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 발랄한 재즈를 들었습니다.
재즈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조금은 퇴폐적이고 흐느적거리는 느낌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은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
세종 아카데미에서 계획한 음악회라 아카데믹한 분위기에 맞추느라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피아노 색소폰 베이스 드럼 이렇게 네 분이 연주를 할 때는 그런대로
재즈의 맛이(!) 있었는데 보칼 박라운씨가 부르는 재즈는 상쾌하기까지 했습니다.
재즈가 상쾌하다고 하면 조금 이상하지요?
영화 같은데서 본 재즈의 풍경은
뚱뚱한 중년 아줌마가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흐느적거리고
한껏 느리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봐서 재즈는 어쩐지 그래야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그런 그림이 머리에 있어서 그럴 것 같습니다.
그도 아니면 가스펠이나 흑인영가 재즈가 같은 묶음으로 저의 머릿속에 있는 듯도 합니다.
(저는 제 무식을 늘 내 입으로 폭로해 버려서 걱정입니다. ^^)
"포기와 베스"에서 섬머 타임이 나옵니다.
섬머 타임(Summer time)은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와서 유명해진 곡으로 "듀보스 헤이워드"의 가사에
"조지 거쉬인"이 곡을 붙인 1935년 작품입니다.
거쉬인은 이 곡이 흑인 영가로 인기 있었던 곡에서 힌트를 얻어 작곡되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때이지만
1930년대 흑인들에게는 여름은 더위와 일에 지치는 힘든 계절입니다.
더위에 맞서 싸우며 하는 일도 훨씬 고되고 또한 자연재해 등도
그들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힘들고 고단한 그들에게 유일한 오락은 저녁나절의 주사위놀이입니다.
이 놀음판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며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바로 이때 1막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아기를 재우며 클라라가 부르는 노래가
가장 유명한 "섬머 타임"인데, 태풍의 눈과도 같은 극적인 느낌을 줍니다.
아름답고 애절하며 평화로운 선율 그 속에 감춰진 예견되는 불행들….
고단하며 공허로우며 외로움이 느껴지는 끈적이는 남부의 재즈 선율
이 노래가 이 작품의 분위기를 미리 알려 줍니다.
DVD로 감상한 적이 있는데"섬머 타임"에는 이런 이야기가 얽혀있습니다.
품에서 잠들고 있는 아기를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머니,
어머니는 아기를 흔들며 속삭입니다.
아가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 자거라…
모성애가 담긴 아름다운 자장가가 한적한 어느 여름 낮에
나직하게 울려 퍼집니다.
Summertime and the living’s easy
Fish are jumping and the cotton is fine
Oh your Daddy’s rich and your mommy is good looking
So hush little baby, don’t you cry.
여름은 살기 좋은 계절
물고기는 수면 위로 뛰놀고 목화는 익는데
아빠는 부자, 엄마는 멋쟁이
그러니 아가야 울지 말거라.
요람에서 쌔근쌔근 잠든 아가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그 아이가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압니다.
철이 들면서부터 범죄자가 되는 어려운 삶의 길을 헤쳐 나가야 되는 것이
아이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를 아는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이기에 이 노래는 한없이 슬프고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빠는 부자, 엄마는 멋쟁이"라고 아가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는 사실 거짓말입니다.
안고 있는 아기가 잘 자라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도록 엄마 아빠를 믿고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울지도 말고 살아가라고 하지만
엄마 아빠조차 자신의 삶을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벅찬 희망을 바라고 아기를 바라보는 가장 따뜻한 어머니의 눈빛이
사랑으로 가득 차 노래하는 내용이 모두 거짓이라니요……
사랑하는 자식들을 지켜줄 힘이 그들에게는 없지만 진심으로
그러고 싶은염원을 담은 노래겠지요.
재즈에는 다른 음악과 달리 즉흥성이 강합니다.
연주자나 노래 부르는 분이 자신의 흥에 따라 마음껏 늘어지게 노래 부르는 일입니다.
박라운씨는 그런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순간에도 젊은이답게 발랄한 모습으로노래했습니다.
재즈가 영혼을 노래하는 듯 아니면 가슴 저 아래에서 슬픔을 길어 올리는 듯
그런 애절함은 없었지만 연말을 보내면서
재즈로 듣는 크리스마스 캐롤도 좋았습니다.
세월을 따라 모든 것이 변해가듯이 재즈도
상큼 발랄한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순이
소리울
2008-12-22 at 23:36
암울한 시대에 듣는 상큼 발랄한 음악이 정말로 상큼 하겠습니다.
좋은 성탄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