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꾼의 호객 1순위 (백두산 여행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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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 주신 덕분에
팔순의 어머니 모시고 백두산 천지를 잘 다녀왔습니다.

서울엔 비가 많이 와서 고생을 하셨다는데
백두산 여행일정 닷새 동안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구름이 있어서 뙤약볕을 막아 주어 다니기 편했고
백두산에선 선명한 천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연세에 비해 건강한 모습으로 잘 다니셔서
투어에 함께한 젊은 일행들이 오히려 놀라고 부러워 할 정도였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산에 가는 일이 그다지 즐겁지 않습니다.
“내려올 산을 뭣 하러 올라 가냐?"고 하면 산 좋아하는 분들껜
마자주굴^^ 일이지만 제 말이 아니고 누군가 그랬는데 명언입니다.
결국엔 내려올 산을 뭐 하러 힘들게 올라 가냐 구요? ㅎ
이런 심보를 가지고 있는 저에게 백두산이 당키나 하나요?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어머니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속이 불편해 하셔서 내시경을 봤더니
십이지장 쪽에 폴립이 하나 있다고 하고 어쩐지 개운해 보이지 않으셔서
마음이 약해져 있는데 "죽기 전에 백두산이나 가보고 싶다."
이런 말씀을 하시니 갑자기 섬뜩한 겁니다.
연세가 있으신데 가보고 싶어 하는 백두산을 못가보시면 자녀 된 입장에서
나중에 후회가 많이 될 것 같아 서둘러 백두산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젊었을 때 남편과 했던 유럽여행이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도치들과 했던 여행
친구들과 다닌 어떤 여행보다 어머니와 함께 한 이번 여행이
즐겁고 보람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누가 모시고 갈 것인가에 대해 형제들이 의논을 했습니다.
오라버니는 워낙 바쁘셔서 엄두를 못 내시고 동생들도 아이가 어리던지 직장에 매이던지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중고생이 있던지 하여 닷 세씩이나 집을 비우기 어려워서
결과적으로 젤 할 일 없고 한가한 제가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자영업자가 가장 한가한 사람이더군요.
이쯤 되면 다들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막내 남동생의 휴가랑 맞추어 볼 수 있지만
휴가를 그렇게 쓰고 나면 남동생의 세 자녀와 올케의 불평이 나올 것도 같고
어머니는 저랑 움직이시는 것이 가장 편하다 하시니까 제가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영업자라고해도 문을 닫고 갈 수 있는 업종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맞기고 가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고
고된 산행은 피하고 싶지만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련공항에 내려서
꼬박 이틀에 걸쳐 차를 타고 이동을 하여 대망의 백두산에 도착이 되었습니다.
어느 분 여행기를 참조하려고 프리트를 해서 들고 가면서 읽었습니다.
투어버스에서 내려 백두산을 오르는작은 차로 바꿔 타면 차 시트에 스프링이 낡아서
덜컹거리면 머리는 천장에 다 헤딩을 하고 엉덩이가 아프다고 해서
저는 머리를 쓰느라고 등산용 방석을 가지고 갔습니다.
덜컹거리는 의자에 깔고 어머니를 앉혀 드리려 구요.
그랬는데 차는 최신형 셔틀버스이고 길이 포장되어 매끈하게 닦여 있었습니다.
계속 타고 다니던 여행사 버스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그사이 백두산은 여행객을 위해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를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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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갈아타고 20여분 정도 경치 좋은 산길을 달리자
1200계단이 있는 천지 아래에 대려다 주었습니다.
백두산 가는 길이 그만큼 편해 졌습니다.
차에서 내려 1200 계단만 오르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께 1200계단이 어디 쉽겠습니까?
어머니는 자신만만하시지만 보는 분들이 불안해합니다.
가이드도 어머니께 가마를 타라고 권했습니다.
저 역시 가마를 타고 오르자고 말씀드렸더니
"가마 타고 갈 거면 오지를 않았다. 치사하게 가마에 번듯하게 앉아서 가란 말이냐?"
그러시면서 걸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길가에 몫을 지키던 가마꾼들이 어눌한 한국말로 "할머니 가마 타세요." 큰 소리로 외치자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시면서 단호하게 "노!"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20계단 정도 오르자 가마꾼은 또 기다렸다 "가마 타세요." 하는데
이번엔 그냥 손만 휘저으시고 말씀은 안하십니다.
세 번째 가마꾼의 소리에는 웃기만 하셨고
네 번째 가마꾼의 호객 소리엔 눈길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조금 화가 나신 듯도 했습니다.
"내가 가마를 타야 해 보이냐?" 어머니가 돌아서서 물으시는데
나는 이미 숨이 턱에 차고 힘들어 지기에 입만 쭉 한번 내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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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뒤를 따라 오르다 조금 쳐지면 어머니께서 돌아보며 조금 기다려 주셨습니다.
못 따라 가면 우리 어머니 백두산 밑에 나를 버려두고 오신다고 해서 ^^
기를 쓰고 따라 올라갔지만 그것도 수월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을바람 같은 것이 불고 있어서 시원하고 상쾌했습니다.
백두산은 한여름인데도 긴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조금 추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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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가지고간 아들 사진을 꺼내어 기어코 우셨습니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한손으로 쓰다듬으시며
"네가 나를 데리고 와야지 내가 너를 데리고 오면 쓰겠냐?"
이러시며 눈물을 훔치시는데 저도 동생 생각에 울컥해졌습니다.
함께 오른 일행 중 어떤 분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주위에 있던 분들이 무슨 사연인가 해서 모두 달려들어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아들을 먼저 보내셔서 그러신다고 했더니 사진을 들고 천지에 올라온 모정에
그분들도 따라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천지 못가를 이리저리 둘러보십니다.
저는 천지라 해도 특별한 감흥은 느끼지 못하고 어머니만 따라 다녔습니다.
"저 아래 내려가 손 좀 씻고 오면 안 될까?" 하시기에
“거긴 내려가는 곳이 아닌데요. 내려가지 마세요, 저쪽은 북한 땅이라
잘 못 가시면 큰일 납니다. “ 이러며 말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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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백두산 천지에 가쁜 하게 오르시고 나더니 자신이 붙으셨는데
그러다 히말라야에 가자고 하시지 않으실까 겁이 납니다. ^^
5일 동안 어머니랑 자고 먹고 24시간 함께 하면서 어머니를 살펴보았더니
어머니께서는 식사를 잘 하시고 과일을 즐겨 드시고
잠을 잘 주무시는 아주 평범하면서 가장 좋은생활습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술을 드시는 다른 일행들은 지치고 힘들어 하는 반면에
어머니는 힘든 일정을 잘 견디실 뿐 아니라 가쁜 하게 다니시니까
4~50대 일행들이 미안해 하더군요.

백두산 여행기는 날자 별로 쓰지 않고 주제별로 쓰겠습니다.
오늘은 1)백두산 여행의 목적인 어머니가 천지에 오른 일을 썻고
다음은 2)사이버친구를 백두산 천지에서 기적적으로 만난 일
3)중국에서 변질된 우리언어
4)버스에서 자면서 졸면서 이틀에 걸려 백두산을 가고 오는 길
5)투어에 함께 간 여행객의 이모저모
6)압록강에서 배를 타며 바라본 북한 땅 그리고 북한 식당
대강 이런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저는 백두산 천지를 우려먹으며 여름을 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
그러니까 남들 휴가 갈 때 백두산 여행기를 조금씩 풀어 놓으면서 여름을 보낼까 합니다.
또 얼마나 수다가 길까 걱정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5~6편 정도로 예상하지만 그보다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

순이

4 Comments

  1. Lisa♡

    2008-07-26 at 13:41

    순이님.
    수고하셨습니다.
    어머님이 사진들고 게신 모습에 울컥 합니다.
    모쪼록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2편, 3편으로 이어질 여행기 기대합니다.   

  2. 벤조

    2008-07-26 at 14:41

    대련 공항에서 내려 5일간이면 바쁘지 않았나요?
    사진에 보니, 7년전 보다 좋아진 것 같네요. 1200 계단.
    근데 왜 1200인지? 중국쪽이니까 2008 이나 888로 하지 않고…    

  3. 윤종수

    2008-07-26 at 15:59

    백두산에 같이 갔던 일행입니다. 누굴까~요? 제가 찍어드린 사진이 잘나왔네요. 어머님의 백두산등반에 눈물을 훔쳤습니다. 정말로 감동했구요. 친정엄마생각이 절절했어요.
    부디 어머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라고 전해주세요.   

  4. 미친공주

    2008-07-29 at 06:38

    최근 티비프로에서는 백두산 등정을 굉장히 어렵게 그려놓아서 갈 엄두가 안나게 만들었는데.. 님의 글을 보니 갈만 하다는 용기가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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