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닭

여행의 즐거움 중에는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는 일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중국음식에 거지닭이라는 요리가 있습니다.

거지닭의 유래는 이렇답니다.
옛날 중국 소흥근처에 걸인들이 인근마을에서 닭서리를 하여 털을 뽑고
황토진흙을 발라 어느 곳에 파묻어 두었다가 한 마리씩 꺼내 구워먹었다고 합니다.
황토를 발라 놓으면 쉽게 상하지 않으면서 주위의 눈도 피할 수 있었겠지요.
어느 날 심복들과 함께 암행중인 건륭황제는 밤이 너무 늦어 숙소를 찾지 못해
야외에 노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잠자기 전에 한 곳에 모깃불을 놓고 모두 불 주위에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고소한 닭고기 익는 냄새가 진동하더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출출한 일행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 되었겠지요.
한참 만에 그 맛있는 냄새의 진원지를 찾았더니 뜻밖에 모깃불 아래에서 나기에
황제의 심복들은 곧바로 그곳을 파 보았더니 황토 흙에 싸여 있는 닭이 모깃불에 익혀지고 있었습니다.

황제일행은 질그릇처럼 구워진 황토를 깨내고

그 속의 닭고기를 뜯어 야식으로 맛있게 포식을 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 후 이 요리가 알려져 지금도 통닭에 황토 흙을 발라두었다가 구워내어
딱딱하게 구워진 황토를 깨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하얗게 익은 살을 먹는다고 합니다.
중국 요리 집에서는 중국말로 거지라는 뜻의 叫花子(지아화즈)의 닭이라는 의미의
叫花鷄라고 부르기도 하고 거지가 먹던 닭을 부귀한 사람(황제일행)이 먹었던
닭이라는 뜻으로 富貴鷄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또는 이 닭을 먹으면 부귀해 진다는 소망의 뜻도 있다고 합니다.

여행 스케줄에도 “거지닭”이 나와 있기에
먹는 일에 성의가많은 ^^ 저는 이렇게 검색까지 해서

거지닭에 대해 공부를 해 가기고 갔습니다.
그러니 거지닭에 대해 기대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드디어 거지닭이 나오는 식당에 갔습니다.
요즘이야 냉장고가 발달되어 있으니 황토를 발라서 땅 속에 묻을 필요 까지는 없을 것 같고

어떤 방법으로 요리를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커다란 원탁의 가운데가 회전되는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어느 것이 거지닭일까?
찾아 봤더니 검푸른 연잎에 얌전히 싸여있는 메주 만 한덩어리가 보입니다.
서호에서 배를 타면서 보니 연꽃잎이 얼마나 큰지 잎사귀 한 장이 우리가 쓰는 펼쳐진 우산만 했습니다.
비오는 날 머리위에 한 장만 덮으면 비 맞을 염려가 없어 보이고
우리 도치들이 어릴 때 보던 "개구리 왕눈이"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큰 연잎이니까 닭 한 마리 곱게 싸는 용도로 쓰이는 것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내 옆에 앉았던 나이 드신 남자분도 호기심이 바짝 당기는 듯
"이거 제가 개봉해 보겠습니다." 하시며 연잎을 벗겼습니다.
결혼식을 치른 초야에 신랑이 신부 당의를 벗기듯 조심스러운 모습입니다.

연잎을 벗긴 이후에 일은 쓰기가 좀 버겁습니다.

우리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는데
연잎을 벗기자 닭의 사체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무슨 이유인지 닭 모가지가 그대로 달려 있는데 그걸 젤 위로 해 놨습니다.
완전히 검은 색도 아니고 물에 빠진 사람 건저 놓은 듯
푸릇하니 불어터진 닭이 원망스러운 눈을 뜨고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하필 내 눈이 그 눈과 마주 칠 것은 또 뭡니까?

그 눈을 보는 순간 식욕은 싹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닭인들 감정이 없겠습니까?
감정을 가지고 죽어간 닭의 사체에 젓가락을 대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치킨 집에서 시켜먹는 닭을 보면서 닭 사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안는데
거지닭은 보는 순간 닭 모가지가 달려 있는 것에 질렸습니다.

식탁에 8명이나 둘러앉아 있어도아무도 젓가락을 대지 않았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원통한 표정으로죽어있는 닭의 사체를 뜯어 먹을 정도로

식욕이 왕성한 사람은 우리 일행 중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 바퀴 공으로 회전되어 다시 신부 당의를 벗기던 손길의 그 남자 분 앞에 거지닭이 왔을 때

내가 벗긴 것이니 할 수 없이내가 덮어야지 하는 심정인지

연잎으로 다시 닭을 싸는 모습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당신은 내 취향이 아니야 없던 일로 합시다.” 이러는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

음식은 꼭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기가 좋아야 먹기도 좋다는 우리 속담은 진실입니다.
이글을 읽는 누구라도 닭 사체에 달려들어 살점을 뜯고 싶은 분은 안계실겁니다.
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사진으로 보기에도 혐오스러워서 올리지 않겠습니다.
꼭 봐야 하겠다는 분이 계시면 올려 드리겠습니다.

이것으로 4박5일 상해 여행기를 마칩니다.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는 동파육 그리고 태가촌에 대한 이야기를 한편 더 쓸까 하다가
또 먹는 이야기 하면 맛도 없는 얘기를 너무 우려먹는다는 항의가 들어 올 것 같습니다. ^^
가끔 다른 이야기 속에 여행지에서의 이야기가 섞일 수는 있을 겁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이

4 Comments

  1. Angella

    2007-09-05 at 06:50

    아이구…
    음식포장을 누가 그렇게 해놓아서 식욕을 초장부터 죽여놓앗을까요?
    의도적인 포장같은 느낌입니다..
    남자분 누구에게라도 부탁해서 헤쳐놓고 살 한점만이라도 드셔보실 것을요.
    그렇게 귀한 음식을 앞에두고서…못 먹고 도로 싸놓으셨다니…에구~~   

  2. 김진아

    2007-09-05 at 07:53

    어휴…생각만으로도…
    세상에나…

    4박5일의 여행기록을…함께 나누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3. 운정

    2007-09-05 at 12:03

    거지닭이야기, 정말 식욕이 싸,,,악

    30여년전에 제가 본 것중,
    누런 호박속을 긇어내고 미꾸라지를 넣고 황토를 발라서
    하루 종일 왕겨를 태워서,,,

    여행 잘 하고 오셔서 반가워요.   

  4. 광혀니꺼

    2007-09-06 at 10:48

    푸하하하하~

    거지닭이라~

    실은 전 날고기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회나 날고기를 한참동안 안먹으면
    그 음식이 눈앞에서 아른거릴 정도로…

    그런데 가끔 횟집에서
    물고기 몸통 위에 회를 앉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죽을맛입니다.
    그거 먹기는 해야겠고
    입을 뻐끔거리는 녀석을 들여다 본다는게…
    그래서 음식 시킬때 꼭 옆좌석을 확인합니다.
    혹 그렇게 물고기가 통째로 올라오는 음식점이면
    몸통은 가져 올 필요 없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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