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마사지

요즘 들어
점방에 앉아있는 시간을 과감히 줄이고
병원 진료시간이 끝나면 집으로 일찍 들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초저녁 어머니와 둘이 있게 되는 오붓한 시간이 주어지는군요.
어머니는 초저녁잠이 많으셔서 9시 뉴스를 다 못 보고 잠이 드시기 때문에
내가 11시쯤 일을 끝내고 들어가면 어머니를 못 뵙게 될 때가 많습니다.

며칠 전 몹시 추웠던 날에 손녀 졸업식에 가서 몇 시간 밖에서 떨고 오셔서
얼었는지 발이 아프다고 봐달라고 하셔서 어머니 발을 들여다봤습니다.
가끔 어머니 발톱을 깎아 드려서 어머니 발을 보는 것이 낯설지는 않지만
지난가을 큰 수술을 받은 이후에 몸이 약해 지셔서
발에도 살이 더 얇아져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발이 작아져 보입니다.
어느 해 겨울 동상으로 빠졌던 발톱이 다른 색깔로 붙어 있습니다.
나이 들면 피부에 탄력이 줄어들고 주름이 생기는 것은 피하지방층이 없어져서 인가 봅니다.
어머니 발이 이렇게 여위도록 우리는 어머니의 수고를 먹고 살았군요.
어머니 발을 보고 내 발을 보니 얼마나 크고 두툼한지 내발은 도둑놈 발 만 합니다.^^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티눈도 박혀있고 무좀도 생기는 것 같고 발톱도 깎아야
할 때가 되었기에 오랜만에 어머니 발을 토탈케어 해 드리자고 맘먹고 시작했습니다.

가위로 티눈을 잘라내고 굳은살도 페퍼로 밀고 발톱을 깎았습니다.
로션을 듬뿍 발라 발등과 발바닥을 마사지도 했습니다.
전에 마닐라에 갔을 때 받아본 발마사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찬찬히 지압도 했습니다.
눈 아픈데 뭐 하러 골몰하느냐고 어머니께서 말리셨지만
"저도 맘먹고 하면 발마사지 잘해요.팁만 많이 주세요.ㅎ"라고 말씀드리곤 열심히 주물러 드렸습니다.
발톱색이 틀린 발톱을 가리키며 "이건 언제 빠졌었지요?’라고 여쭈었더니
오라버니 대학 들어가던 해에 빠졌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71년…..30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그 때의 고생스럽던 흔적을
발톱은 고스란히 간직한 채 어머니 발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즈음 우리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11식구였는데
펌프 물을 길어서 연탄불에 밥을 하고 많은 식구 빨래를 하느라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손에 물마를 날이 없었고 발도 늘 젖어 있었다고 하시는 군요.
털신도 없었냐고 했더니
털신이 없었던 게 아니라 사 신을 형편이 안됐다고 고무신을 신고 일을 했었다고 하십니다.

내친김에 메니큐어도 발라드리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됐다, 발이 갑자기 너무 호강하면 놀란다.“ 이러시는군요.
어머니의 무릎수술은 별 후유증 없이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무릎이 만곡 되어 서있기도 걷기도 힘드셨고 불안정해 보여 어머니 다리를 볼 때 마다 속상했었는데
수술 후 반듯해진 자세가 되어 보는 우리 자녀들도 흐뭇하고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다고 통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수술 전 보다 나아진 정도라고 하시는데
만약 퇴행성 무릎관절로 고생하는 어른이 계시다면 수술을 권할 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머니 발을 주물러 드리고는 혼자 흐믓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존재는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어머니의 조력을 받고 살기 때문에 어머니가 더욱 소중한 것 같습니다.
설이라고 상주 곶감이나 제주 한라봉, 한과 같은 작은 선물이 점방에 들어오면

어머니께 가져다 드립니다.
“옛날 임금보다 잘 먹는구나.” 이러시며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데
저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기쁨니다.
명절에 동생들 가족이 오면 먹일 것을 챙기시는 어머니 모습이 은근히 신이나 보입니다.
고기와 떡국거리도 사다 놓으시고 세뱃돈도 신권으로 준비해 두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계셔서 명절 맞는 기분이 납니다.

즐거운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순이

2 Comments

  1. 청풍명월

    2007-02-17 at 12:18

    효심에 감복입니다.   

  2. 래퍼

    2007-02-20 at 13:14

    명절 때 언뜻 눈에 띈 시어머님의 발이 창백해서
    마음이 철렁했어요..
    하지만 내색은 못했습니다..
    친정엄마의 발이었어도 보고만 말았을지를
    또 반성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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