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백발이 되신 어머니

어머니께서 저의집에 계실땐

생신이나 어버이날 같은때 오라버니와 동생들이 우리집으로 왔었기 때문에

찾아가 문안을 드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줄 몰랐습니다.

남동생집으로 거처를 옮기신 어머니께

어버이날을 맞아서 내가 찾아가는 일이 낯설고 처음으로 있는 일이라

며칠전 부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가 뵈야 하겠기에 이웃 꽃집에 주문했던 꽃바구니를 찾아 들고

염색약과 몇가지 약을 더 챙겨들고 어제 늦은 오후에 어머니댁을 방문했습니다.

동생집에서 몇달 지낸 사이에

어머니께서 염색을 하지 않아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있었습니다.

작년에 작은 아들을 먼저 보내고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이 되신후로

매사에 의욕을 잃고 부쩍 늙어가는 모습입니다.

"힘들게 뭐하러 왔냐?"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내심 반가워서 어쩔줄 모르십니다.

어머니 방에는 자녀들 사진이 빼곡히 걸려있습니다.

결혼식때 사진이나 우리들 대학 졸업사진,가족이 모였을때 찍은 사진등으로

벽마다 도배를 해 놓고 보고 계셨습니다.

A4용지에 프린터로 인쇄된 종이사진 두장은 어머니화장대 거울에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 놓았습니다.

"어머니 저 사진은 안보이는데 뒀다가 어쩌다 한번씩 꺼내 보셔야지 맨날 쳐다보시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했더니 "아니다 저렇게 라도 쳐다 봐야지 못보면 안된다"하십니다.

종이사진 두장이라는 것이

작년 5월말 동생이 죽기 딱 일주일 전 나와함께 호수공원 장미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일요일 오후였는데

차를 점빵앞에 갔다 대 놓고는 동생이 조릅니다.

"큰누님 호수공원 가십시다."

"점빵은 어떻하고?"

"일요일인데 문 좀 닫으면 어떻습니까? 공원장미가 너무 좋은데 가서 장미향기도 좀 맡고

산책도 하고 그러십시다." 그래서 따라나가게 되었습니다.

장미원에는 장미가 흐드러지다 못해 조금은 지고 있어도

동생의 말처럼 호수공원엔 아름다운 오월의 향기가 만발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산책을 하고 난 후에

넝쿨장미가 늘어진 밴치에 동생과 내가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한장찍었습니다.

주황색 티셔츠에 검정 등산바지를 입은 동생이 내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다른 한장은 동생이 자기 아이들과 장미원에서 그날 찍을 사진입니다.

사진을 매일 바라보고 속을 썩으실 것을 생각하니 사진을 거둬서 없에 버렸으면 싶은데

어머니가 동의하지 안으셔서 그냥 두었습니다.

불효중에 가장 큰 불효가 부모앞에 먼저가는 일인것 같습니다.

나는 백발이 되신 어머니를 보는 것이 너무 싫어서 "어머니 염색 하십시다." 했더니

"래미아빠가 싫어한다."라고 하시는군요.

"어머니가 하시고 싶으면 하시는 거지 왜 막내가 어머니 염색을 못하게 하냐?"고 했더니

나이 드시면 백발이 보기 좋고 염색하면 눈이 침침하고 해롭다고 못하게 한답니다.

어머니 계시는 앞에서 남동생을 불러놓고 한바탕 야단을 쳤습니다.

자네는 목사가 되어가지고 사람의 심리를 그렇게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머리가 희어지면 마음이 위축되고 남에게 기운이 없어 보이고 나이보다 더 노인처럼 보이기 때문에

염색을 해서 눈이 침침하고 머리속이 가렵고 옷을 타고, 발진이 돋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슴에도 불구하고 염색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이다 .

그러니 어머니 염색하는것 말리지 말아라…..딱 못을 박았습니다.

호호백발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은 정말 싫더라구요.

딸하고 아들하고 다른것은

딸은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데 아들은 원칙을 주장하는 겁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서 염색 하셨냐고 여쭈었더니 아직 못하셨답니다.

래미아빠가 하라고 하니 이제 해 볼까 하신다는 군요.

내머리도 희어져 가지만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신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은 너무 슬픈일입니다.

몸에 해롭지 않은 염색약이 있으면 좋은데 아직은 그런게 없더라구요.

헤나염색약은 옷을 안탄다고 해서 써 봤지만 백발의 가는 머리칼에는 염색이 되지 않습니다.

노인 모발에는 비싼 염색약보다 천원 이천원하는 가장 싼 염색약이라야 물이 잘 듭니다.

비싼 염색약은 첨가물이(?) 많아서인지

염료성분이 적어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의 기름진 모발엔 염색이 잘 되는데

완전 백모이고 가늘고 힘없는 모발엔 도저히 물이 들지를 않습니다.

들었다가도 금방 탈색이 되고 말구요.

춤바람 동생 가족도 어머니 뵈러 와서 함께 위문공연을 하였습니다.

하이서울페스티발에서 퍼레이드를 하느라 피곤한데도 어머니를 뵈러온

훈이네 식구가 이뻣습니다.

오랜만에 어머니랑 이야기 하다가 자정이 넘어서 집에 왔더니 종일 피곤하군요.

위문공연이나 재롱도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이서울 페스티발에서 카퍼레이드중인 준이)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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