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와서
먹는 얘기는 왜 안하냐고 재촉을 하는 분이 있어서
"폼 나게 먹은 것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씀 드리긴 했는데
폼 나게는 못 먹었을지라도 배고프지는 않았으니
먹는 얘기 한 꼭지는 올릴 수 있습니다. ^^
여행지에 가면 비행기에 내려서 처음 버스를 탈 때
앉은 좌석이 여행 내내 지정석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렸다가 다시 타도 그 자리, 날이 바뀌어도 그 자리를 고수 합니다.
이번에도 기사 다음 자리엔 칠학년 사반 친구 분이 함께 오신 어른들이 타셨고
그 뒤엔 부부도 아니고 남매도 아니고 뭐라고 규정짓기 어려운 조금 이상한 커플이 앉고
그다음 칸에 우리 모녀가 앉았고 우리 뒤에는 심신이 건강해 보이는 부산에서 오신
40대 후반의 부부가 앉았습니다.
남편은 잘생기기도 했고 예의바르고 부산 사투리가 정다운 분이고
아내 되는 분은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예쁜 분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블로그에 들어와서 겨우 이름을 알았습니다. 윤선생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작정하지는 않았는데 그 부부와 식탁을 여러 번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버스에서 흔들리면 배가 쉬 꺼져서 그런가 금방 배가 고파집니다.
그러니 예약된 식탁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식탁은 허름했지만 나름대로 먹을 만하고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어느 식당에선가 콩나물 무침이 나왔는데 윤선생 부인이 맛있게 먹습니다.
나처럼 맛있으면 꼭 표현을 합니다.
"콩나물 무침이 맛있네!" 그 말을 들은 윤선생이 한마디 합니다.
"당신 입에 맛없는 것이 뭐있어?"
어라! 이거 내가 많이 들어본 소린데 ….. 나 혼자 크게 웃었습니다.
나만 그런 소리를 듣고 사나 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 구나!
그분들이 왜 웃는지 물으시기에 내가 늘 듣고 사는 소리를 중국에 와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워서 그런다고 하면서 또 웃었습니다.
압록강 강변에 있는 조선족이 하는 불고기 집에 갔을 때도
윤선생 부부는 똑 같은 상황을 연출 합니다.
더운 날에도 숯불에 철망을 얹어서 구어 먹는 소고기가 맛있었습니다.
"소고기 맛있네! 한운가? 수입쇠고긴가? " 아내의 이야기고
"당신이 뭔들 맛이 없겠어?" 남편의 대답입니다.
이번에도 난 어김없이 웃었습니다.
며칠 전 울 앤과 밥을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 나만 먹는 것 때문에 구박 받는 줄 알았는데 이번 여행에서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러데? 꼭 당신이 하는 그 말을 어떤 분이해서 놀랐어."
"그게 무슨 구박이야? 잘 먹으면 좋은 거지, 차려놓은 밥상 앞에 앉아서
까탈을 부리고 잘 안 먹고 그러면 밉지 않겠어?"
"여자들은 나이 먹으면 식탐이 생기기 때문에 뭐라도 맛있어,
그러면 암말도 말고 먹으면 되는데 나부터도 수다를 떨다가 그러는 거지 뭐"
"하여간 잘 먹으면 좋은 거지 구박하는 건 아니야."
"그래도 어쩌면 우리가 하는 말을 그 분들도 그대로 하는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놀랬다니까." 이랬습니다.
이분들이 저의 블로그에 들어와 보시고
보충할 사진을 몇 장 보내 주셨습니다.
사진을 열심히 찍으시더군요.
저는 조그만 사진기로 성의를 가지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서
볼 만한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윤선생님! 압록강에서 바라다 본 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좋은 사진 있으면 보내주세요.)
가마꾼이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편안하게 오수를 즐기고 있습니다.
천지를 저렇게 편안하게 가마를 타고오르는 사람은 중국여인입니다.
조롱박에다 기원을 써서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졸본성 천지못 가에 있는 나무입니다.
이렇게 복을 빌기도 합니다.나무판에 세긴 것은
일본 산사에서 본 것이랑 비슷해 보입니다.
(이 사진들은 부산에 사는 윤선생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남의 나라에 가서도 미운 사람은 꼭 있었습니다.
고기를 먹고 나오는 입구에서 한잔에 오백원짜리 봉지 커피를
나어린 소년이 팔고 있었습니다.
어떤 50대 후반의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다가 가더니 무조건 남의 종이컵 한 개를
빼 들면서 "더운 물 따라" 이러며 명령을 했습니다.
소년이 봉지커피를 튿으려고 하자 "뜨거운 물 만 따라" 위압적으로 인상을 씁니다.
소년은 어떨결에 그가 들고 있는 종이컵에 물을 따라주자
아무말 없이 휙 돌아서 갑니다.
아마 자기가 가지고 온 커피를 타 마실 요량인가 봅니다.
돈 오백원을 받자고 전을 펴고 앉아있는 소년의 처지가 가엽고
그런 곳에서 횡포를 부리는 그 남자가 얼마나 얄미운지 눈을 흘겨 주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뭐라고 하고 싶은데 못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납니다.
그 남자는오 백원이 없어도 사는데 어린 소년이 뙤약볕에 나앉아
오백원을 벌자고 그러고 있는데 너무 하더군요.
이렇게 남의 나라에 까지 가서도 매너가없는 분에겐
더운물 한 컵도 아까운것 같습니다.
순이
벤조
2008-08-03 at 05:14
제 웃기는 친구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 같이 천한 년은 왜 이렇게 입맛도 좋은거야!"
까탈을 부려 대접을 좀 받고 싶은게 식성 좋은 마누라들의 소박한 꿈이지요.ㅎㅎ
Lisa♡
2008-08-03 at 11:40
윤선생님 사진 재미있고 좋습니다.
충분히 성격좋으심 나타납니다.
미친공주
2008-08-04 at 04:31
저만 듣는 소린줄 알았는데…;;; ㅋㅋ 그래도 먹는 낙을 아니 살맛이 좀 더 나는게 아니겠습니까. ㅎㅎ
윤종수
2008-08-04 at 13:40
댓글은 윤종수씨 마누라가 주로 적어요.보는건 같이 봐요. 여행갔다온후에 이렇게 길게 즐겨보기는 첨입니다. 감사 드려요.
그리구 윤종수씨는 57년 닭띠인데 젊게 봐주셔서 고맙대요.
저도 첨에는 먹을때마다 하는소리가 듣기싫고 빈정대는거 같아 기분이 안좋았는데 이제는 뻔뻔해져서 그소리도 양념삼아 맛있게 먹어버립니다. 고런게 아줌마의 힘이 아니겠어요?ㅋㅋㅋ 사진이 반응이 좋으니까 또 보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