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바쁜 월요일인 데도
하루종일 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어 집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야단치는 소리도 듣고 싶고
무 자르듯이 딱 잘라 말씀하시는 강원도 사투리의 음성도 듣고 싶어서 몸살이 납니다.
부지런히 일을 마치고 서울 콜택시를 불러서 타고도봉구 월계동으로 갔습니다.
가다가 생각하니 새로 이사간 집의 동호수도 모르겠습니다.
휘경동을 지나갈 쯤 전화를 했습니다.
세살짜리 막내조카가 전화를 받아서 뭐라고 종알종알 저하고 얘기하자고
수화기를 어른들께 건네주질 않습니다.
한참 후에야 올케가 받기에 동호수를 물어서 아파트 입구에 내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간다고 하니 현관 출입문 앞에 나와서 차에서 내리길 기다리고 서 계셨습니다.
반가움에 등 뒤에서 어머니를 담싹 안았습니다.
이산가족 만난 듯 몹시 반가워서 어머니를 껴안긴 했지만
나이 드시면서 몸피가 줄어들어 가시는 어머니가 느껴져 마음이 짠 합니다.
"종일 일 하느라 피곤할텐데 밤에 뭐하러 서울까지 오누?"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내심 반가워서 어쩔줄 모르십니다.
어머니 등을 안고 볼을 부비다가 막내동생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와 7살 3살 남자아이 두명
어머니와 동생내외 여섯식구가 살기에도 적은 집이 아니였습니다.
남향의 반듯하고 큰 방이 어머니 방이였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면 아무래도 손님이 많이 드나들어서 동생댁이 좀 불편할듯 한데
그런 내색없이 반가워합니다.
어머니 방에는 뜨개질하는 바구니가 보입니다.
웬 뜨개냐고 여쭈었더니 교회노인학교 숙제라는 군요.
노인학교 선생님께서손가락을 열심히 쓰면 치매가 예방 된다고 숙제를 내 주신답니다.
만약 숙제를 안해 가지고 가면 종이접기반으로 쫒겨 나는데
종이접기는 뜨개질 보다 더 어려워서 뜨개질 숙제를 열심히 하신다는군요.
굵은 실로 매트를 뜨고 계셨습니다.
동네가 낯선데 지낼만 하신가 여쭈었더니
손자손녀 재롱 보는 것도 좋고 교회에서도 목사 모친이라고 대접도 남다르고
막내며느리와도 협조가 이루어져서 좋다고 하십니다.
동생댁도 아이 세명 대리고 꼼짝도 못하다가 시어머니가 계시니 아이들 맞기고
교대로 외출하니까 조금 자유롭다고 합니다.
교회 사모들 모임에 아이셋을 다 대리고 갈 수도 없고 아직 아이들만 두기엔
너무 어리고 해서 좀 힘들었었나 봅니다.
어머니께서 우리집에 계실땐 작년에 잃은 아들 생각이 몹시 나서 한시도 편하지 않았는데
환경을 바꾸니 견딜만 하시다는군요.
초등학교 2학년짜리 손녀가 과일을 깍아서 새참도 해오고
할머니 안마를 어린 손자 손녀가 서로 해 준다며 정이 새록새록 들고 있었습니다.
조카아이에게 "할머니 큰고모가 모시고 갈까?" 했더니
"우리할머니는 우리랑 사셔야 한다."며 반대를 하는데 필사적이였습니다.
할머니가 안계시다가 계시니 아이들이 좋은가 봅니다.
두어시간 어머니랑 이야기 하고
다시 돌아서 오는데 마음에 정리가 됩니다.
어머니껜 환경을 바꿔 드리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이고
나도 언제까지 어머니를 괴롭히며 살 수는 없는것 아닌가?
집옆에 아들이 목사로 있는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뜨개질 숙제를 받아와서 치매예방으로 햇빛 잘드는 따뜻한 방에서
뜨개질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좀 허전해도 어머니를 놔 드리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어머니 오시라고 더이상 조르지 않으려고 다짐합니다.
사랑하는 막내 아들집에서 손자 손녀들과 함께
돋보기를 끼고 뜨개질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없이 평안해 보였습니다.
순이

1 Comment

  1. 고운정

    2006-03-29 at 12:21

    순이님, 예쁘고 파스텔 색 톤의 실을 사다 드리세요,
    자그마한 소품이라도 뜨시면 성취감도 있으시고,
    말씀대로 치매 예방도 되고,,,,,,일석 이죠 ㅎㅎㅎ 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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