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같은 곡을 가지고도 연주자에 따라서 분위기 천차만별입니다.

초등학생 글 읽듯 하는 연주를 듣고 나면

뜨겁지도차지도 않은밍밍한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 듭니다.

아주 가끔은 음악회에서 맹탕의 연주를 만나기도 합니다.

저런곡을 가지고 저렇게 얌전하게 연주 할 수도 있네?

맹탕이라고 말 하는것은 소금이 덜 들어간 국을 말할 때 쓰는 말이지만

음악을 듣고 난 후에 밍밍한 느낌이면 ……"진짜 맹탕이네" 속으로 이럽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솜씨 좋은 분은 맛있는 요리를 해서 내고

솜씨 없는분은 아주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맛없는 요리를 만듭니다.

반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곡을 가지고 피아노가 부서져라 씩씩하게 연주하는 분도 있습니다.

연주자의 열정이 넘쳐도 그렇고 열정이 너무 없어도 보기 딱합니다.

지난주 신봉애 교수님의 연주회는

적절히 아름답고 절제되고 사랑이 담겨있는 지극히 좋은 연주회였습니다.
누군가 신봉애교수님 연주를 "살아 있는 영혼의 울림" 이라고 하셨다는데정말 그렇습니다.
곡의 끝 맺음이 그렇게 신중한 분도 처음 만난것 같습니다.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음악에 박수를 아껴가며 끝까지 귀 기울이게 만드는 그런 연주였습니다.

섬세하고 조용하고 신중하게 …..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견함이랄까 음악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그런것 까지볼 수 있었습니다.

연주가 다 끝나고 나자 어떤 신사분이 "모처럼 귀를 맑게 한것 같다"고 말씀하시자

돌체사장님도 마지막 인사말씀을 하실때 똑 같은멘트를하셔서 웃었습니다.

본질에서 벗어나 현상에 취하면

그음악은 이미 음악이 아니고 조악해집니다

곡이지니는 본질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기술까지 있으면 훨씬 좋아집니다.

그러나 기술이라는 현상에 매달리면 본질을 벗어난 음악이 되는것을 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필요없는 일에 너무 마음을 쓰면 본질을 잃게 되고

드러나는 현상을 쫓아가게 되면 본질과 상관없는 일과 씨름을 하고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그러다 본류를 벗어나면 사고가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나름대로의 서러움과 아픔과 슬픔이 누구엔들 없겠습니까?

중학교 다니는 조카가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닌 선생님이 스타선생님으로 학생들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젊은 여선생이 코미디언 이상의 제스쳐를 쓰면서 목소리의 톤은 한껏 높아져 있고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발칙한(?) 모습입니다.

짧은 치마에 긴머리 가슴선이 보일듯한 야한차림으로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분이 스타강사랍니다.

내가 생각하는 선생님은 근엄한 모습으로 머릿속에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런가쳐다보기가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분이라야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답니다.

텔레비젼이라는 매체로 부터 아기때 부터 답습한 요란스러움에 익숙해 있는터라

조근조근 가르치는 방식으로는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때 선생님처럼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님은 인기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열정을 요구하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열정은 있어야 합니다.

열정은 긍정적인 마음의 산물입니다.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조용한 열정이 가득한 절제된 아름다움에 크게 마음이 동화되었습니다.

신봉애교수님의 피아노 연주로

빌리 엘리어트 영화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142번을 들으면서
"춤을 한번 추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요
몸에서 불꽃이 일어서 새처럼 날아갈 것 같아요"

라고 말하던 춤에 몰입하는 소년 빌리도 생각이 났습니다.

일상에서 좋은 연주회를 만난다는것은 큰 행운입니다.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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