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조절자가 필요하다

우리의 어머니 세대에서는

생선을 한 마리 구워서 식탁위에 올리려면

살이 통통한 가운데 토막은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차려주고

조리를 했던 주부는 대부분 생선 대가리나 꽁지 부분만 드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살았던 결과는

아들이 장가를 가서 며느리를 얻었는데 시어머니 밥상에 생선대가리와

꽁지 부분만 올려 주더랍니다.

우리 엄마는 원래 생선 가운데 부분은 맛이 없어서 안 드신다고 아들이

며느리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생선 가운데 부분을 먹을 줄 몰라서 안 드신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버려지는 부분만을 먹고 사셨는데

맛있는 것을 골라 드시는 것으로 자녀들이 오해를 하더라는 얘기 입니다.


이 글을 예로 들면서

주부도 당당하게 자기 권리를 가족들에게 주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생선을 구우면 가운데 토막을 차지하고

자녀들이나 남편을 생선대가리나 꽁지를 먹이라는 것입니다.

식은 밥이니 쉰 나물 반찬만 좋아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면 안 되고

남이 먹다 남은 음식을 아깝다고 처리 하느라고 다 끌어먹고 밥순이 같이 살찌지 말고

자신을 자기가 먼저 존중하고 아끼라는 충고입니다.

한편으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자장면을 배달해 먹고 남은 단무지나 양파 그리고 치킨 집에서 가져온

깍두기 같이 생긴 무 쪼가리도 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맛있어서 두고 먹는 다는 의미가 아니라

"음식을 버리면 죄 받는다"는 선대로 부터 받은 뿌리 깊은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쌀 한 톨을 생산하려면 손이 아흔 아홉 번 간단다. "이러며

밥상에 밥알 하나 흘리는 것, 버려지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무엇 하나 헛되이 버려지는 것을 몸으로 막으시지만

뚱뚱하지도 자녀들에게 하대 받지도 않으십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남은 음식을 모아 두었다가 드시고

쉰 나물이나 생선 꼬랑지만 드시지…..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어머니의 절약정신과 가족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의 같은 것도 오래되어 낡아서 다른 천을 대서 기운 메리야스를

지금도 하얗게 빨아서 빨랫줄에 널어 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이 만약에 그걸 본다면 속으로 자녀들 욕하지 않겠어요?

자녀들이 어머니 메리야스 하나 사줄 형편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너무한 거 아닌가?

불효자들인가 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습니다.

양심에 그다지 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로 내의 같은 것을 사드리면 포장도 풀지 않고 두었다가 이웃에 불쌍한 노인을 드리고

어머니는 낡은 것을 기워서 입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녀들 흉 볼 것 같다고 말씀 드리면

속에 입는 거야 아무러면 어떠냐? 누가 볼 사람이 있냐? 이러십니다.

자녀 입장에서 못 마땅한 부분이지만 이제는 의례히 그러려니 합니다.


가족의 식탁을 담당한 주부는 어느 정도 조절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몇 식구가 밥을 먹을 것이며 반찬은 어느 정도 해야 식구들이 먹겠다."

하는 계산 하에 식사준비를 하게 됩니다.

열심히 식사준비를 해 놯는데 연락도 없이 밥을 먹고 들어가면

주부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식은 밥이 많이 남거나 애쓰고 마련한 반찬이

식어서 맛이 없게 되어 버리는 일 때문입니다.

가족을 맛있게 먹이려던 일이 헛수고로 돌아가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요.

어느 땐 남아 있는 음식을 모아서 먹고 저녁을 대강 끝내고 싶은 날은

식사를 꼭 집에 와서 하겠다는 남편 때문에 화가 난다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해 놓으면 밖에서 먹고 들어 왔다고 한다며 박자를 안 맞추는 식구들 때문에

주부가 화를 내는 경우를 만난 적이 있으실 겁니다.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애쓰고 장만한 음식을 식구들이 밖에서 먹고 들어와서 남았을 때

다시 요모조모로 쓸모 있게 조리해서 가족들을 먹이기도 하고 주부가 혼자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부가 자기 존중 때문에 아낌없이 음식을 쓰레기로 버린다고 하면

거기서 오는 낭비나 오염은 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책임과 의무는 뒷전으로 하고 현대에는 권리부터 찾도록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만 켜면 탈레반에서 부터 노사갈등까지 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봅니다.

이럴 때 조절자는 다 어디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작게는 한 가정의 식탁에서 버려지는 음식이 적게 하는 조절자가 있어야하고

사회는 모든 충돌을 완화하는 능력 있는 조절자가 있어야합니다.

국가 간에도 이해관계를 무력 없이 도와줄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합니다.

조절자는 어디서나 누구나가 각자의 역량만큼 할 수 있어야하고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책임을 회피한다거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한다고 나서는 일도 참으로 곤란한 일입니다.

식탁을 계속 예로 들게 되는데 조금 쉰 것 같은 음식을 어른들이 드시면 괜찮을 일이지만

낭비를 방지한다고 어린이가 먹게 되면 오히려 탈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부가 하대 받는 다거나 가정부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식은 밥이 남지 않도록 가족간에 협력이 필요하고 미리 연락해 주는 센스도 필요하고

작은 갈등을 흡수하고 충격을 완화 시켜주는 부분도 필요합니다.

요즘엔 가족 간에 갈등도 노사 갈등도 부추기는 일은 많이 보는데

어찌 되었든 좋게 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작은 식탁 공동체 에서도 말없는 희생과 봉사를 필요로 하는데

많은 국가와 민족이 존재하는 이 지구상에 남의 나라 젊은이를 인질로

삼고 아까운 인명을 살상하는 저분들에게 대화의 창구 역할이나

도움을 줄 나라나 사람들이 이렇게 없다는 것에 절망을 느낍니다.

억류된 인질이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국제사회에도 원망이 생기는 군요.

이럴 때 멋지게 나서서 인질을 구출해 줄 누가 없는 걸까요?

멋진 신사의 나라!

멋진 영웅은 영화 속에 서나 찾아야 할까요?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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