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경이!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들과는 다 절친한 관계이지만
그중에서도 경이와는 특별히 더 가깝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내 오라버니의 대학동기입니다.
그녀는 나를 보러 우리 집에 오고 오라버니 친구도 놀러오곤 하다가
둘이서 좋아져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 자매만큼이나 서로의 속내를 나누며 살았습니다.
친구가 워낙 착하기도 하고 남편이 된 오라버니 친구도
실력이 좋고 건실한 분이라 사이좋은 부부로 두 자녀를 키우면서
오손 도손 잘 살았는데 3 년 전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함께 거실에서 늦도록 텔레비전을 보다가 주말극장이 끝나니까
남편이 " 들어가서 자자" 이러며 소파에서 일어나다가 아내의 무릎으로
쓰러지면서 "이상하다…" 그러더랍니다.
남편이 장난하는 줄 알고 얼굴을 일으켜 보니 얼굴에 청색증이 왔고
혀가 굳어져서 119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도착을 하였을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새벽 두시에 호출을 받고 병원으로 갔더니 친구는 넋이 없고
20살짜리 딸이 엄마를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너무 졸지에 당한 일이라 기가 막혀 울지도 못하더군요.
남편의 사업을 대책 없이 물려받아 책임을 지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돈을 받을 곳에선 받지 못하고 줘야하는 곳에서는 빗발치듯 성화를 하는 통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습니다.
결국엔 손해를 봐 가면서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본인도 암에 걸렸습니다.
심한 스트레스가 암이 된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래서 지난 1월에 수술을 받고 봄내 여름내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남편도 없고 출가하지 않은 두 딸을 대리고 친정모친을 모시고 살면서
항암치료를 다니는데 많이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봄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경이 때문에 가을로 미뤄서
이번에 하롱베이를 다녀오게 된 것입니다.
경이도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아서 기분 전환도 할 겸
함께 떠나게 되어 나도 기뻤습니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다 빠지고 새로 자라나온 3~4cm 되는 머리카락을
그때까지 쓰고 다니던 가발을 벗어버리고 파마를 했더군요.
반백이 된 머리에 파마를 한 모습이 또 마음을 짠하게 했습니다.
그녀는 20 살 때부터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윤기 나는 긴 생머리를 하고 다녔고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제법 긴 생머리를 맵시 있게 빗어 넘기곤 해서
친구들을 부럽게 만들었는데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짧고 흰머리에
아줌마 파마를 한 모습은 친구가 보기에 슬펐습니다.
비행기에 탈 때도 경이는 내 옆자리에 앉았고
여행지에서도 당연히 한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큰 병을 이겨내고 아프다 소리 없이 씩씩하게 잘 다니기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데 여행 마지막 날 탈이 났습니다.
하롱베이 선상에서 먹은 해산물이 잘 못 되었나 봅니다.
나를 비롯하여 다른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경이 혼자 복통에 설사를 심하게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저항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위경련이 일어나서 하얗게 질려 진땀을 흘리는데 지사제나 소화제 정도로는
안되어 병원에 대려다 달라고 가이드에게 부탁했습니다.
여기가 병원입니다.
허름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차와 오토바이가 다니는 대로변에 알루미늄 새시로 된 문을 열어 놓고
그냥 노상이나 마찬가지인 환경에 간이 의자를 놓고 진료를 합니다.
여자 의사선생님인데 검정 털 세타를 속에 입고 푸른색 팔이 짧은 수술복을
걸쳤는데 머리엔 기름이 덕지덕지하고 지저분한 외모입니다.
병원이라는 곳이 위생이라고는 따져볼 곳이 없습니다.
더하여 의사 샘이랑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영어는 못하더라도 미국식이든 유럽식이든 의학을 공부한 분이니까
abdominal pain, stomachache, gastrospasm, diarrhea…
이 정도의 의학용어는 통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가이드가 베트남 어로 이야기해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가이드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 있는 분은 베트남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7년 동안
사셨던 분이라 한국말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 분에게 상태를 얘기하고 의사선생님께 전화기를 드리면서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제야 알아들은 선생님이 혈압을 재보고 체온계를 꼽고 청진기를 대 봅니다.
암을 치료 받은 환자라는 설명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이 이렇게 갑갑할 수가 없습니다.
네모난 약포지에다가 알약 세 개를 싸서 주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약은 이미 먹었는데 차도가 없고 배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고
온간 제스처를 써서 설명을 해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외국인 환자는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종이에다 5% D/W + buscopan 라고 썼더니 조금 알아듣는 듯 했습니다.
수액에다가 부스코판이라는 주사를 믹스해 놔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도 그제야 납득이 되는 표정으로 뒷방에 있는 침대를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겨우 주사를 맞고 통증이 가라앉았습니다.
그 시간에 친구들과 다른 일행은 씨클로라는 투어를 갔습니다.
자전거 앞쪽에 달아 낸 의자에 앉아서 시내를 관광하는 코스였습니다.
하노이투어에서 백미인 씨클로 투어를 생략하긴 했지만
친구가 나아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위경련 치료에 얼마가 들었나 하면요
칠십만 동입니다. 달러로 환산하니까 50불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칠 만 원정도 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의료보험제도가 잘 되어있어서
이제는 돈이 없어서 진료를 못 받거나 약을 못 먹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곳과 비교하니 우리나라는 의료선진국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우리 점방에도 동남아나 남미 쪽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오는데
그분들께 더욱 친절하고 약값을 싸게 해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험이 없는 외국인에겐 진료비나 약값이 큰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칠십 만동이나 써서 수액500cc를 맞았지만 위급한 상황을 벗어나게 해 주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베트남에서 의료체험을 했습니다.
이것도 귀한 일이라 글 한 꼭지가 되었습니다. ^^
순이
데레사
2008-11-17 at 04:46
하롱베이 선상의 다금바리 회.
저는 안먹었어요. 삶은 게만 먹고.
여행지에서 종종 탈을 이르켜서 무척 조심하느라 조금이라도 기분에
안들면 안먹거든요.
친구분 고생많이 하셨네요. 순이님 외국인 노동자에게 베풀겠다는
마음에 박수 쳐드립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행복하세요.
화창
2008-11-17 at 12:14
하롱베이 관광을 하는데 가이드가 선성 어부마을앞에 배를 세우고 다금바리를 먹어야 한다고 반 강제로……
근데 kg에 100불씩이나 받아 먹더라구요! 회는 뜰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래도 혹시나 해서 배 타기 전에 한국말로 "한국 소주 팝니다"라고 쓴 집에서 소주 2병 사가지고 간덕에 그런대로 맛있게 먹었는데…..
항암치료를 받느라 면역력이 약해지신 분이 혼나셨군요!
광혀니꺼
2008-11-17 at 12:27
큰일 날뻔 하셨네요.
의사의 처방전보다
순이선생님의 처방전이 훨씬 나았네요.
다행입니다. 참말로…
항암치료…잘 받아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Lisa♡
2008-11-17 at 13:21
씨클로 안하신 게 더 좋아보입니다.
씨클로 별로에요..공해..오토바이 공해.
아셨죠?
우정의 씨클로가 더 좋아보이네요.
읽으면서 마음이 찡..했습니다.
파란 색이 어울리시네요.
김진아
2008-11-17 at 13:51
다행입니다.
참으로 다행이예요..
그곳에..두분이 함께 계셔서..정말이요..^^
벤조
2008-11-19 at 04:52
큰 일 날뻔했어요. 순이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
저도 아직 면역이 약해 남편을 못 쫓아가고 있잖아요.
소리울
2008-11-20 at 00:29
참으로 큰 일을 하셨군요.
저와 여행 가고 싶어하는 환자 한 분이 있는데
더 있다가 가자고 해야 겠군요.
저는 순이님이 아니라 감당 할 수도 없는데…
청풍명월
2008-11-20 at 06:49
다행이네요.
mutter
2008-12-28 at 14:53
저도 베트남 하롱베이선상에서 회를 먹고는 배탈이 나서 밤새도록 설사를 4번하고 열이났어요. 가지고 간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일행이 준비해온 약도 먹고 하루는 관광을 하는지 마는지 했지요. 큰병 걸린줄 알고 인천공항에서 신고를 했어요. 대변검사하고 들어왔는데 나중에 별일 없다고 연락이 왔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