니고
무엇 때문에 두통이 오는지 모르고 두통약만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오라버님이 오셔서는 두통이 있다는 말씀을 듣고는
대번에 안경집에 모시고 가서 안경을 새로 맞춰 드렸습니다.
한개는 평소에 활동할 때 쓰는 안경이고 한개는 독서할 때 쓰는 돋보기 전용으로
해드리자 눈이 편안하다고 하십니다.
어머니께선 평소에 일년이면 성경66권을 3~4번 통독을 하십니다.
성경을 읽어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그게 그다지 재미있는 책이 아니라서 읽기 수월한 일은 아닙니다.
낮에 가끔 집에 들어가 보면 거실에 조그만 찻상을 펴시고
하루종일 성경책과 씨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 목사고시 보실겁니까? 뭐하러 그렇게 노동하듯이 책을 봅니까?"
라고 말씀 드리면 "재미있어서 본다. 이달안에 이걸 다 보려고 한다."
이러시며 목표를 정하시고 독서를 하십니다.
얼마전 단비님과 머시님이 저의 점빵에 놀러오셨는데
점심식사를 대박집에서 하고 나서 차한잔 마실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도 어머니께서 거실에서 성경을 읽고 계시다가 자리를 피해 주시더군요.
그때 단비님이 "순이언니의 지적 허영심이 어머니께로 부터 받았다"는 글이 생각난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살아온 생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잘 정리해 내려오면 최인호씨 정도는 안되겠지만 책한권은 너끈히 쓸 것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 아래서 꽃다운 나이에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시려고
서둘러 아버지와 결혼하고 해방후에 이어지는 전쟁통에 큰아들을 낳아서 잃고
극한 가난속에서 자녀를 7명 낳아서 기르시고 공부시키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자녀를 위해선 극성스럽게 보이실 만큼 자녀를 아끼고
사랑으로 기르셨습니다.
"일자 붕대 낙서로 돈 좀 벌어보자" 고 하시는 이동일선생님 말씀처럼
나도 책한권 써서 돈 좀 벌면 좋겠지만 본업이 아니라서 참기로하고 ^^
일단 방장님의 독후감 세편 숙제를 홀가분하게 마침니다.

최인호씨는 자기는 원래 "본데없이 막되게 자라서 버릇이 없는 사람" 이라는 뜻의
자칭 후레자식이라고 말하지만 모자간의 깊은 정으로 엮여진 것을 봅니다.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사실은 쉰이 넘도록
어머니께 얹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머리가 아프시다고 하면 안경을 생각해 봤어야 하는데
난 약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으니 얼마나 미련한 일입니까….
눈에 잘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하루에 5~6 시간씩 책을 보시니 머리가 아프실 밖에요.
그래서 아들이 좋은가 봅니다….깊은 속정이 있어서요.
아들은 어머니 두통의 원인을 딱 집어 내잖아요.
오늘 낮에도 동지라고 노인이 팥죽을 쑤어서 가지고 오셔서 점심으로 맛있게 먹었는데
어머니 안계시면 동지팥죽이 다 뭡니까?
끼니도 굶기 딱 알맞지요.

어머니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됐고
반성의 시간도 되었습니다.
독후감은 이말이 들어가야 정석이지요? ^^
그러나 진짭니다.

순이

1 Comment

  1. 봉쥬르

    2006-01-26 at 05:41

    참 훈훈한 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신앙인의 모범 생활이 느껴집니다.

    또 읽으러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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