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가는 여행

저녁식사를 하면서 어머니께서 저에게
"백두산 갈 때 찬이 아범 사진을 가지고 가야하겠다." 이러십니다.
찬이 아범은 3년 전 먼저 저세상으로 간 어머니 둘째 아들, 저의 남동생을 말합니다.
속으로는 짐작이 가는 이야기지만 "왜요?"라고 물어 봤습니다.

동생이 죽기 전에 "어머니 모시고 백두산 가겠다."고 벼르다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 못가고 말았는데
백두산을 가시려고 보니 그 아들이 몹시 마음에 걸리시나 봅니다.
사진이나마 들고 가서 함께 다니며 구경시키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별 의미 없는 일이지만 노인 정서로 그렇게 하고 싶어 하시면
굳이 말릴 일도 아니지만 한 가지 의문점은 왜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인가 입니다.

어머니 생각이 궁금해서 여쭈었습니다.
"어머니 찬이 아범 뿐 아니라 아버지도 모시고 갈까요? ^^"
"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오랜데 뭐할라고?"
"그래도 사진 한 장 더 넣어가지고 가는 거야 힘 드는 것 아니잖아요?"
"네 아버진 함께 안가도 된다."
"와~~~ 우리 아버지 아시면 서운하시겠다. 아들은 데리고 가고
아버지는 떼어놓고 가려고 하시다니… ^^"
"서운하긴 뭐 서운하겠냐? 돌아가신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네 아버진 어디 다니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 벌써 구경 다 하셨을 거다."
어머니 말씀 속에 아버지를 향한 원망 같은 것이 보입니다.

"어머니 혹시 돌아가신 아버지께 뭐 서운한 거 있으세요?"
"서운한거라면 먼저 간 것이 서운하지만 그거야 뭐 맘대로 되는 일이냐?"
"사실은 아버지가 젤 불쌍해요. 어머니는 고생이야 많이 하셨지만
좋은 일도 많이 보시잖아요. 아버지는 고생만 하시다가 비행기도 한번
못 타보고 돌아가셨잖아요."
"그거야 네 아버지 복이 거기까지 인가보다."
"제가 알기로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좋으셨는데
내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두 분 사이에 있으셨나요?"
"문제가 있을게 뭐 있냐? 네 아버지야 법 없어도 살 양반인데."
"그런데 어머니 말씀 속에 아버지에 관해서 서운해 하시는 것이 있어 보이는데요?"
"솔직하게 말하면 찬이 아범을 대려가 좀 밉다."
"찬이 아범이 갈 때가 되어서 간 것이지 아버지가 데려간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자녀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지 않은 네 아버지 탓인 것 같아
생각하면 서운하긴 하다."
"그건 어머니께서 억지시지요. 살고 죽는 것을 아버지가 어떡하겠어요."
"아버지가 찬이 아범을 어릴 때 부터 특별히 예뻐했다. 그러니 빨리 불러갔을 수도 있고."

어머니는 당신 앞에 먼저간 아들이 너무도 아쉬워서 아버지를 원망 해 보시나 봅니다.
자녀가 일곱 명이나 되어도 먼저가 아들 하나가 마음에 걸려 아버지 탓을 하시니….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어머니와 두 분 사이에 정이 좋으셨는데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원망하시는 것을 보면
돌아가신지 30년이 다 되었어도 자녀의 문제는 아버지 책임인가 봅니다.

어느 분 글에 의하면 중년 남성들에게 노후에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1. 아내, 2. 부인, 3. 마누라, 4. 집사람, 5. 애들 엄마….
이런 식으로 10번까지가 전부 바로 ‘그분’이라고 하지만,
중년 여성들에게 노후에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1. 돈, 2. 건강 3. 친구, 4. 자식….이런 식으로 가는데
10번까지 가도 ‘남편’이라는 답은 없다고 합니다.

나중에 우리아버지를 만나면 물어 봐야하겠습니다.
만약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아들 사진을 가지고 여행을 갔을까요?
아니면 어머니 사진을 모시고 갔을까요?
우리 아버지께서는 백발백중 어머니 모시고 간다고 하실 건데
우리어머니는 아들이 더 아쉬운 가 봅니다.

똑 같이 이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지만 어머니에겐남편보다 아들이 우선합니다.

사진으로 함께 가는 여행이 아무 의미가 없을지라도
어머니껜 조그만 위로가 되겠지요?

순이

4 Comments

  1. 소리울

    2008-07-13 at 08:10

    ㅎㅎㅎ순이님, 돌아가신 분에게도 아내 부인 마누라 가 우선이고 어머니 같은 분도
    남편보다 자식이 우선인 것, 재미 있네요.

    오래 전에 열차 여행을 하는데 좁은 한 칸에 두 부부가 자는게 힘들어 여자끼리, 남자끼리
    자면 어뗳겠냐고 여자들이 의견을 냈는데, 남즈들은 모두 반대, 여자들은 모두 찬성이데요. 그리고 의견을 처음낸 부인은 남편에게 호되게 얀단맞았어요. 같은 맥락?

    어머님 모시고 동생 사진 모시고 잘 다녀 오셔요. 어머니가 너무 행복해 하시도록…   

  2. Lisa♡

    2008-07-13 at 13:20

    순이님.

    저도 어느 일에나 남편보다는 아들이 먼저랍니다.
    어쩔수 없이 아들이 더 예쁘거든요.
    남편이 섭해도 할 수 없답니다.
    백두산 언제 가시나요?
    어머님이 힘드시진 않을런지요?   

  3. 단군

    2008-07-26 at 04:02

    10개 다 적어주세요
    다른데 써먹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ㅎㅎ   

  4. 포사

    2008-07-26 at 11:21

    여성분들이라 편리한데로 생각하군요. 나는 10개는 커녕 반개도 싫은데. 불교에선 자식에게 전생에 신세진일이 많아서 이자처서 갚아주느라 죽을지경 ,반대로 마누라는 전생에서 웬쑤사이라 맨날 허구헌날 싸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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