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점심은 샌드위치
CEO의 점심은 샌드위치
점심까지 거르며 문화예술 강좌에 푹빠진채 ‘감성ㆍ문화경영’

지난여름 윤영달(61) 해태제과 회장의 매주 수요일 점심은 대부분 샌드위치였다. 환갑이 넘은 그가 점심까지 거르다시피 하면서 찾은 곳은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는 세종예술아카데미 ‘정오의 뮤지컬’ 강좌. 기업인의 감성이 고객의 감성과 접점에 서야만 ‘고객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윤 회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향학열’은 자신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각 사업 부문의 마케팅책임자 등 간부 8명에게도 수강료를 대주며 자신과 함께 공부하도록 했다. 요즘 윤 회장은 매주 수요일 저녁 오페라 공부에 푹 빠져 있다.

대기업 CEO 사이에서 윤 회장처럼 식사시간까지 반납해가며 문화예술 강좌를 듣는 게 유행이다. 워낙 바빠 개인시간이 한정돼 있다 보니 융통할 수 있는 여유가 식사시간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서적 양식’을 섭취하기 위해 그들의 끼니는 샌드위치나 김밥 등 ‘퀵푸드’로 대체되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CEO들이 찾는 문화예술 강좌는 강북의 세종문화회관 예술아카데미와 강남의 예술의전당 예술아카데미로 대표된다. 충무아트홀 성남아트센터 고양아람누리 등의 공연장이나 백화점문화센터, 지역 문화회관에도 강좌가 개설돼 있지만 대부분 주부 대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세종문화회관은 기업인들의 이런 니즈(needs)를 가장 먼저 읽고 노무라연구소에 아카데미 설립에 관한 컨설팅까지 의뢰한 경우다. 비즈니스타운에 밀접해 있다는 이점을 살려 프로그램부터 인테리어까지 기업인들의 취향에 맞춰 고급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로 설계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18일 오후 7시에 열린 ‘클래식 공감’ 강좌만 해도 20~30명 남짓한 수강생 중에 강영기 삼성전자 상무, 한주희 대림산업 유화부문 대표이사, 이영두 그린화재해상보험 대표이사, 송은경 와코비아은행 본부장, 나대철 대신증권 강남지점 본부장, 김기동 법무법인 대륙 파트너 변호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CEO와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거 참석하고 있었다.

이영두 그린화재해상보험 대표이사는 “대니얼 핑크가 쓴 ‘새로운 시대가 온다’ 등 최근의 경영 관련 서적을 보면 우뇌경영이나 감성의 힘을 특히 강조한다”며 “하루 내내 좌뇌를 사용하는 CEO들에게는 예술 강좌를 통해 천재적인 작곡가나 연주자들의 감성을 접하고 우뇌를 자극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 밖에 인적 네트워크 형성 등 강의 외적인 목적이 강한 AMP(최고경영자 과정)에 비해 마음 편히 참여할 수 있으면서, 격무에 지치고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되살려 아이디어가 샘솟게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하는 기업인들이 하나 둘 모이다 보니 뜻밖에 업무상 파트너와 마주치는 경우도 있다. 김기동 법무법인 대륙 변호사는 “젊은 시절 명동 필하모니나 르네상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던 시절을 생각하며 혼자 수강 신청을 했는데 여기 와서 아는 기업인들을 다 만났다”며 웃었다.

기업인들의 감성경영ㆍ문화경영에 대한 관심과 사설 교육기관의 커리큘럼 개발이 맞아떨어지면서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교육사업팀장은 “일부 강좌의 경우 대기업 간부급 이상의 40~50대 ‘넥타이 수강생’이 전체의 절반에 달하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고,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의 정규승 대리 역시 “과거에는 주부 수강생 위주였지만 낮시간을 중심으로 전문직 남성이나 기업인들의 수강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경향이 계속된다면 이들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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