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필요한 곳에서

2004-04-09

어머니께서
고추모를 사다가 옥상 매일농장에 심으셨습니다.
한 여름에 어머니 밭에서 금방 따온 상추와 고추를
따끈한 밥에 고추장을 찍어서 먹으면 얼마나 싱싱하고 맛있는지 모릅니다.
고추모 사가지고 올라 가시는 어머니께
"여름에 맛있는 고추 먹게 생겼네요." 했더니
"그래 심어야 먹지 열매가 그냥 달리냐?"그러십니다.
"도와 드려요?"
"아니다 내가 해야지."

옥상에 올라가 흙 한삽 넣거나 거들지는 않고
열매가 달리면 먹을 궁리 부터 하는 딸 무척 얄미울텐데
우리어머닌 저만 보면 뭐라도 먹으라고 채근하십니다.
"얘 과일좀 먹어라, 넌 왜 과일을 잘 안먹니?"
"밥 좀 많이 먹어라 먹는게 신통치 않아서 걱정이다."
"야채쥬스 좀 해 줄까?"
연세드신 어머니를 내가 챙겨야 하는데
거꾸로 어머니께서 딸을 챙기시느라 고생이십니다.
아침 공복에 커피 마신다고 걱정하시고
안색이 조금만 안좋아도 "어디가 아픈가?" 물으십니다.
50년 동안 딸을 돌보시고도 아직도 밥 굶을까 아플까 노심초사 하십니다.

당신이 낳은 자녀만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자녀까지 어머니는 돌봐야 하십니다.
춤바람동생의 아들 훈이 준이까지 맡아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훈이에미는 바빠서 한밤중에나 아이를 대려가고
그도 안되면 어머니가 준이를 대리고 주무시게 됩니다.
어린아이 잠이라는 것이 보통 험한 것이 아니라 온 방을 뒹굴며 자는데
노인들은 잠들기도 어렵고, 잠이 깨면 쉬 잠들지도 못하는데
그아기를 돌보느라 얼마나 힘드실까요!
그래도 아이 대려가라 소리 안하시고 되도록이면
어머니가 대리고 주무시려고 합니다.
춤바람동생 힘들까봐 그러시는 거지요.

춤바람 동생이 어머니께 애교 부리면서 하는 말 좀 들어보세요.
"엄마! 엄마는 백살까지 사셔야 해요."
"왜?"
"그래서 훈이 준이 장가 가는것 까지 보셔야지요."
"그 다음엔?"
"훈이 준이 장가가서 아이 낳으면 봐 주셔야지요.ㅎㅎㅎ"
"그래 엄마는 죽지도 말고 맨날 애만 키우라고?"
" 난 엄마 없으면 못 살아… 나가서 춤 추다가 생각해도 애들이 엄마하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일하지 다를 사람에게 맞겨 놓으면 불안해서 일이 되겠어요?"
"너는 엄마가 애들 돌볼 힘이라도 남아 있으니까 죽지 마라고하지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다면 죽지 마라고 하겠냐?"
" 안돼! 엄마는 아파도 안돼고 돌아가셔도 안돼!."
"억지 심한것은 나이 먹어도 여전하구나..엄마가 안죽고 싶다고 안죽냐?"

어머니와 동생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으려니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계셨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합니다.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고 힘이 되면 그보다 좋은일이 어디 있겠어요.

도치아빠는 우리 형제가 어머니께 꼼짝 못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깁니다.
장모님이 힘이 강해서 자녀를 때리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 크게 소란을 피시는 것도 아니고
혈압이 높아서 쓰러지실까 화를 안 내시도록 자녀들이 조심하는것도 아니고
뭐 때문에 큰처남부터 막내처남까지 꼼짝 못하고 쩔쩔 매냐고 합니다.
어느날은 도치아빠가 어머니께 묻습니다.
"장모님! 혹시 유산 많이 숨겨 두신것 있으세요?"
"그런거 없네, 왜 그런걸 묻나?"
"도치모친이(저를 남편이 장난스럽게 호칭할때 이렇게 부릅니다.) 어머니께
꼼짝 못하는 것이 혹시? …. 그렇지 않고서야? …"
"ㅎㅎㅎ 그런거 없네, 내가 아직 힘이 있으니까 애들이 부려먹는 맛에 그러네…."
"부려 먹다니요?"
" 내가 중풍이나 치매에 걸려서 누워 있다고 하면,
누가 나를 오히려 돌봐야 하는데 그러면 나를 좋아하겠는가?
자네 같으면 좋아 하겠어? 필요하니까 좋아하는거지…"

어머니의 결론은 정확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누워 계신다면 자녀에게 짐이 될 터이고
요즘 같은 세태에 짐이 되는 부모를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설사 짐이 된다고 해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 이겠지만
좋아 하지는 않겠지요.

노인이 되신 어머니의 조금 남은 노동력 까지도 참 알뜰히도 빼서 쓰는 야속한 딸 들 인데도
우리 어머니 자녀에게 섭섭해 하시지 않습니다.
항상 자녀에게 뭘 해줄까?

뭘 도와줄까? 이런 생각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장 필요한 곳에서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어머니가
늘 바라보고 계셔서 힘이 됩니다.

나도 우리 도치들에게 나이 먹어도 저렇게 필요한 엄마여야 하는데…
그런 생각도 듭니다.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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