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행 선생님은
지난 6월에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장을 정년 퇴임하셨더군요.
현제 65세라고 하시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활력 있어 보였습니다.
노래를 업으로 삼고 사시는 분은 늙지도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나도 다음 생애엔 가수가 되어 노래를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빙초산이니 젖은 담요니 하는 별명은 다 때어 버리고
프리마돈나 수~~니! 이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웃긴다구요?
꿈도 못 꿔요? ^^
한국가곡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테너 엄정행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이번 학기를 여름내 기다렸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가는 목요일에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고 설레 입니다.
그 기대에 충분한 강의를 듣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역시 대가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한국 가곡의 대가이신데 수업을 진행하시는 자세가 성실하고 열심이셨습니다.
두 시간 동안 한국 가곡을 12곡 넘게 부르셨습니다.
나이도 지나고 연세도 지나고 춘추라고 해야 할 즈음이라고 하시면서도
청년 같은 매력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32년을 교단에 서신 오랜 경험에서 얻은 엑기스 같은 강의를
재미있게 하셨습니다.
홍난파 선생님과 현제명 선생님 노래를 집중 들었습니다.
두 분이 한국가곡의 태동을 하신 분들이고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것들이라 더욱 친근한 노래들이었습니다.
10분 정도 휴식시간을 보내고 2부를 시작하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안정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이런 얘깁니다.
시골 어느 중학교에서 체육시간이 되어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답니다.
체육선생님은 벽에 금이 간 곳을 수리하느라고 학생들끼리 축구를 하라고 시켜놓고
학생들과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고 계셨답니다.
아이들이 한창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는데 헬리곱터가 날아오더니 학교 운동장에
내리더라는 군요.
학생들은 자기네 학교 운동장에 헬리곱터가 내린 것이 신기해서 주~욱 돌아서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썬그라스를 낀 멋진 조종사가 내리더니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더랍니다.
"학생 여기서 광주를 가려면 어떻게 가?"
학생들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헬리곱터로 광주 가는 길을 모르겠기에
선생님에게 물으러 갔습니다.
일을 하던 선생님은 헬리곱터 조종사에게 다가가 진지하게 설명을 하더랍니다.
"여기서 왼쪽 길로 한참 가다가 약국이 있는 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해서 가면
이정표가 나오니까 그길로 따라 가면 됩니다."
헬리곱터 조종사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떠나고
학생들은 역시 선생님이 다르다고 고개를 끄덕였다는 군요.
이야기 끝에 엄정행 선생님은 "썰렁했나요?" 라시며 웃으시는데
우리도 뭔가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썰렁하기도 해서 웃었습니다.
썰렁했나요? 라는 질문이 더욱 웃기잖아요?
이글을 읽는 분도 썰렁한가요?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현제명 선생님의 작곡 작사인 고향생각 입니다.)
"이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대체로 한국가곡은 한과 그리움 그리고 슬픔을 노래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가곡을 듣는 내내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강원도 비탈에 살 때 아버지가 부르시던 저 노래를 들었거든요.
툇마루에 걸터앉으셔서 아버지 오른쪽에 오빠가 앉고 나는 왼쪽에 앉았는데
아버지의 긴 팔로 오빠와 나를 감싸 앉으시고 노래를 부르시는 겁니다.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이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이 대목에서는 아버지의 한숨과 회한 슬픔 같은 것을 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꿈이 뭐 였을까? 생각나는 것은 없는데
현실에 발목이 잡히고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 어려운 삶이셨으니
이일 저일 생각하면 눈물이 나셨을 겁니다.
엄정행 선생님이 가는 곳 마다 하는 말씀이랍니다.
국내에서 가곡 가수로 이름을 떨치던 81년 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초청공연 의뢰가 들어왔답니다.
그때까지 외국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어
넥타이와 양복 구두를 갖춰 신고 갔답니다.
다른 분들은 다들 편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었는데
조금을 가다 보니 그분들의 옷차림이 왜 그런지 알겠더랍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여 일박을 한 후에
워싱턴으로 프로펠러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그나마 비행기도 정시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행기 다 뜨고 막간을 이용해 뜨는 프로펠러 경비행기에
목숨을 걸고 흔들리면서 갔더랍니다.
워싱턴이 목적지가 아니고 거기서 두 시간을 더 차를 타고 초청된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공연시간은 다 되었는데 긴 여정으로 피곤하고 몸에 물이 다 마른 것 같이 건조한 느낌에
몸살기가 확 덮치더랍니다.
공연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의 컨디션에서 억지로 무대에 올라
첫 곡으로 가곡 "가고파"를 혼신을 다해 부르고 났더니
앞에 앉았던 관객이 일어나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500여명 모였던 관객이 다 일어나면서 기립박수를 열렬하게 치는데
마음속에서 감동이 되면서 그때까지 몸을 짓누르던 여독과 낮선 곳에서의 두려움
같은 것들이 다 없어지고 날아갈 듯 한 기분으로
20여곡을 무대 뒤로 퇴장한번 하지 않고 불렀다고 합니다.
성악가는 물론이려니와 무대에 서는 모든 분들이 응원의 박수에 힘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도 서로의 인생에 박수와 격려를 보내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관객이 연주자를 위해 격려하고 화답하고 좋은 기를 보내면
연주자로 부터 더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면서
연주장에 가면 격려의 박수를 좀 더 열심히 무대를 향해 보내 달라는
부탁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다음 시간엔 사진을 찍어서 엄정행 선생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카메라를 안 가지고 가서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조금 뻥을 칠 수도 있는데 제 블로그를 오는 분이 함께 강의를 듣게 되어서
그게 어렵게 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만 쓰겠습니다. ^^
순이
벤조
2008-09-05 at 05:36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찌하여,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가 돌아가…
순이님, 이일 저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는 얼핏 들으면
좀 촌스러운 표현이 가슴을 저밀때가 있습니다.
올 추석에는
친구, 고향, 그런것들 생각하며 울어봐야겠습니다. 실컷.
광혀니꺼
2008-09-05 at 06:23
멋진 분의
멋진 강의를 듣는다는것은
그와 같이 공존하고 잇음의
행복한 증거지요…
다음 이야기 기다립니다.
소리울
2008-09-10 at 15:28
뻥도 칠 줄 아셔요?
보미
2008-09-15 at 22:52
오랫만에 들어와 봅니다
소리울님 말씀처럼 뻥도 칠줄 아셔요?
도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