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源

2004-06-22 08:32:09

야단맞는 일이 즐겁다면

제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야단맞는 일이 즐거운 정도가 아니라 삶의 에너지 源이 되니 어쩌면 좋습니까?^^


저녁식사 하러 집에 올라갔다가

전화 한통만 하고 밥 먹어야지 하고 방에 들어와 전화를 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져서

함께 식사를 하려고 기다리시는 어머니를 깜빡 잊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기다리다 못 해 방문을 열고

"뭐하냐? 밥 안 먹고?" 소리를 지르십니다.

저녁식사 시간 전후에 한가한 것을 아는 분들이 그 시간에 전화를 해서

밥 먹다가 전화를 받는 일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 야단맞습니다.

"큰애야 밥 때에 밥 먹어야지 뭔 전화냐? 요즘엔 할머니들도 다 목에 걸고 다니더라만

전화 없을 때는 어찌 살았노?"


양말을 벗어서 세탁기 안에다 넣지 않고

벗어지는 대로 훌렁 뒤집어 벗어서 세탁실 앞에 던져 놓았다가 야단을 맞습니다.

세탁실 문 열고 들어가고 세탁기 뚜껑을 열고 양말을 집어넣고…

이러는 과정이 싫어서 그냥 던져 놓고 맙니다.

손에 다른 것을 들고 있거나, 그러는 것이 번거롭고,….

"양말 뒤집어 벗지 말고, 벗어서 바로 세탁기에 넣어라.

완전히 습관성이다. 그게 왜 안되냐?"


"과일 깎게 칼 좀 가지고 오너라…"그러시는데

과도를 어디에 두고 쓰는지 몰라 "칼이 어디에 있어요?" 묻다가

"여자(!)가 주방에 과도를 어디에 두고 쓰는지도 모르냐?

좋은 시대에 타고 났으니 그렇지 옛날 같으면 ….."

집에 있는 과일도 깎기 싫어서 못 먹는 게으른 딸을 아시기에

시간 날 때 마다 깎아 주시면서

"큰애는 엄마 죽고 없으면 과일도 한쪽 못 얻어먹을 거다…"그러십니다.

그걸 놓칠 제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어머니 돌아가시면 큰 일 나지요. 어머니 안계시면

아마 난 굶어 죽을 걸요? 게으른 딸 낳아 놓으셨으니 끝까지 책임 지셔야지요.ㅎㅎㅎ"

"그래 게으른 딸 때문에 죽지도 못하게 생겼다…"


신문을 보고나서

소파나 거실에 그냥 널어놓고 치우지 않아서 야단맞습니다.

"신문을 봤으면 착착 접어서 테이블 밑에 넣어 두던지 해야지


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


야단맞는 래퍼토리가 다양한데

위에 열거한 것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야단 듣는 것이 좋습니다.

애들이 매를 벌듯이 야단을 벌어서 야단맞는 것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어머니께서도 굳이 딸의 나쁜 버릇을 고쳐 주겠다고 야단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심심풀이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머니 야단치실 때 헤헤 거리며 덜 떨어진 모습을 하는 것이 즐겁거든요.


쉰 살 된 아줌마를 누가 야단치겠습니까?

어머니나 되시니 야단치시는 거지요.

나를 무지 좋아하는 이모님도

제가 어머니께 야단맞을 때면 옆에서 아주 고소해 하십니다.

그러면 나는 아주 많이 슬픈 척 하고

"모두 다 나만 미워해…." 이러며 칠푼이 같이 굽니다.

그러면 야단치시던 어머니께서 웃고 마십니다.

아무도 동정해 주지 않는 일이지만 야단맞는 것이 이렇게 즐겁습니다.


우리어머니께서

쉰 살 된 딸이 어머니 없으면 과일도 한쪽 못 먹고

밥도 굶을 거란 생각에 오래 사셔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오래 어머니께 야단맞고 살아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삶의 에너지가 됩니다.


쉰 살 된 덜 떨어진 아줌마 야단맞는 모습 보시려면 우리 집에 오시면 됩니다.

쉰 살이 되도록 야단치는 어머니가 계셔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젠 슬슬 매도 좀 벌어볼까 생각중입니다. ^^


순이


1 Comment

  1. 고운정

    2006-03-11 at 13:54

    순이님,
    정말로 효녀이십니다.
    덜떨어진 아줌마라도 전 좋읍니다,
    건강하시기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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