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년한 딸?

아침에
눈뜨면 침대 속에서도 어머니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벌써 새벽교회도 다녀 오셨을 것이고
옥상을 두어번 오르락 내리락 하시느라 현관문 여닫는 소리도 나고
아님 베란다에서 걸레를 빠시느라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성경책을 읽으시던지…어머니는 새벽부터 바쁘십니다.
우리어머니는 새벽형이신데 수니는 야행성도 아침형도 아닌 수면형입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어머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어머니 방문을 열어 보았더니
잠자리에 이불을 덮고 누워계십니다.
어디 아프신가 여쭈었니 " 다리도 아프고 몸살이 나는것 같다"고 하십니다.
전날이 주일이라
새벽, 낮, 밤, 하루에 세번이나 교회를 다녀오시느라 힘이 드셨나봅니다.
퇴행성관절로 오래 고생을 하셔서 무리하게 걸으면
무릎이 시큰거리고 무지 아파하십니다.
아침식사도 안하시고 그냥 좀 누워계시겠다고 해서 슬그머니 걱정이 됩니다.

노인들은 밤새 안녕이라는데 더아프시면 어쩌나 근심이 되어
일하다 말고 약을 지어 가지고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약을 드시게 하고 좋아하는 감을 찾아다 드리고 내려오려고 하는데
오라버님 전화가 옵니다.
일이 있어서 서울 왔는데 어머니 못 뵙고 내려 가야 하겠다는군요.
어머니께 그 말씀을 드리니
"그래 알았다 바쁜데 내려가 봐야지…" 그러시는데
몹시 섭섭한 모양입니다.

오라버님도 어머니가 섭섭해 하는 것이 감지가 되었는지
잠시후 "저녁에 어머니 뵈러 오겠다"고 재차 전화를 드렸나 봅니다.
바쁜데 그냥 내려가라고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큰아들이 서울에 왔다가 어머니를 안보고 간다니 섭섭한 마음이 드셨는데
다시 집에와 어머니 옆에서 하루 자고 간다고 하니
어머니 기분이 금방 좋아지셔서
목욕을 다녀 오시고 (노인 냄새 날까봐 무척 조심하시고 열심히 씻으십니다.)
반찬을 만드시는 등 언제 아팟나 싶게 활동을 하십니다.
큰아들이 주는 위로나 만족감이 대단한가 봅니다.
안 아프신가 여쭈었더니
조금 멋적은 표정을 지으시며 "네가 준 약을 먹었더니 덜 아프다." 그러십니다.
사실은 아들이 온다니 좋아서 힘이 절로 나는 겁니다.

큰아들, 장남의 의미는 어머니께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로 보여집니다.

오라버니가 온다는 저녁
저는 연극을 보러 외출을 해야 했습니다.
일곱시에 시작하는 연극을 보러 가려고 집에 신발을 바꿔 신으러 올라갔습니다.
어머니께 "모임이 있어서 서울 다녀오겠다"고 말씀 드리니까
조금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십니다.
오라비가 온다는데 외출을 뭐하러 하나..그런 생각이신가 봅니다.
그렇지만 약속을 했는데 어쩌겠습니까?

어머니께서 마지못해 허락을 하시는데
"오라비 오기 전에 들어와라!" 그러십니다.
제가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ㅎㅎㅎ 어머니!, 도치아범 들어오기 전에 돌아와라, 그러면 혹 말씀이 되지만
오라비 오기 전에 들어오라시면 제가 미성년자도 아닌데? ㅎㅎㅎ"
"그래도 여자가 늦게 다니면 쓰냐? 오라비가 싫어하지 …"
"오라버니는 새언니께서 혹 늦게 다니면 신경쓰실까?
늙은여동생 늦게 다니는건 신경 안 쓰실걸요? ㅎㅎㅎ"
자꾸 웃음이 났습니다.
내가 과년한 처녀도 아닌데 귀가시간을 가지고 어머니랑 실랑이를 벌이다니
아고 ㅎㅎㅎ!!!!!

다음날 아침이 되어 식구들이랑 아침을 먹으며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말씀을 드렸더니
"아버지가 안계시면 오라비가 아버지 대신이니라…어머니 말씀대로
밤늦게 다니지 말거라…"
오라버니는 한술 더 뜨셔서 온식구가 웃음이 터졌습니다.
제가 이러고 삽니다.
과년한 딸도 아니고 쉰두살 아줌마에게도 귀가 시간을 따지는 어머니가 계시고
어머니 역성드는 오라버니가 있고 ….
정작 울앤은
늦게 다니면 차를 못 탈까봐. 길눈이 어두워서 어디 잘 못 갈까봐 그런것만 걱정하는데….
(길에 나서면 거의 수하물 수준으로 다니는 것을 아니까! )

어머니는 큰아들만 보면 행복해 하십니다.
어머니에겐 큰아들이 이세상의 중심인 것 같습니다.

아들 해바라기는 여자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순이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