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도 얼짱 각도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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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여권이 필요해서 여권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갔습니다.
사진관 주인이 "여권사진은 얼짱 각도로 찍으면 안 돼요. " 하시면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서 귀가 나오게 하고 배경은 하얗게 해서
사진 기술이 필요 없다며 여권사진이 젤 찍기 싫다고 하시더군요.
얼짱 각도가 뭐냐고 물었더니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이 똑 같을 것 같지만
사람의 얼굴은 사진이 나오는 모양이 다르다는 겁니다.
왼쪽이 더 멋있을 수도 있고 잘 생겨 보일수도 있고
오른쪽이 더 복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다면서 얼굴도 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얼마든지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해 줍니다.
그러니 여권사진은 생각보다 밉게 나와도 이해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어서 웃고 말았습니다.
밉게 나와도 예쁘게 나와도 나는 별로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오래전 사람인 지휘자 카라얀이 얼짱 각도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군요.
그분이 위대한 지휘자라는 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일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오래전 음악 TAPE의1/3 이상이 카라얀이 지휘한 것이고 보면
그분이 음악에 끼친 영향이 지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0여 년 전에 수집하기 시작한 TAPE가 책장에 쌓이는 것을 저축하는 것만큼이나
뿌듯하고 행복해 했는데 CD와 DVD가 보급이 되고 부터는 기능을 상실한 채로
보물같이 여겼던 테이프들이 창고 구석으로 밀려났습니다.
싸고 성능 좋은 CD와 DVD가 있는데 굳이 테이프를 찾아 듣게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카라얀은 오스트리아 태생인데도 키가 아주 작았습니다.
남자 키가 160Cm 정도니 동양에서도 작다고 생각하는 킨데
유럽에서 그 키는 정말 작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대했던 사람들은 그의 작은 키에 대해 실감하지 못합니다.
음악을 통해 카라얀을접했기 때문에 아주 거물이라는 이미지를 가집니다.
영상물이 일반화 되지 않은 오래전에도 카라얀은 스스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고 하는군요.
그분은 특히 작은 키에 대해 컴플렉스가 심했다고 합니다.
레코딩을 하고, 녹화를 할 때 카라얀의 허리 아래를 촬영한 촬영기사는 다 잘랐을 정도랍니다.
실제로 오래전 영상물을 보면 카라얀의 허리 아래로는 카메라 앵글이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리스인 혈통이 있는 카라얀의 옆얼굴은 조각처럼 잘 생겼습니다.
카메라 앵글이 허리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한
사진속의 카라얀은 손도 크고 팔도 길고 상체가 발달해 있어서
그가 내어뿜는 카리스마를 더하여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카라얀 스스로 대중에게 어필 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우리는
아무런 저항감 없이 빠져 든 것입니다.

그는 기계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분이라 자가용 비행기와 보트를 직접 몰기도 했답니다.
젊은 시절 엔지니어를 꿈꾼 공학도 출신답게 첨단 음향 기술 개발에 앞장서기도해서
오늘날 디지털시대를 열게 한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음반의 주요 형태가 된 컴팩트 디스크(Compact Disc , CD)가 수록시간이
74분이 된 것도 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음반 한 장에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정도는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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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봉 하나로 세계 음악계를 지배했던 황제 카라얀은
왕자병의 원조라는 말도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잘났다고 여기는 자기도취의 나르시시스트 기질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를 사기도 했습니다.
1984년 베를린필하모니오케스트라와 내한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 할 때는
이미 연세가 많아서 지휘대에 안전대를 설치하여 몸을 기대고 서서 지휘하는
조그만 노인의 힘없는 모습을 대하고 나서 사진이나 영상물로만 봐 왔던
카라얀에게 가졌던 그림들을 다 수정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81세에 돌아가셨는데
카라얀의 일생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삶이었습니다.
시골의 무명 지휘자에서 더 이상 정복할 세계가 없는 음악의 제왕으로 군림하기까지
시기와 찬사의 연속이었습니다.
출세를 향한 야심과 순수한 예술성의 한 가운데에서 불멸의 신화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그는 왕자병과 이미지 메이킹과 얼짱 각도를 이미 간파한
영상 예술을 아는 음악인이었습니다.
그분의 성공에는 그런 이미지가 대중에게 어필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카라얀도 얼짱 각도를 좋아했답니다. ^^

순이

3 Comments

  1. Lisa♡

    2009-05-22 at 10:28

    고집쟁이.

    바람둥이였다죠?

    우아한 남자이기도 했구..

    아 그래도 카라얀이 그립네요.   

  2. 나그네

    2009-05-28 at 05:36

    그런일이 있어군요.. 재미있어요..   

  3. 카라얀 연구인

    2019-08-28 at 13:21

    카라얀의 컴플렉스가 키라고 하셨는데 카라얀키가 173이라서 오토클렘페러나 카를로마리아줄리니, 칼 뵘에 비해 좀 작았을 뿐 레너드 번스타인은 그와 비슷한 키였습니다.
    일례로 마리아 칼라스와 같이 찍은 사진이 예시인데 칼라스도 키가 173으로 알려져 있어 키는 같습니다.

    물론 173이 서양인 치고 큰 키는 아니니 컴플렉스로 남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키가 160 즈음으로 알려진 툴리오 세라휜이 칼라스와 찍은사진을 보시면 키가 작죠.

    카라얀이 13cm나 되는 키높이 구두를 제작해 신었다고 주장한 한 신발장인의 주장은 루머로 판명났고

    카라얀이 말년에 척추수술을 여러번 받다 보니 허리가 불편해져 등을 기대고 하다보니 국내던 국외던 그의 만년의 지휘를 본 사람들이 160초반대로 보이더라는 이야기가 퍼진것 같습니다.

    카라얀은 바람둥이는 아니었습니다.
    스토코프스키 같은 사람이 염문을 뿌리고 다녔지 카라얀은 3번째 결혼한 엘리에트 무레와 31년이나 해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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