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위한 기도

점심식사를 마치고
막 자리에 앉아 있는데 깨끗한 차림의 할머니가 들어 오십니다.
"써큐0 주세요"
"예 여기 있습니다"
"이건 작은 포장인데 큰 포장으로 주세요. 이건 얼마 못 먹어요"
"지금은 이것 밖에 없는데요"
"그럼 주문해 주세요. 전화하면 찾으러 올께요"
"그러세요"
"우리집 전화는 975-98** 은영이 할머니 입니다"
"예 구해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녹용이 집에 많이 있는데 보약 넣어서 다려 주지요?"
"네 녹용가지고 오시면 한약 넣어서 해 드리지요."
"낼 가지고 와야 하겠네…"
"지금 난 백화점 다녀 오는 길이유…이 티셔츠를 육만오천원 주고 샀어요. 정가가 십삼만원인데 싸게 샀지요?

백화점 세일이라 싸더라구요."
"네~에"
속으론 무슨 티셔츠를 육만원이 넘게 주고 사 놓고는 싸게 샀다고 하는지…

돈이 많은 노인인가 보다…그렇게 생각했지요.

"아참 영감님 영양제를 하나 사야하는데…"
"뭘로 드릴까요?"
"그게 뭐드라 저거든가 저거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로 두개를 꺼내 드렸습니다.
이건지 저건지 모르겠는데…가지고 가서 영감님께 물어 보고 와야겠네요…..금방 가서 물어 보고 올께요"
그러시더니
쇼핑백에서 꿀떡을 한뭉치 꺼내 주시며 먹고 있으라고 합니다.
"아니 떡을 사가지고 가시는 길인데 가져 가서 드세요"라고 사양을 해도
"노인 둘이 이걸 다 먹겠소, 두분이 드세요"
그러시며 황망히 문을 열고 가십니다.
쇼핑백은 맡겨 놓으시구요.

그런후 한 서너시간이 지날 때까지 잊고 있었습니다.
쇼핑백이 눈에 띄기에
"이거 아직 안 찾아 가셨네? 전화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노인이라 깜빡 잊으셨나본데…."
아까 불러준 전화로 전화를 걸었더니 결번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긴가 민가 하고 있었는데
막내 여동생이 왔기에 이렇다고 말했더니
"아이구 우리 순진한 언니… 비싼 떡 사드셨네! 언니 장사꾼 맞아요?"

동생을 말로는
우선 비싼옷을 꺼내 보이며 "싸다"고 말할 때 알아 봤어야 하고
남편이 하루이틀 먹는 약이 아니고 맨날 드시는 영양제를 모를 아내가 어디 있으며
두병을 다 가지고 나갈때 의심해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지나 놓고 보니까 그렇긴 그런데 당할려니…..

60대 후반의 할머니께서 설마 그러시리라고는 상상도 안가는 일이고
쇼핑백도 놔두고 가시고….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 쇼핑백 속에 있는 티셔츠는 가격표를 다른옷에서 떼어서 붙였는지?
나중에 보니 헌 티셔츠였습니다…그러니까 가짜 가격표를 꺼내서 흔들어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싼 꿀떡을 먹어 봤습니다.
ㅎㅎㅎㅎㅎ
그런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지요? 후후후

그래서 육만원어치 약을 헌티셔츠 한개와 꿀떡 한봉지랑 바꾼 셈입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후
어머니와 차 한잔을 하려고
어제 먹다 남은 꿀떡을 전자렌지에 쪄서
함께 찻상을 차렸습니다.

어머니께서 "기도 하자" 그러시기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전략
할머니께서 남은 생애에
다시는 거짓말 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의 삶이 궁핍함으로 인하여
남을 속이는 일이 없도록 그 할머니의 삶을 축복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이번일을 끝으로 다시는 남을 속이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할머니의 여생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후략

저는 쿡 하고 웃을 뻔 하였습니다.
"어머니 멍청한 딸을 위해 기도 하셔야지 왜 할머니을 위해 기도 하세요?"
"너야 손해만 좀 보면 되지만 할머니는 불쌍하잖니.
그나이 먹도록 그러고 다니시다 언제 회개하고 천국 가겠니?"

"우리 어머니닌 천국 아랫목은 맡아 놓으셨네..ㅎㅎㅎ"
커피를 마시며 한개 먹은 꿀떡이 너무 맛있어서
"어머니 역시 떡도 비싼게 맛있네요!"라며 계속 실실 거렸더니
"얼른 차 마시고 내려가라 문 열 시간이다
그리고 남을 죄 짓게 만드는 것도 큰 죄니라 상대가 죄 짓지 않도록 지혜있게 처신 해야한다."
"네 알겠습니다.그치만 내가 그렇게 영글지 못한데 우얍니까? 딸을 좀 똑똑하게 만드시지…."
헤헤 거리며 점빵에 내려오기는 했는데
어머니 말씀에 일리가 있어서 속이 좀 찜찜합니다.

사람이 어리버리해서
남을 죄짓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되었으니….

1 Comment

  1. 부산갈매기

    2006-03-29 at 05:21

    참으로 현명하고 어진 어머님을 모시고 계시는군요…
    존경스럽습니다.
    그 할머니를 욕하기전에 죄를 짓도록 만든 딸을 나무라시다니….

    좋은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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