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밭 사이 길에서 (백두산여행기 4)


어느 분이 무슨 이유로

백두산을 가는데 대련 공항에 내려서 단동을 거쳐 통화로 산길을 이틀씩 갔는지

무척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백두산을 어느 길로 해서 가야 빠른지, 편리한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못했고

여행사 상품 중에서 "효도 상품" 이라고하기에 연세드신 분들을 배려한 여정이려니

생각하고 골랐는데 그렇게 먼~~~ 길이 될지 몰랐습니다.

백두산을 향해 가는 길엔 정말 가도 가도 옥수수 밭만 나왔습니다.

풍경이 좀 바뀌기라도 해야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있을 건데

지루하게 옥수수 밭이 계속 되었습니다.

18.jpg20[1].jpg


길 위에서 자다가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합니다.

나는푹 자다가 깨면 어머니는 앞 의자의 등받이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는 허리를 세우고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창밖 풍경이라는 것이 가도 가도 옥수수 밭이고 아무렇게나 자란 풀밭인데 말입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는 화장실 가는 것이 겁나서 물도 맘 놓고 마시지 못합니다.

호텔에서는 빼고 길가에 주유소 화장실 때문에 몹시 괴로웠었기에 화장실 이야기만 해도

글 한 꼭지는 넉넉하지만 향기롭지 못 한 이야기로 글 읽는 분들을 괴롭히긴 싫고

다녀온 분들이 여러 번 언급을 하셔서 그냥 넘어 가겠습니다.

19.jpg21.jpg


옥수수 밭을 지나고 지나서 지루하게 가다가 어느 순간 차가 멈추어 섭니다.

가이드가 내려갔다 오더니 앞에서 다리가 끊어져 복구가 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답니다.

혼자 생각에 다리 위를 지나가다가 사고 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고

조금 기다리는 시간에 책이나 읽지….그러고 느긋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여행지니까 이래도 저래도 시간은 지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중국인 운전기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차의 엔진을 완전히 끄고 내립니다.

에어컨이 꺼지자 차 안은 금방 더워지기 시작합니다.

일행 중 한 두 명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에는 함께 탓 던 분들이 덥다고 차 밖으로 다 내려갔습니다.

어머니와 나도 등산용 방석을 꺼내 들고 내렸습니다.

길가에 내려서 들판에 부는 바람을 맞으면 한결 시원할 것 같으니까요.

22.jpg11[9].jpg


길게 꼬리를 물고 서 있는 차들 사이에 자리를 펴고 앉았습니다.

옥수수 밭가에 앉아 책을 보는 사이 어머니께서 다리가 끊어진 곳 까지

다녀오시더니 “오늘 안에 다리를 건너겠나?” 걱정을 하십니다.

24.jpg25.jpg

멀지 않은 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읽던 책을 덮고 저도 현장을 가 봤습니다.

구경꾼은 많은데 포클레인 한대가 쉬엄쉬엄 공사를 합니다.

“바뿐 것은 댁의 사정이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돼.” 그러나 봅니다.

하긴 뭐 다리를 일부러 끊은 것도 아니고 폭우에 일어난 자연재해인데

누가 책임을 지고 우리를 건네 주겠습니까?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27.jpg26.jpg

중국말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면 한 시간이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면

세 시간이라고 나중에야 가이드로부터 듣고 다들 크게 웃었습니다.

옥수수 밭가에서 밤을 보내나 했더니 세 시간 남짓 걸려서 고쳐졌습니다.

길에서 보낸 3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책을 반 넘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

12[7].jpg

무슨 책을 봤느냐 묻는 분이 분명 계실 것 같아서 미리 책 제목을 밝힙니다.

원래도 잡식성의 가벼운 책을 주로 읽는 사람이라 여행지에선 더욱 가벼운 글들이

잘 읽힙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현장 비평가가 뽑은 "2008 올해의 좋은 소설"입니다.

새삼 놀라운 것은 11명의 작가 중 50년대 출생이 한명 60년대 출생이 한명

그리고는 8명이 70년대 출생한 작가입니다.

그중엔 82년 생도 있습니다.

우리 자녀 나이의 어린 사람들인데도 어쩌면 문체가 그렇게 똑 떨어지게 잘 쓰는지 모릅니다.

기가 막힌 묘사와 표현에 읽으면서 감탄을 합니다.

어머니는 내가 책에 코를 박고 있다고 성화를 하십니다.

눈도 안 좋은데 왜 책만 들여다보느냐고 그러시는 바람에

여행하는 5일 동안 책 두 권을 가지고 갔는데 한권만 겨우 다 봤습니다.

지루한 여정에 책마저 없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자다가~~ 졸다가~~ 깨다가~~

자다가~~ 졸다가~~ 깨다가~~ 그럴 번했습니다.

그나마 책이 있었으니 자다가 졸다가 깨면 책 읽다가 했습니다.

13[5].jpg14[2].jpg15[3].jpg16.jpg17.jpg23[1].jpg

백두산 천지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하루에 7~ 8 시간 차로 이동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옥수수 밭가에 앉아서 읽은 책은 재미있었습니다.

29.jpg

무뚝뚝한 우리 어머니가 모처럼 웃는 모습입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