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ver Of No Return
River Of No Return
돌아오지 않는 강 (River of No Return : 1954 미국작)
감독 : 오토 플레밍거
출연 : 로버트 미첨(매트 캘더) / 마릴린 먼로(케이 웨스턴)

River Of No Return
If you listen you can hear it call
Wailaree! (Wailaree!)
There is a river called the River of No Return
Sometimes it’s peaceful, and sometimes wild and free.
Love is a traveler on the River of No Return.
Swept on forever to be lost in the stormy sea. (Wailaree!)
I can hear the river call,

No return, no return, No return, no return. (Wailaree!)
I can hear my lover call "Come to me."
I lost my love on the river and forever my heart will yearn.
Gone, gone forever down the River of No Return.
Wailaree! (Wailaree!) Wailaree!
You never return to me. (No return, no return)

‘돌아 오지 않는 강’이라 불리우는 강이 있지요.
때때로 그 강은 평화롭지만,
때로는 사나운 폭풍우가 불기도 하지요.
사랑은 그 강을 항해하는 여행자.
이리저리 휩쓸리다 영원히 폭풍의
바다로 사라지지요.
철썩. 철썩.
강물이 날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철썩. 철썩.
(돌아오지 않을 거야. 돌아오지 않을 거야.)
(포효하는 물살이 부서지는 곳.)
그이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요.

"나에게로 와 줘!"
난 그 강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 버렸고,
영원히 내 가슴은 그를 그리워 할 겁니다.

“때로는 조용하게 흐르다
때로는 거칠고 제 멋 데로 흐르는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 불리는 그 곳….
‘와일라리’ ‘와일라리’ 라고 부르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있지… “
기타반주에 맞춰 조용하게 발라드 스타일로 시작되는 동명 타이틀의 주제곡,
노래는 영화초반부의 Saloon 장면에서 나오는데, “Marilyn Monroe“의 섹시한
그 콧소리가 무척 매력적이다.
1960년에 발표된 “영광의 탈출”(Exodus)로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출신의 유태인 영화인,
“Otto Ludwig Preminger”(1906-1986)
서부 영화를 많이 만든 감독은 아니었는데도, 넓은 “시네마 스코프”에다 목가적인
분위기를 잘 연출하였고, 또 전체 영화음악(OS)을 맡은
“Cyril J. Mockridge”(1896-1976, 영국) 과 이 주제곡을 만든
“Lionel Newman”(1919-1989,미국, 평생 약80편의 영화음악도 만듬) 역시
아코디온 을 주로 사용하면서 그 잔잔한 분위기를 잘 뒷받침 하였다.
“돌아오지 않는 강“(위 사진은 실제 촬영 장소)
(절대로 무사히 갈수 없고 또 돌아 올 수도 없다는 인디언 전설로 해서 붙여진 이름)
이 영화는 우선 캐나다 쪽의 Rocky 산맥에서 촬영한 장엄하고 웅장한 경치가 일품
이다. 완전 무공해 의 그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이 두 남녀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서부극 형태로 전개가 되는데 시원스런 이목구비의 “몬로”(166Cm)의 외모와 또
그리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아주 남성적인 캐릭터로 묘사된 “Mitchum“ 의 서부사나이
다운 모습이 서로 상당히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에는 스턴트도 별로 없던 시절이고 또 예산 관계로 해서 이 두 배우는
실제로 촬영도중에 그 거친 강의 급류 속에서 위험에 빠진 경우가 여러 번 있었던
그런 고생을 무척이나 많이 하였다고 한다.
< 줄 거 리 >


전형적인 개척자 매트 칼더가 잃어버린 아들 마크를 찾아 미국 북서부의 작은 마을 고드라쉬를 찾아온다. 고드라쉬는 지금 금광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는 중이다. 매트는 술집에서 심부름을 하던 마크를 찾아 함께 농사를 짓고 살기로 한다. 마크는 이 술집의 여가수 케이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마크를 데려가는 매트와 케이는 서로 좋은 감정을 품지 못한다. 케이는 애인인 도박꾼 해리가 도박판에서 금광 소유권을 따내자 소유권 등록을 위해 함께 카운슬시로 떠난다. 한편 매트가 구입한 농장 옆 계곡엔 급류가 흐르고 있는데,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 불린다. 카운슬로 떠나던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강의 급류에 휩싸이게 되고, 이를 본 매트가 두 사람을 구해준다. 그러나 해리는 오히려 케이의 만류를 뿌리치고 매트를 때려눕힌 뒤 그의 말과 총을 빼앗는다. 이에 분노한 케이는 매트의 농장에 남기로 한다. 케이의 간호를 받고 의식을 회복한 매트는 인디언들이 공격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트는 마크, 케이와 함께 인디언들의 공격을 피해 뗏목을 타고 카운슬로 떠난다. 돌아오지 않는 강의 거센 물살을 헤치면서 매트와 케이는 서로 아옹다옹 다투는데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천신만고끝에 세 사람은 카운슬에 도착해서 해리를 만난다. 케이는 해리에게 매트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지만 해리는 사과하는 척 하면서 매트를 쏘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위험을 눈치챈 마크가 먼저 해리를 죽이고 만다.매트 부자와 헤어진 케이는 어느덧 자신이 매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가 쓸쓸히 돌아오지 않는 강이란 노래를 부를때 매트가 그녀를 찾아오고, 매트, 케이, 마크 세 사람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Marilyn Monroe
백치미와 섹시미를 동시에 갖춘 여자 마릴린 몬로는 1926년 LA에서 노마 진 베이커(Norma Jean Baker)라는 이름으로 출생했다(1926.6.1-1962.8.5). 수많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서른 여섯 젊은 나이에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자리를 굳힌 것은 영화배우로서였지만 가수로서도 몇 장의 앨범을 냈다. 그녀의 인기도에 비한다면 그리 많은 앨범이 선보인 편은 아니지만 그 몇 안되는 타이틀에 담겼던 음악들은 갖가지 형태로 편집되어 팬들 앞에 선을 보였다.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 또한 영화 속에서의 이미지처럼 섹시한 이미지가 배어 있었던 것이 사실. 남성 편력도 대단했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강렬한 흡인력을 지닌 돋보이는 배우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여덟살 때 성폭행을 당하고 한 때 자살 기도를 하는가 하면 나이 스물에 첫 이혼을 겪는 등 불우한 시절을 보낸 마릴린 먼로는 단역 시절을 거쳐 존 휴스턴 감독의 스릴러 물 [The Asphalt Jungle](1950)에서 변호사의 정부 역으로 눈길을 끌게 된다.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 등의 작품을 거쳐 마침내 [Clash By Night](1952)에 출연하며 강한 이미지를 남기게 되는데 이 무렵 아이러니 하게도 그 전에 찍었던 누드 사진이 공개되며 몸값이 뛰게 된다. [Don’t Bother To Knock] 등의 영화에 이어 [나이아가라(Niagara)](1953)를 통해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요부의 이미지를 확립하며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이어 코믹 뮤지컬인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How To Marry A Millionaire)] 등으로 슈퍼 스타의 위치에 오른다.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1954)에 출연한 뒤 프로야구계의 슈퍼 스타 조 디마지오와 결혼식을 올려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무렵 먼로는 몇 편의 영화 출연 제의를 거부하는 등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자신에게 고정된 백치미를 지닌 금발 미녀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뉴욕으로 연기 공부를 떠나기도 한다. 조 디마지오와의 이혼에 이어 극작가 아서 밀러와 다시 결혼한 그녀는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을 리메이크한 [버스 정류장(Bus Stop)](1957), [The Prince And The Showgirl](1957), 출연작 중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1959) 등의 작품에 출연하지만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아서 밀러와의 결혼 생활이 파경에 이르는 등 개인적인 생활은 나날이 불행해져갔다. 알콜과 약물도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이브 몽탕과 함께 한 [Let’s Make Love]에 이어 그녀의 마지막 작품인 [The Misfits] 촬영 기간 중에 그는 감독 존 휴스턴과 상대 역인 클라크 게이블과 몽고메리 클리프트 등과 끊임없이 충돌을 빚는가 하면 촬영 스케줄을 펑크내는 등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결국 후속작 [Something’s Got To Give] 촬영 중 한 달 만에 그녀는 배역에서 제외되고 소송에 휘말리는데 그로부터 두 달 뒤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과 동생 로버트 케네디 의원과의 염문 등도 그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혹이 제기되게 만든 것 중의 하나였다. 이처럼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그녀 역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엔터테이너의 하나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고 육체파 배우로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의 출연작들은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은 경우도 많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