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머리에 들어가는 input과 output이 형편없이 차이가 납니다.
책을 읽고 나서 하루만 지나 생각해 보려면 뭐가 뭔지 생각이 선명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느 경우엔 주인공 이름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input이 있을 때 바로 써 두지 않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주인공 이름이 알프레돈지 제르몽 이였는지 며칠만 지나면 아슴아슴하고
점방에 자주 오는 손님 이름도 헷갈리고 뭘 설명하려면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버벅 거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짜증이 날 때가 많은데 그나마 이렇게 기록을 해 놓으면
한 번 더 remind를 하니까 조금 형편이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공연을 본 후에도 감동의 지속 시간이 짧고
뭘 봤는지 어떤 내용인지 도대체 기억나지 않고 뒤죽박죽이니
이렇게 써서 기억이 날 때 들려 드리는 효과도 있고
여기에 결과물을 기록해 놓으면 나중에라도 내 기억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따끈따끈할 때 한 꼭지 쓰겠습니다.
라 트라비아타는 한 달 전쯤 서울시립 합창단의 공연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봤는데 다시 리뷰를 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전곡을 다 한 것이 아니라 하이라이트만을 공연했습니다.
사실 전곡을 다 듣는 것보다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골라듣는 재미가
훨씬 듣기도 수월하고 익숙해서 좋습니다.
본 공연에 출연했던 주인공 보다 비디오도 되고 성량도 좋고
연기력이 있는 소프라노 가수의 열연을 무대 바로 앞에서
그녀의 들숨소리 까지 들으면서 보는 맛은 대단합니다.
연주자는 이런 무대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주인공 비올렛타는 화류계 여성입니다.(여염집 여인의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그녀의 파티 장에서 유명한 “축배의 노래”로 시작합니다.
그녀를 좋아하는 알프레도는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지체 있는 귀족의 자녀입니다.
비올렛타가 사랑을 느끼면서 부르는 "아! 정말 이상해" 라는 아리아가 일품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런 느낌 처음이야! 내가 사랑을 하다니…." 이런 표현입니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은 사랑하지만 결혼은 하지 못하고 동거에 들어갑니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딸을 결혼시켜야 하는데 오빠가 화류계여자와
동거중인 것이 사돈집에 알려지면 결혼시키기 어렵다고
헤어져 달라고 비올렛타를 찾아와 간절하게 설득합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며 부르는 비올렛타의 아리아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애절합니다.
제르몽이 아들을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권하는
"프로벤짜 내 고향"도 아주 유명한 곡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비올렛타의 입장에서 라트라비아타를 봤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화류계에 몸담았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강제로 갈라놓는 아버지 제르몽이 미웠습니다.
과거를 묻지 말고 아들이 좋아한다니 결혼시켜주면 좋겠는데 굳이 때어 놓으려고 애쓰는
제르몽의 프로벤짜 내 고향이라는 노래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 아이들이 결혼을 할 나이가 되고 보니
나도 제르몽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내가 다행하게도 아들이 없기는 하지만 만약 아들이 그런 근본도 없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나는 제르몽처럼 점잖게 말리지는 못하겠지요.
더 험악한 모습으로 그악스럽게 말렸을 지도 모릅니다. ^^
세월이 부모 편에서 음악을 듣게 합니다.
나이와 경험과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아닙니다.
과거를 손 갈피처럼 들여다보고서도 안심이 안 될 것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니 제르몽이 비올렛타와 알프레도 사이를 때어 놓을 때 많이 고생한 것을 알 것 같아요.
이제는 오페라도 이렇게 현실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보니
낭만은 둘째 치고 감동도 크게 받지 못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이렇게 재미없이 나이 들어갑니다. ^^
순이
광혀니꺼
2008-05-23 at 08:55
라트라비아타를 보셧군요.
전 아직 ..
어느 상황에서건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깊은곳을 들여다볼수잇는
순이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
주말 잘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