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윤철희 교수는 일산 돌체 음악실의 단골 연주자입니다.
부인인 바이올리스트 배상은씨와 돌체에서 자주 연주를 했기 때문에
나에겐 비교적 친숙한 연주자입니다.
이분은 쇼팽의 에튜드 연주가 일품인 아주 섬세한 연주를 하는 분입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이분이 돌체에 오시면 열일을 젖히고 가게 될 정도로
저는 이분의 팬입니다.
체임버 홀을 둘러보니 우리 돌체식구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돌체에서 해설을 하시는 신동헌 화백님은 맨 앞줄에 자리 잡고 앉으셔서
음악에 심취하셔서 손과 머리로 지휘하듯 몸을 흔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윤철희 교수가 베토벤피아노협주곡 같은 대곡을 실내악으로 편곡해서 연주를 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 연주회에 참석했는데 정말 황홀할 정도로 좋은 연주회였습니다.
일당백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당한다."는 말이 있지만 어제 본 실내악 연주는 일당백은 아니더라도 일당십은 되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곡입니다. 70명이 조율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피아노와 함께 바이올린 두 명 첼로 두 명 비올라 한명 더불베이스 한 명 7명이 화합하는 그 음이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까지 잔영처럼 머릿속에서 경쾌한 음을 내는 것 같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크고 강한 선율은 실내악에서 보다 섬세해지고 명확해집니다. 1명이 10명분 소리를 내야 하니까 한 음이라도 실수하면 치명적이 됩니다. 이럴 때 연주자는 무대에서 발가벗은 기분이라고 합니다. "실내악은 악기 특징과 소리 변화를 정확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고 하는데 400명 정도 입장할 수 있는 세종체임버홀에서 듣는 맛은 대단했습니다. 윤 교수는 "워낙 완벽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악기 편성을 줄이고 손질하는 편곡 작업이 두려웠다"며 "그런데 막상 바꾸고 나니 숨어 있던 베토벤 선율의 매력과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음색과 느낌도 확연히 차이가 나고, 협주곡이 오페라라면 실내악은 가곡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게 윤 교수 설명입니다. 오페라는 과장된 아리아와 극적인 구성으로 관객을 빨아들이지만 가곡은 조용하고 서정적이며 청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듯이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의 대조는 나름대로 특성과 매력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베토벤의 남성적이고 강인하며 절대적인 완벽, 고통이 배어있는 음악에서 벗어나 섬세하면서도 애절한 고독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연주자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스케일이 축소되었다기 보다는 좀 더 베토벤의 내면, 즉 정신세계에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저 역시 가슴을 울리는 웅장함은 덜하지만 섬세한 황제를 듣는 것은 새로운 느낌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