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연주복은 사철 하복이다.

세종 체임버 홀이나 세종 대극장 같이 큰 무대에 서는 음악가들을 보면
자신감이 넘치고 보무도 당당하고 힘이 느껴집니다.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시간이라
연주복도 새것으로 입고 구두까지도 조명아래 반짝이는 모습이
연주자에게는 더없이 뿌듯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보여 집니다.
연주자에 따라 조금 긴장하는 모습도 보이긴 하지만 그거야 많은 사람들 앞에 서니까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그냥 일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주자는 무대에 오르기 전 본인만 빼고 세상 사람이 다 행복해 보인다고 합니다.
거꾸로 말해서 연주회를 앞둔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란 느낌을 갖는 답니다.
무대 울렁증이 심한 사람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것은 보통이고
연주하기 전에 먹은 것을 토하기까지 한답니다.
공연을 앞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깊은 우울증에 들기도 한다는 군요.

세종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시는 피아니스트 김주영 선생님도
연주회를 위해 연주회가 있는 장소로 차를 몰고 갈 때
차창 밖으로 스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워 보인답니다.
본인만 죽을 맛이라는 겁니다.
예술의 전당 등에서 공연을 앞둔 연주자가 일산 돌체 같은 작은 무대에서
리허설을 하는 모습을 보면 작은 무대라고해서 긴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주자가 편안하게 연주하면 관객도 마음이 편한데
극도의 긴장상태를 보이면 덩달아 관객도 불편해 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연주자는 아마 무대에 단련이 덜 되어 그런가 보다 했는데
노련한 연주자도 무대에 대한 공포감은 여전하다고 합니다.
강의를 하시기전 김주영 선생님이 첼로연주자와 피아노를 맞춰보고 난 후
잠시 짬을 내서 테라스에 나가 광화문을 내려다 봤는데
평소에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와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비교적 긴장이 덜 되는 강의를 하는 시간인데도 늘 연주를 앞둔 빠듯한 느낌에
광화문을 둘러 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벌서 두어 달이 되어 가는 대두요.
선생님은 음악 공부를 하는 우리가 무척 부럽다고 하셨습니다.

악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악기를 자기의 분신처럼 늘 가까이 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연주자가 악기와 닮아간다고 하는 군요.
첼로연주자는 첼로 같아지고 바이올린 연주자는 바이올린 같아 진다구요.
연주자가 악기와 닮아갈 정도로연습을 하기 때문에 음악이 짐으로 여겨지기도 할 겁니다.

결론은 연주자는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없어서 불행하다는 말씀입니다.
나처럼 무식하게 음악을 듣는 편에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건데
그건 정말 그럴 것도 같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선후배가 하는 연주회에 초대되어 가서도
지인의 고통을 피부로 실감하는 지라 편한 자리가 아니랍니다.
그런 느낌은 저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동생이 춤추는 사람인데 동생 공연을 보는 느낌이 그다지 편치 않더군요.
동생은 춤에 관한한 프로이고 협회를 이끄는 협회장인데 어련히 잘 하련만
내가 걱정할 부분이 조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조마조마 했습니다.

음악가의 연주복은 사철 하복을 입는 답니다.
연주를 하다 보면 한 겨울이라도 땀이 나도록 덥고 머리에 열이 오르기 때문이라는 군요.
애환이 없고 늘 행복하기만 한 직업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음악 하는 사람들은 만족도가 높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군요.

오히려 아무 긴장감 없이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소비자인 내가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악보조차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이라 더욱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이 없으니 음악이 잘 못 되어도 알 수가 없고
연주를 잘 못 해도 내가 듣기 좋으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 잡념이 없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알아주는 멋진 피아니스트 김주영 선생님보다 음악을 대하는데 있어서는

내가 더 편하고 더 친할 수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지요?

아~~니! 모르면 편해요. ^^

순이

4 Comments

  1. 소리울

    2009-04-17 at 23:54

    그럴 것 같네요. 공감합니다.
    제가 아는 유명한 바이얼리스트가 있는데 그 하느적 거리는 얇은 드레스를
    입고서 땀에 젖은 손을 옆구리의 옷깃에 자주 손이 가는 걸 보았어요.

    첫 발령 갔을 때 느닷없이 도 학예발표회에 무용지도를 하라는 것이었어요.
    대학대 은사넴게 가서 작품 하나 받아와서 무대에 아이를 세웟는데
    아이보다 내가 땀이 더 많이 흘렀어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틀린 것도 모르고… 상가지 받았는데…

    아마도 모든 예술은 다 그런건가 봅니다.
    미술도, 문학도… 늘 본인은 마음에 차지 않은 느낌일 거예요.
    그렇기 떄문에 늘 불안하고…   

  2. Lisa♡

    2009-04-18 at 00:29

    모르고 살고 싶네요.

    몰라도 행복하고 좋은 것은 좋죠?

    그러니 게속 몰라도 불편하지 않아야겠어요.

    순이님.

    글 재미있어요.   

  3. 구산 (舊山)

    2009-04-18 at 02:17

    참신한 글 잘 읽었습니다.
    평소에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을 잘 알려주셨네요.

       

  4. 데레사

    2009-04-19 at 03:07

    어디 예술뿐이겠어요.
    모든게 다 남앞에서 할려면 떨리고…..

    나같은 사람은 직장에서 조금만 규모가 큰 회의에 참석해도
    늘 안절부절, 정작 해야할 말은 못하고 버벅거리다가 오곤
    했어요. 그런데 글로 표현하는건 또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ㅎㅎ

    오늘, 좋은 나들이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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