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체 홈페이지에서 옮김)
영화<쇼생크 탈출>과 모차르트의 선율
평소에는 그 존재감을 못 느끼다가 막상 그것이 사라졌을 때 그 존재감을 강하게 느끼는 요소들이 있다 물,
공기, 바람, 햇빛, 그런 것들. 자유 역시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넘칠 땐 정작 그 감사함을 모르고 있다가
부족하거나 박탈당했을 땐 생존(生存)이라도 걸고 되찾고자 하는 것……아이큐 높기로 유명한 짱구 머리 팀
로빈스(Tim Robbins)가 주연했던 <쇼생크> 탈출은 바로 그러한 ‘자유 찾기’에 관한 영화이다.
프랭크 다라본트(Frank Darabont)가 감독하고 앞서 말한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이 주연
으로 등장했던 이 영화는 간통한 부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쇼생크 감옥에서 종신형을 살게 된 작품을
원작으로 하였지만 공포물이 아닌 휴먼 드라마인데가 비슷한 소재의 옛 영화 <빠삐용>에서 보여 주던 깊은
절망의 그림자 같은 것보다는 전체적으로 긴박한 긴장미가 대단한 매력이다.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이루 말할 수 없는 후련함을 주는데, 그것은 바로 주인공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
에서 보여 주는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반전 때문일 것이다.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교도소 생활, ‘종신형’이라
는 특수한 상황, 그러므로 굳이 이 영화가 보여 주고자 하는 자유에의 의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한데, 그 설명 필요 없음을 보여 주는 기막힌 장면이 있다.
비록 죄인이지만 최소한이나마 인간다운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주인공이 오랫동안 정부에 건의를 한 결과
얻게 된 교도소 내 도서관과 그 도서관에서 우연히 찾게 된 음반 하나. 잠시 망설이던 주인공은 불현듯 교도
소 방송실의 문을 닫아걸고 음반을 틀어 스피커를 통해 온 교도소 안에 음악을 흘려 보낸다. 그 때 흘러나오
던 두 여성의 아름다운 이중창…….교도소 안의 온 죄수들은 느닷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마치
천상의 천사가 노래하는 듯한 그 아름다운 선율에서 잊고 있던 바깥 세계의 자유를 떠올린다. 그리고 비로소
갇혀 있는 영어(囹圄)의 몸이라는 것을 비참하게 되새긴다. 주인공이 본격적인 탈출을 시도한 것도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거칠고 빈한(貧寒)한 삶을 살아 온 죄수들로서는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그 음악.
마치 천상에서 들려 오는 것처럼 보는 사람의 가슴으로 따스히 밀려들던 그 음악은 모차르트의 오페라<피가
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에 나오는 이중창의 아리아 <포근한 산들바람아(Che soave zefiretto)>였다.
‘편지의 이중창’이라고도 불리는 이 아리아는, <피가로의 결혼>이 모차르트가 분방하고 타락한 귀족들을 비웃
으려 만든 작품이라는 일설이 있는 만큼, 바람기 많은 백작을 혼내 주기 위해 백작부인과 백작이 눈독을 들이
는 수잔나가 합세해서 계략을 짜는 부분에서 불려진다. 마치 수잔나가 제안한 것처럼 백작에게 ‘저녁바람이
포근하고 산들거리는데 이따 정원에서 몰래 만나자’라고 유혹의 편지를 쓰는 부분에서의 아리아인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의 긴박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굳이 이 음악이었을까? 그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모차르트는 두 말할 것 없는 신동 음악가였다. 30대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숱한 음악들을 그저
떠오르는 데로 토해냈다고 하는 것이 맞을 만큼 많은 걸작들을 남긴 작곡가였다. 모차르트를 두고 천상에서
내려와 잠시 이 세상에 머물다 간 ‘음악의 신’, ‘뮤즈’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인데,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라면 쇼생크 감옥에서 울려 퍼지던 그 선율을 떠올리면 이내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게다가 바람 난 남정네를 유혹하기 위한 선율이니 그 선율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때문에 그 선율은 평생 거칠고 어둔 삶 속에서 살았던 죄수들의 마음을 한 순간에 움직인 음악으로서 그 어떤
수식어나 권유보다도 절로 음악의 의미를 느끼게 하던 장면으로 다가온다. 이 때 음악은 클래식을 이해하고
아니고의 차원이 아니다. 다만 아름다움의 실체를 통해 인간 본연의 존엄성과 그 존엄성이 누려야 하는 가치
를 깨닫게 한 연결고리였을 뿐, 그러면서도 그 장면은 음악이 왜 우리 곁에 존재해야 하는 가를 확연하게 증
명해 보인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쇼생크 탈출>에 장면에 모차르트의 음악을 삽입한 제작진은 참으로 대단한 이들이다 싶다.
그들은 일찌감치 ‘모차르트 음악=놓치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간파했던 것일 테니까. 그것은 바로 숱한 영화에
모차르트의 음악이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영화 자체도 수작(秀作)이지만 영화
가 전하는 메시지가 음악을 통해 이토록 감동적으로 확실하게 전해진다는 점에서 <쇼생크 탈출>은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은 영화이다.
Gundula Janowitz / Edith Mathis
청풍명월
2007-04-09 at 14:59
저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