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해의 요새 주몽의 흔적을 찾아서
고구려 유적지로 초기의 졸본성을 갔습니다.
(광개토왕비에는 홀본성으로 기록된 곳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다섯 여신이 산과 마을을 수호해 주었다는 의미로
"오녀산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고구려 성곽이지만 중국 사람들에겐
소수민족의 역사일 뿐이어서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999계단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고구려 초기 터전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그러나 고구려 건국 초기 궁궐은 마치 선사시대 유적처럼 주춧돌 외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곡식 창고와 맷돌, 화살촉 등이 발견된 군사들의 집단 숙소였다는 곳에도
역시 주춧돌과 온돌임을 짐작할 수 있는 돌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주춧돌을 바탕으로 궁궐과 옛 조상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비류수는 고구려 유적을 품에 안고
과거로부터 오늘까지 여전히 굽이굽이 돌아가며 흐르고 있었고,
적군들을 가두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모습도 그때의 전투를
상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산성이 산성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니 아무리 요새라고 해도
물이 없었으면 산성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샘이 있고 그곳을 천지라고 명했더군요.
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젖줄이 되었을 샘입니다.
그 옛날 이 곳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치르던 선조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교적 완만한 평야 지대에서 우뚝 솟은 졸본성은 천혜의 요새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적군으로서는 이 가파른 벼랑을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을 것이니 수비를 하는 입장에서는 몇 군데의 길목에 성을 쌓아 지키면
수월하게 적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산 정상에는 마르지 않는 천지도 있고 거주할 수 있는 넓은 터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수비만 하는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고구려는 더 큰 꿈을 향하여 웅비의 날개를 펼치면서 졸본성에서 힘을 길렀습니다.
그리고는 넓은 요동벌에 내려앉아서 수 백 년간 이 땅의 주인이 됩니다.
정상의 비래봉에서 서쪽으로 보면 마치 주몽의 얼굴같이 생긴 큰 바위가 있습니다.
주몽은 졸본성 아래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저는 저 아래에서 기다리는 어머니 생각이 나서 내려오는 길을 재촉했습니다.^^
순이
Lisa♡
2008-08-02 at 12:15
정말 바위가 누군가의 옆얼굴이네요.
주몽이 저렇게 바라봤다는 부분이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