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쉰세 살!
이제는 어느 정도 인생의 가을을 수용할 때도 되었지만
요즘 들어 자주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기분이 언짢을 때가 많습니다.
관절은 기름칠이 안 된 낡은 기계를 돌리는 듯 삐걱 거리는 느낌이 들고
시력은 워낙 평생 좋지 않았지만 올 초에 망막 출혈을 겪고 부터는
노안과 겹쳐 더욱 신통치 않아서 뭐라도 읽으려면 대단한 집중력을 요해서
두통도 오고 보는 일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심리적으로도 시난고난 에너지가 솔솔 새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이론이나 지식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갱년기 증후군에 대해 앵무새처럼 설명이 가능하지만
내가 당하는 실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빠서 고민할 시간이 없다는 것
삐걱 거리는 관절 일망정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하면서 스스로에게도 반복적으로 교육한다는 것이
나를 이나마 지탱하고 간다고 보입니다.
쉰세 살 생일!
별로 아쉬울 것도 없는 시간이고 어중간한 나이지만 내가 위태로워 보였는지
가족들의 따뜻한 협조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도치아빠와 여동생 제부들의 강력한 권유로 며칠 큰 도치와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월말이라 점방을 비운다는 것이 많은 부담이 되었지만 그래도 큰 도치와 함께
가는 것이 점방을 비우는 근심을 덜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당국의 협조가 있을 때 떠나보자 그래서 이웃에 마실가 듯 잠시 떠났다 왔습니다.
두주 전 일요일 오후에 호수공원에 나갔었는데
첫 추위가 와서 그런지 공원엔 단풍이 다 떨어지고 초겨울의 삭풍이 불어서 몹시 추웠습니다.
그런데 기대 하지도 않았던 가을을 일본 교토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교토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무대라는 뜻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
“청수사” 라는 곳에서 만추와 조우를 합니다.
그곳에서 가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도종환 시인의 시에 나오는 말입니다.
세종문화회관 건너편에 있는 교보문고 건물에 붙여있던 문구입니다.
한주에 한번 광화문에 가게 되면 꼭 쳐다보게 되는 글귀여서
가을 내내 몇 번이고 쳐다보며고개를 끄덕이던글귀입니다.
가장 아름답게 불타는 가을을 청수사에서 만나고보니 헤어졌던 연인을 뜻밖에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그것도 이미 다 지나간 계절이었다고 생각한 가을을 조우한 느낌은
가을이 나를 위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색다른 기쁨 이었습니다.
나를 위한 가을이
나를 위해서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떠나지 못하고 내가 오기를 청수사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점방 창문 넘어 은행잎 떨어지는 것으로 가을을 느끼다가
쉰세 살의 생일날에 불타는 단풍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큰도치
일본 이야기를 5~6회 할 예정입니다.
순이
Lisa♡
2007-12-02 at 11:39
내가 다녀온 후에 순이님께서 그 곳을….
단풍 좋았지요?
일본단풍이 아주 예쁘긴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