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작년 이맘때엔
어머니 텃밭에서 소출이 솔찮아서 가지 호박 반찬이나 상추, 고추등은 아쉽지 않게 먹었는데
올핸 비가 잦은 탓인지 농장을 옮겨서인지 농사가 신통치 않습니다.
어머니께서 고추가 익지않고 비에 녹아 버린다고 걱정하시고
벌래가 많이 생겨서 별 재미가 없으신가 봅니다.
(뜸물이라고 하는 고추잎에 자잘한 벌래가 덮히는 병이 들어서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합니다.)

그래도 부지런히 옥상을 오르내리시면서 농사를 돌보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옥상부터 둘러 보시는게 첫 일과시거든요.
올핸 흙에 거름이 너무 과했던것 같다고 하시면서 내년엔 농사가 잘 될거라고 기대하십니다.
올핸 채송화도 안 피었어요
호박꽃도 없구요.
이사하면서 채송화씨가 깊이 묻혔나본데 나질 않았어요.
내년엔 볼 수 있겠지요.
농사가 흉년인데도 몇잎 상추랑, 몇개 고추를 따다가 점심상에 놓아 주십니다.
오늘 점심에 물에말은 밥에 풋고추 몇개를 맛있게 먹었더니 기운이 좀 나는것 같습니다.

옥상에서 내려오시면 다음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십니다.
어머니 빨래터는 앞베란다에 수도를 뽑아 물이 나오게 하고
다른쪽으로 물이 흘러 가는 것을 막은 한평이나 될까 하는 조그만 장소입니다.
커다란 프라스틱 물통에 물을 받아 놓고 바가지로 물을 퍼서 쓰는
오래전 시골의 우물가나 수돗가와 같은 풍경입니다.
맨날 뭘 그렇게 빠시나 하고 보면 양말이나 수건 하다 못해 걸래라도 빠십니다.
우리집 걸래는 웬만한 행주보다 깨끗합니다.
세탁기에서 나온 양말도 깨끗하지 않다고 다시 손빨래를 해서 널으시기도 하고…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옷은 세탁기에 절대 넣지 않으시고
입으셨던 옷은 직접 손빨래를 하십니다.

자녀들이 많으니까
무슨 날일때 선물 받은 옷이 많으신데도 아껴 두시고 맨날 입으시던 허름한 옷만 즐겨 입으십니다.
넌닝셔츠도 몇년 입으셔서 면이 낡아서 하늘하늘 하고 구멍난 옷을 매일 빨아서 입으시는데
포장도 뜯지 않은 넌닝셔츠만도 10개가 넘게 장농에 있지만 아끼두고 입지 않으시곤 헌것만 입으십니다.
새것은 언제 입으실거냐고 제발 헌옷좀 버리라고 말씀드려도 그러실 의향이 전혀 없으십니다.
"새옷은 언제 입으실거냐?" 고 물으면
"나중에" 입으시겠답니다.
"나중에 언제 입으실거냐"고 재차 물으면 아무말씀 안하십니다.

저의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세수수건도 기워서 쓰셨어요
오래 써서 가운데가 낡아서 떨어지면 다른 헌수건에서
좀 멀쩡한 부분을 오려 붙여서 기워서 쓰셨습니다.
나중에 돌아가시고 난 후에 할머니 소지품을 정리할때 보니까
새수건이 얼마나 많은지…. 친구분들 회갑이나 교회등에서 받은 기념타올등

그런 이야기를 어머니께 하면서 새옷을 아끼지 마시라고 아무리 말씀 드려도
젊을때 부터 새것은 아끼고 물자를 절약하던 습관이 몸에 배서 낡을 대로 낡은 것도 버리지 않고
한번만 더입고 버리자 한번만 더입고 버리자 …그러시면서 여름내 입으십니다.
어머니의 떨어진 넌닝셔츠를 들고 보다가
"박물관에 보내야 겠네요 이렇게 되도록 입으시면 메리야쓰 장사 다 굶어 죽을 것 아네요?
절약하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고 요즘엔 소비를 해야 한다니까요…"라고 말씀 드렸다가
야단만 호되게 맞았습니다.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 조금 살게 되었다고 함부로 낭비하면 되냐구요.

어머니는 절약하여 모으고새옷등을아껴 두셨다가 고아원이나 양로원 아니면 이웃의 불쌍한 할머니를 가뎌다 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는
몸은 현대에 살고 계시지만
생활방식은 60년대 쯤에서 머물고 계신것 같습니다.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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