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타신 어머니

불볕더위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아스팔트를 달구는 볕이 자글자글 끓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제

이더위에 어머니와 동생들 가족이 만나 서울대공원을 가겠다고 해서

더위 먹는다고 말렸지만 시간 맞추기가 서로 어렵다면서 기어코 가더군요.

어머니께서 무릎이 늘 아프셔서 실히 걷는 일을 잘 못하시는데

서울대공원 그 넓은곳을 햇볕을 이고 어떻게 다닐까 보통 걱정이 되는것이 아닙니다.

대공원으로 출발하기 전 남동생에게

대공원 입구에 휠체어 빌려주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휠체어를 하나 빌려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라고 당부했더니 막내 남동생이랑 막내 여동생이 웃습니다.

"언니는 엄마를 아직도 몰라요? 어머니가 자존심 때문에 지팡이도 안 짚으시는 분인데?"

이러기에 꼭 그렇지만은 아닐꺼라고 예를 들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래전

작년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남동생의 결혼식날 외가에서 큰외숙모님 작은외숙모님께서

강원도에서 참석하러오셨습니다.

지금은 두분 다 돌아가시고 안계시고 그때도 연세가 높으셨습니다.

어른들이 조카 결혼식을 축하하러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오셨는데 그냥 보내 드리기가 뭣해서

우리집에서 하루 주무시게해서 다음날 모시고 서울대공원을 갔었습니다.

큰외숙모님은 저에게 사촌오라버님 되시는 큰아드님이 서울에 살고 계셔서 내외분이

대공원을 따라 갔었고 작은외숙모님은 따라온 자녀들이 없었습니다.

공원입구에서 사촌오라버님이 큰외숙모님을 위해 휠체어를 하나 빌리시더니

대공원 한바퀴를 다 돌도록 휠체어에 앉아서 구경을 다니는데 얼마나 기분이 양양하신지 모릅니다.

반면 작은외숙모님은 따라온 자녀도 없고 큰외숙모님이 계시고 나이도 큰외숙모보다 아래이시니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어른대접이 소홀했을것 같습니다.

걸어서 대공원을 돌던 작은외숙모님이 삐치셔서

입을 삐죽거리시며 "형님은 창피하게휠체어를 타고 다니느라 아들까지 고생시킨다" 며 흉을 보시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 내외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대공원을 구경한일이

큰외숙모님은 저를 만날 때마다 두고두고 말씀하실 정도로 좋으셨다고 합니다.

"그때 호랭이(호랑이)도 봤고 코뿌래기랑(코뿔소) 모강지 긴 그 뭐시냐 (기린)그런것도 봤지?

내가 대공원을순이 덕분에 다 구경했다." 이러시면서요.

동생들에게 이런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머니께서 아픈다리로 무리하지 않게

꼭 휠체어로 모시고 다니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나의 예상은 맞았습니다.

휠체어에 앉으셔서 막내제부와 막내남동생이 교대로 밀고 다니면서 대공원을 샅샅이 구경하셨다는군요.

더운데 남동생과 제부가 고생은 좀 했겠지만 어머니께 효도할 기회가 어디 그리 흔하겠냐고

핼스장에 가서 땀도 빼는데 운동겸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오후 3시쯤 집에서 출발해서 밤 1시나 되어서 집에 오셨더군요.

야간개장을 하는 서울랜드에 가서 막내남동생 아이들 세명과 훈이준이를 풀어 놨더니

얼마나 잘 노는지 집에 올 생각을 안해서 싫컨 놀았다고 합니다.

노인이 무슨 기운에 그렇게 오래 놀고 오셔서도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십니다.

옥상도 오르내리시고 배란다에서 손빨래를 하시는 등 일찍부터 일어나서 다니시기에

어머니는 피곤하지도 않으시냐고 여쭈었더니 많이 안걸어 다녔더니 괜찮다고 하십니다.

휠체어타고 다니신것이 조금도 싫지않으신가 봅니다.

저는 모른척했습니다.

우리어머니는 양쪽 무릎이 다 퇴행성관절이라 늘 다리가 아프다고 하시면서도 잠시 쉬지를 않으십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지팡이를 짚으라고 사다 드려도 창피하다고 안 짚고 다니시는분이

놀이공원에 가서 아들이랑 사위가 밀어주는 휠체어는 기분이 나쁘지 않으시니 다행입니다.

평소에 어머니 성품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지금도 저는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지만 젤 어려워합니다.

죽은 작은아들 생각이 나서 환경을 바꿔보시겠다고 막내아들집에 가서 몇개월사시다가

뉴질랜드에 살던 동생이 두어달 귀국하게 되어 우리집에 머물게되어 그 핑계로 어머니를

다시 우리집에 오시게 했는데 이젠 다시 가실것 같지는 않습니다.

환경을 바꾼다고 해서 죽은 아들이 잊혀질리는 만무하고 노인을 모셔보지 않던 막내아들 내외가

어머니 맘에 들리가 없습니다.

막내는 막내의 근성도 있고 신세대들이라 우리하고는 또 다른 생각이라 어머니가 쉽지만은 않으셨나봅니다.

저로서는 어머니께서 다시 가신다는 말씀이 없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머니 농사철을 놓쳐서 옥상에 올 농사만 못 지으셨는데 내년엔 고추농사 하셔야지요?"

라고 넌지시 여쭤보면 그래야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을 보면 우리집에 계실것 같습니다.

어릴때 아버지는 늘 저에게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우리어머니는 어찌나 칭찬이 박하신지 서운할때가 많았습니다.

내딴에는 공부좀 했다고 어머니께 성적표를 내 보이면

"해주는 밥먹고 공부도 못하면 뭣에 쓰냐? " 이러시면 도무지후한 말씀을 안하십니다.

너무 엄격하고 무서운 어머니시라 연세 드셔서 괴팍한 노인이 되면 어떻하나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마음씨 좋은 할머니로 변해 가시니

자녀된 입장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휠체어 탄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휠체어에 앉아서 느긋이 대공원을 다녔을 노인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보면 흐믓합니다.

다리는 아파서 오래 걷지도 못하시는 분이 구경은 다니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으며 얼마나 화가 나시겠습니까

거기다 휠체어를 타는 일이 정말 내키지 않으면 억지로 타고 다니자고 할 수도 없으니 곤란한 일이 잖아요.

나이드시면서 자녀에게 잘 협조하면서 고집부리지 않고 양보하시면서

조화롭게 생활하시는 어머니가 정말 고맙답니다.

순이

3 Comments

  1. 봉천댁

    2006-08-06 at 03:39

    여든 줄의 저희 할머니를..

    놀이공원에 모시고 갈 수 있다는걸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

       

  2. 스크래퍼

    2006-08-06 at 15:42

    네~
    혹 양가 어른들 모시고 나들이 갈 기회가 있으면
    꼭 해드려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Lisa♡

    2006-08-07 at 15:01

    좋은 본보기가 되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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