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서울 시립합창단의 라트라비아타 공연이 있었습니다.
좋은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우연히 주어졌기에 벼르고 있다가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무대아래 시립관현악단의 지휘자 머리만 겨우 보이는 위치의 무대 가까이에 자리 잡았습니다.
세종문회회관을 가던 중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습니다.
라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에서 춘희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작품입니다.
1948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오페라로서는 처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초연 이후 여러 번 우리나라 무대에 올려 진 비교적 친숙한 오페라입니다.
극중의 가련하고 고상하면서도 타락한 여주인공 비올렛타와 순수한 청년 알프레도의
사랑이야기를 당시 시대를 배경으로 감동 있게 그렸습니다.
서주가 끝나고 제 1막의 더할 수 없이 화려한 무대가 열리고 많은 귀족들이 성장을 하고 파티를 즐기고 있습니다.
비올렛타는 폐결핵이 걸린 상태라 오래 살 수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신의 건강을 갉아 먹는 행위인 술과 향락을 즐깁니다.
내일은 없다. 오늘을 즐기자. 그런 느낌으로 술과 노래와 도박이 혼합된 무대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축배의 노래가 나오는 장면은 죽음의 축재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즐기자. 마시자. 축배를 높이 들자. 앞사람의 의자 등받이에 붙은 모니터에
이런 내용의 한글 자막을 읽느라 무대를 잠깐씩 놓치기도 합니다.
노래라는 것이 확실히 마음에 감동이 되고 또 동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가기 전 술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야말로 축배의 노래를 들으니 생각 속에서 술이 땡기더라구요.
노래를 들으면 술이 땡기는 것은 별로 이상한 것은 아닌가요? ^^
무대에 빨려 들어갈 듯 몰입해 보다가 사고는 다음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비올렛타와 알프레도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는 순간 참을 수 없이 기침이 날건 뭐 있습니까?
천정에서 찬 에어컨 기온이 내려오는 듯하더니
목울대에서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면서 기침이 터져 나올 듯합니다.
고약한 시어머니도 아니고 무대 위에서 분위기 한참 잡고 있는데 기침을 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겠기에 겨우 겨우 참는데 어쩔 수 없이 기침이 쿡 하고 터져 나옵니다.
시원하게 기침을 한번 했으면 좋으련만 참아야 하는 고통이 보통이 아닙니다.
터져 나오는 기침을 억지로 참고 있자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쭈르르 흘러내립니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라니요….. ^^
다른 사람이 내 모습을 봤으면 어지간히 웃겼을 것 같습니다.
무대위에서 한창 사랑이 무르익고 있는 순간에 울기는 왜 우냐 구요? ^^
눈물을 흘려야 한다면 비올렛타가 알프레도와의 오해를 풀고 다시 만나 재회의 순간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때 엔 울어도 별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묘약 中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엉뚱한 곳에서 혼자 연기한 샘이 되었습니다.
도니제티가 알면 싫어했겠지요? ^^
다른 사람들은 내가 흘리는 눈물을 못 봤으니 그야말로 남몰래 흘린 눈물입니다.
기침을 억지로 참으면 눈물이 나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배탈이 났을 때 화장실을 미처 찾지 못하는 상황만큼이나 다급한 생리현상이 기침을 참는 일이더군요.
오케스트라가 요란한 틈을 타서 기침을 하고 났더니 시원한 배설을 했을 때만큼이나
편안해 지면서살 것 같았습니다.
155년 전 초연 당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는 기대와 달리 크게 실패를 했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기록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폐병으로 죽어가야 했던
주역의 소프라노가 너무 건강한 체격의 소유자였다는 것과 동시대의 파리사교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무대는 고전시대 무대에 익숙했던 대중에게 외면을 당했습니다.
오페라를 즐기던 귀족들이 자신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무대에서 표현 되어지는 것에
부끄럽기도 해서 애써 외면했다고 하는군요.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교계의 여인인 비올렛타에게 아들의
곁을 떠나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에서 아들에게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노래가 듣기 좋았습니다.
프로벤자의 하늘과 육지를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워 버렸느냐?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워 버렸느냐,
프로벤자의 하늘과 땅을?
태어난 고향의 눈부신 태양을 어떤 운명이 빼앗아 갔느냐?
어떤 운명이 빼앗았느냐,
태어난 고향의 눈부신 태양을?
오, 생각해내 다오.
거기서 너는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음을.
거기라면 네게 평화가 다시 한 번 빛나리라는 것을,
하느님이 어김없이 인도해 주시리라.
아, 나이든 이 아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알리가 없겠지.
나이든 이 애비에게,
네가 없어진 뒤 그 집은 쓸쓸한 모습이 되었다만,
그 집은 쓸쓸한 모습이,
쓸쓸한 모습이 되었다만,
다시 너를 만났으니 아직 희망이 있구나.
명예의 목소리가 네 속에서 아주
완전히 입을 다물지는 않은 셈이니,
하느님이 틀림없이 들어 주시리라.
굵직한 바리톤의 제르몽의 간절한 노래는 동서를 막론하고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르몽 역을 맡으신 분은 성량이 풍부하고 감정 표현도 적절한, 무엇보다도 비극을 비극답게 표현하는
절절한 감정의 기복이 노래마다 묻어나는 열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제르몽과 알프레도 역을 맡으신 분들은 늘씬한 체구의 비주얼을 겸비한 분들로 보여 졌습니다.
높은 음역도 안정적으로 소화해냈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비올렛타를 연기한 소프라노가 너무 건강미가 넘쳐흘렀습니다.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여인을 연기하는 이미지로서는 통통한 외모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성량은 풍부하고 좋았습니다.
포스터에 나왔던 그 여인을 꿈꾸고 가셨던 분들은 실망 했을 겁니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만 없었더라면
아니 기침이 터져 나올듯한 고통만 없었더라면
비극적인 사랑을 느끼기엔 훌륭한 공연이었습니다.
순이
래퍼
2008-04-14 at 22:17
그 괴로움..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거에요..
저는 정경화씨 연주회 때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참을려니까 등에서는 식은 땀이 다 흐르고..
남몰래 흐르는 눈물과 그 고통..
말로는 정말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