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쓸쓸한 졸업식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친손자와
중학교를 졸업하는 외손자의 졸업식 날자가 시간까지 똑 같으면
할머니는 누구 졸업식에 가실까요?
우리 어머니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친손자 졸업식에 가십니다.
더하여 아버지가 없는 손자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어머니는 손자 졸업식 날을 기다렸습니다.
설 명절 며칠 전에 할아버지 추도 일에 다녀갔다고 그러는지
가까이 살면서 손자도 손녀도 며느리도 설엔 오지를 않아서
세뱃돈을 장만해 놓고 기다리는 모습이 옆에서 뵙기에 안 되셨습니다.
전화를 해서 명절인데 아이들을 할머니께 세배하러 보내라고 하고 싶었지만
남편도 없는데 시누이가 별나게 잔소리 한다고 할까봐
눈치가 보여 아무 말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졸업식을 앞두고도 연락이 없습니다.
다음날이 졸업식인데 언제 어디로 오라던가 모시러 온다든가 하는 연락이 없으니
어머니는 잠을 못 주무시고 거실에서 전화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녁 9시 뉴스만 끝나면 주무시는 분이 거실에서 우두커니 전화만 바라보고
내가 일을 끝내고 들어간 시간까지 앉아 계시기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그러나 집전화도 찬이 휴대폰도 받지 않습니다.

"나 오지 말라고 그러나 보다…."
어머니께서 힘없는 모습으로 방으로 들어가시는데 내가 속이 상합니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그나마 손자가 자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러 가고 싶으신 그 마음을 찬이는 모르는 걸까?
야속한 생각이 듭니다.
졸업식 당일 날 아침 나는 현관을 나오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찬이 엄마가 아들 졸업식에 어머니께 가시자고 하는 전환가 봅니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어서 나는 안심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오전 10시쯤 되었는데 어머니가 점방에 오시더니 꽃을 사러 가신다고 합니다.
꽃값 비싼데 차라리 용돈을 주시던지 점심을 사 주는 것이 안 나을까요? 했더니
그래도 꽃 없는 졸업식이 어디 있냐고 사거리 쪽에 있는 꽃집으로 가시더니
꽃다발을 두개나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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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외손자 하나는 친손자 주실 거였습니다.
꽃값이 비쌀 텐데 두개나 사셨냐고 했더니
꽃장사도 대목인데 팔아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십니다.
얼마 주셨냐고 했더니 한 다발에 이만 오천 원씩 오만원이나 주셨다고 합니다.
졸업시즌이긴 하지만 꽃값이 정말 비싸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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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개는 노란색 한개는 빨간색 계통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보자마자 빨간색은 친손자 주시려고 하실 거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왜냐하면 노인들은 빨간색을 더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졸업생 욱이를 줄 꽃다발을 전해 주라고 노란색은 놔두고
찬이 엄마가 모시러 오자 빨간 꽃다발을 들고 따라가셨습니다.
그런데 가신지 한 시간도 안 되어 금방 돌아오셨습니다.
점심은 안 드시고 오셨어요? 여쭈었더니
찬이가 친구 졸업식에 간다고 가버려서 식사도 한 끼 같이 하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오셨다고 합니다.
자녀들과 외식을 하러 가면 어머니가 거의 페이를 하시는데
노인이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항상 어머니께서 식사비용을 대십니다.
찬이네 식구들에게도 어머니께서 식사를 하자고하셨나 본데
주인공인 졸업생이 빠지고 나니 찬이 엄마가 그냥 가자고 했나 봅니다.

찬이 엄마는 가는 차 속에서 약국에 있던 노란 꽃다발이 더 예쁘다고
할머니가 가지고 가는 빨간 꽃다발을 몇 번이나 타박을 하기에
졸업식장에 도착해서 노란색 꽃다발을 하나 더 사셨답니다.
외손자와 친손자를 차별해서 외손자는 더 예쁜 꽃다발을 주고
친손자는 미운 꽃다발(?)을 준다고 짐작하고 그러는 오해를 받는 것이
어머니로선 기분이 영 상하는 일이셨을 겁니다.

우리어머니께서 분명 차별을 하십니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한 시절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딸 보다는 아들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러니 아들의 아들 즉 친손자가 어머니껜 더 귀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빨간색 꽃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
빨간 꽃다발을 친손자 줄려고 가지고 갔는데
며느리의 황당한 오해를 받고 보니 서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손자는 할머니가 갔는데도 다른 학교 친구 졸업식에 간다고 가버리고
식사도 함께 못하고 며느리는 꽃다발 가지고 차별을 하는가 해서 오해를 하니
어머니껜 아주 서운한 졸업식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가격을 주고 샀는데 노란 꽃이 눈에 더 띄긴 하네요.
그렇다고 팔십 노인의 진심을 오해하는 것도 좀 심한 거 아닐까요?
저도 이렇게 글로 쓰기는 하지만 듣는 데는 아무 말도 못해요.
작은 일도 오해하기를 시작하면 점점 오해할 일만 생기잖아요.
하물며 시누올케사이에는 잘해야 본전이고
조금만 서운하면 풀어 볼 길이 없습니다.
동생이라도 있다면 동생을 대리고 이말 저말 해 보겠지만
올케는 아무리 해도 진심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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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아들생각이 나서 우울하셨을 텐데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손자는 손자대로 다른 생각들을 하니
어머니로서는 아주 쓸쓸한 졸업식에 다녀오셨습니다.

순이

5 Comments

  1. 김진아

    2009-02-15 at 09:52

    속상해요…속상합니다.

    ㅜㅜ   

  2. 데레사

    2009-02-15 at 12:41

    순이님.
    그냥 마음이 아픕니다.
    자식 먼저 보내신 어머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수
    있겠습니까?
    그냥 편안하셨으면 하고 바래봅니다만…..   

  3. 슈에

    2009-02-16 at 02:35

    저도 저의 친정엄마를 통해서 할머님의 마음을 절절히 읽고있어요.~~~

    할머니 사랑은 첫 아들쪽의 손자에게 유난히 일편단심같은 마음인데

    손자가 할머니 생각하는것을 보면 옆에서 저희들이 보기에

    너무할정도예요.. 조카에게 몰래 코치를 해줘도 …

    마음이 안가는것 어떡해요. ㅎㅎ    

  4. 운정

    2009-02-16 at 12:33

    어른께서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그것도 더 좋고, 이쁜꽃을 친손주에게 주려고 하신건데.
    며느님은 그걸 몰랐으니…

    어른의 상한 마음을 순이님이 달래 드리세요…
    병이 되지 않으시게요.   

  5. Lisa♡

    2009-02-25 at 08:00

    어머님이 순이님 닮으셨어요.

    어머님이 약간 섭하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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