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 닭다리

15 년 전
여동생 두명과 함께 필리핀을 여행한적이 있습니다.
팍상한 폭포를 다녀 오신분 많으실 것 같습니다.

팍상한 폭포를 향해가는 계곡이 참 아름답습니다.
낙엽처럼 생긴 작고 긴 보트 앞뒤에 뱃사공이 앉습니다.
승객은 뱃사공 가운데에 일자로 앉게 되구요.
처음 출발하는 곳에서 2km 정도는 모터보트에 끌려서 가다가
계곡이 조금씩 좁아 지기 시작하는 곳에선 사공이 노를 젓습니다.

나와 여동생 두명은
부레옥잠이 동동 떠서 있는 강물에 손을 담궈 보고
양 옆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계곡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계곡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쳐다 보면서 아주 흥겨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신학교 교수인 동생이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 맑은 허밍으로 음을 잡자
춤바람 여동생이 (훈이 엄마가 그때는 미혼이였습니다.)
알토로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어느 만큼 가자 검정소가 물속에서 노는것도 보이고
아낙들의 빨래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어린이들도 수영하면서 물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합니다.
아주 느리고 평화로운 풍경에 느긋해 지면서
정말 아름다운 곳이구나 여기를 안 왔으면 후회할 뻔 했군…
이러면서 여행지에서 느끼는 마음의 호사를 한껏 느끼고 있는데
계곡이 점차 좁아지면서 사공의 몸 놀림이 격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보트가 다니는 길을 따라 앞에탄 조금 나이 드신 사공이 뱃머리를 잡아주고
뒤에 있는 젊은 사공은 힘으로 밀어서 바위사이로 보트를 지나게 하기도 하고
바위를 타 넘기기도 합니다.
승객 세명을 태운 배를 바위위로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밀어 올린다는것
그것도 협곡의 빠른 물살을 거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기가막히는 일입니까?
구경도 좋지만 사람의 골을 빼는 그런 수고를 남에게 끼친다는 것이
화가 나고 속상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배를 대고 쉴만한 장소가 나오자
조금 쉬었다가 가겠다고 합니다.
난 그사공들이 쉬자고 하기 전부터 동생에게
"애 돌아가자고 하자, 이거 구경도 좋지만 사람이 할짓이 못된다.
이렇게 힘들게 사람 힘으로 보트를 움직이게 해서 폭포까지 간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이러며 돌아가자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몇년을 살았던 동생은
"언니 조금만 기다려봐!
이분들은 이노동을 해서 먹고 사는데 이걸 나쁘다고만 생각하면
이분들이 뭘 먹고 살겠어요?
오다가 조그만 아이들이 물속에서 자맥질 하고 노는것 보셨지요?
그아이들이 노는게 아니구요. 뱃사공이 되기위해 연습하는 거예요.
일종의 사공학교지요.
이분들의 수입이 대학교 교수보다 많다면 이해를 하시겠어요?" 그러는군요.

보트에 내려 속상한 생각을 접으려고 눈을 질끈 감고 바위에 앉아 있는데
"싸공 닥따리!"
"싸공 닥따리!"
이런 말이 들려서 눈을 뜨니 현지인이 고챙이에 끼워서
바베큐한 고기를 손에 들고 팔아 달라고 하는 말이였습니다.
나는 닭고기를 원래 잘 먹지도 않지만 속에서 뭔가 마땅치 않는 느낌이 있어서
먹던것도 반납하고 싶은 심정이였습니다.
"노 땡큐" 연발하며 손을 저었는데
"사공 힘들어! 닥따리 머거야해." 이럽니다.
큰동생이 옆에서 통역을 (?) 해 줍니다.
"언니 그분이 지금 한국말 하고 있는겁니다. 보트를 움직이는 사공 힘들어서
닭다리 사 먹여서 폭포까지 가라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사공 닭다리!" 라는 한국말이였습니다.
난 그가 따갈로그를 하는줄 알았지 한국말을 하리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처연해진 관광객 심리를 묘하게 이용해서 닭고기를 파는 거였습니다.
나도 별 수 없이 내마음을 위로 하고자 맘대로 드시라고
하고 200페소를 드렸더니 바베큐고기를 든 상인과 사공이
바위뒤로 함께 돌아가서 시야에 보이지 않습니다.

동생은 나에게 타박을 합니다
돈을 너무 많이 주었다는 것이고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언니같은 한국 관광객들이 이곳 물을 다 흐려 놨다구요.
돈을 받아서 바위뒤로 돌아가는 것은
고기는 먹지 않고 돈을 나누어 가진다고 합니다.
상인과 사공과 옵션을 맺어서 그렇게 한다구요.

우리동네 조금 떨어진 곳에 가구공단이 있어서
그곳에 일하러 온 동남아인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숙식은 독서실 같은 곳에서 해결하고 돈을 법니다.
점빵에 있다보면 외국인 노동자를 하루에도 몇번씩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필리핀인이 왔는데 그분과 이야기 하다보니 팍상한 폭포가 생각났습니다.
국가가 어렵다 보니 외국에 나간 노동자 들이 벌어 들이는 돈으로
고국에 있는 식구들이 먹고 사는 겁니다.
사시사철 더운 나라에 살던 사람이 낮선 계절 겨울을 만나니 얼마나 더 춥겠습니까?
추위를 싫어하는 나는 그분의 추위 타는 모습이 너무도 불쌍해 보였습니다.
손은 터서 거북등걸 같이 갈라졌고
감기에 걸려서 기침은 콜록콜록하고
음식이 맞지 않아서 위는 쓰리다고 합니다.
우리는 뭐든지 빨리빨리 해야하니까 외국인 노동자라고 슬로우모션으로
일하는 것을 봐 줄리가 없습니다.

국가가 어려우니까 국민들이 이렇게 남의 나라에 와서 어렵게 삽니다.
우리도 독일로 사우디로 돈벌러 가던때가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그런일들을 잊고 사는것 같습니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불경기를 걱정합니다.
불황의 골이 깊어졌다고 하는군요.

국가를 위해 다같이 걱정해야 할 때 인것 같습니다.

1 Comment

  1. 부산갈매기

    2006-03-03 at 13:24

    개구리가 올챙이적 기억 못한다는 말이지요…
    언제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는지…
    음식 쓰레기라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니요.
    소비가 미덕이라지만 샥스핀 요리에
    가짜양주인 줄도 모르고 양주 퍼 마시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가 되었네요…

    교통대란에, 수출에 지장을 주는 물류대란의 와중에도
    골프치는 지도자가 있는 대한민국.
    아~대한민국! 살기좋은 우리나라~~~휴~~~~

    좋은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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