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걷는 호수공원

이번 추석당직은 오지게 했습니다.

추석 당일 날 유일하게 문을 열다 보니 응급실에서 발행한 처방도 많이 오고
손님도 많은데 전화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응급 의료센터에 전화를 해서 문 연 곳을 문의하면 우리점방 전화번호를 안내해 주니
찾아오려는 사람들이 위치를 전화로 묻습니다.
"일산교 다리를 건너와서 세 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을 하고 …."
처음에는 열심히 대답을 했지만 횟수가 많아질수록
바쁜 중에 같은말을 수없이 반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응급의료센터와 119에 전화를 걸어서 안내를 하는 분에게 위치를 정확하게 일러주면서
전화번호를 안내하지 말고 위치를 말씀드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도 전화는 여전히 옵니다.

"좌회전 했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가요?"
"언덕 쪽 점멸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까지 오세요."
"거기가 어딘데요."
"직진하시면 됩니다."

"여긴 주유소 앞인데 어디로 가요?"
"어디쯤에 있는 주유손가요?"
"현대 모비스라고 써 있는데요?"
"무슨 동이신데요?"
"여기가 무슨 동이지?“ 옆 사람에게 묻는 소리가 납니다.
옆에 있는 사람도 잘 모르는 듯
"왜 사거리에 있는 주유소 있잖아요?"이럽니다.
사거리에 있는 주유소가 한 두 군덴가요?

"여기는 탄현인데 어떻게 가요?"
"보건소 방향을 아시나요?"
"아니요. 이 동네가 처음이에요."
" 신도시 방향으로 오시다가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방향 감각 조차 없는 분에게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휴대전화가 있으니까 무조건 전화부터 걸고 보는 통에 몹시 힘들었습니다.
전화응대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텔레마케터나 전화 교환원의 고생을 알 것 같습니다.

정말 숨이 꼴깍 넘어가게 바빳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연휴 마지막 날 오후
나에게도 휴식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울앤에게 나랑 놀 시간이 있는가 물었더니 오후에 미팅스케줄이 있어서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랑 둘이서 데이트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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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공원으로 나갔습니다.
장미원의 장미는 제철이 아니라 시들했지만 멀리서 보면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장미꽃 앞에 어머니를 서게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늙은이 사진은 찍어서 뭐하노?" 라시며 사진을 안 찍으시려고 하는데
"어머니 예쁘게 찍어 드릴게요." 라고 말씀드리고 몇 컷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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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에 보니 벌써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나무가 있는데
그 아래 어떤 할아버지께서 독서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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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진으로 당겨서 보니 독서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뭔가를 쓰고 계신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편지라도 쓰고 계신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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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詩碑어때요?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이란 영화를 봤습니다.
식당을 해서 돈을 많이 번 권순분여사가 어벙한 납치범들에게 잡혀서
불효막심한 자녀들에게 건넸던 재산을 다시 찾는 스토립니다.
어머니랑 보기엔 딱 좋은 영화였습니다.
젊은이가 주역이 아니고 할머니가 주역이라서 어머니께서 재미있게 보셨습니다.

권순분여사는 돈은 많은데 말썽 많은 자녀를 두어서 속을 썩지만

우리 어머니는 추석이라 오라버니와 남동생 가족들이 다 다녀가서 용돈도 두둑히 받으셨고

손자 손녀 용돈도 풀어 주신터라 기분도 좋으시고 저랑 데이트 하는 것이 흐믓하신 것 같습니다.

롯데 백화점에서 문 연 곳은 극장과 마르쉐 식당뿐이었습니다.
추석이다 보니 이것저것 먹은 것이 많아서 그다지 시장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칠리새우를 드시고 나는 스위트 케잌을 먹었습니다.
오렌지를즉석에서 갈아서 만들어 주는주스를 마시면서요.
칠리새우의 쏘스가 맛있다고 꼬랑지를 떼고 드시는 어머니 모습이 소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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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은 내가 낸다." 호기 있게 말씀하시기에
"성정 팔팔하고 기개가 살아있는권순분여사가 어머니랑 비슷하네요." 했더니
우리 어머니 "그 할머니가 똑똑하다.“라며 웃으십니다.

어머니와 나란히 호수공원을 산책하고

칠리새우를 나누어 먹고

손잡고 영화관에 앉아서 할머니 주연의 영화를 보면서 연휴 한 때를 보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자매처럼사이좋게 나이들어 갑니다.

우리 어머니가 행복한명절이 앞으로도 오래 오래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7년도 추석이 지나갔습니다.

순이

4 Comments

  1. 윤 환

    2007-10-01 at 00:54

    아름다운 영화 한 편과 같은 장면들이네요 !
    추석 마지막 날을 귀하게 보내셔서,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모녀지간은 모자지간 보다 더 고운 무늬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근거없는 어드벤티지에 대한 시샘도 납니다.
    츄카드립니다,
    순이님의 " ONE FINE DAY ! "를.

    잘 보낸 하루가 데면데면하게 보낸 3 년과 맞 먹는다고 누군가 절감했다지요?   

  2. 포사

    2008-05-29 at 13:58

    나 우리 어머니랑 도순 도순 이야기해본기억없다. 님 글 읽어보니 문득 울 엄마생각나는군요   

  3. 사람사랑

    2008-06-02 at 13:28

    어제 밤에 우리 엄마 아버지 꿈속에서 뵈었는데
    너무 아쉬워 잠결에도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다시 생각해 보니까 기억이 아몰 합니다.
    언제 부모님을 다시 뵈는 날이 있을 까?
    흐린 총명이 몹네 아쉽습니다.
       

  4. 단군

    2008-07-26 at 03:39

    작년 반도 안되네요 너무 슬픔니다.
    올해는 그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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