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색다른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즐거움 중에 하나입니다.
여행일정에 스팀보트이라는 식사가 한 번 있다고 해서 뭐 특별한 음식인가 했더니
스팀 풋 그러니까 우리나라 채선당 등에서 먹을 수 있는 샤브샤브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채선당에서 먹는 샤브샤브는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돌체 옆에 있어서 가끔 먹습니다.
그러니 장소가 외국이라는 것 뿐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슬공주를 만난일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이층에 있는 음식점을 오르다 보니 눈에 익은 술 광고판이 들어옵니다.
그 밑에는 파란색 A4 용지에 “가져오신 주류에 한해서는 일정금액의 차지를 부과합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부에서 술을 가져와서 마시면
돈을 받겠다는 이야깁니다.
비행기를 타고 겨우 6시간을 날아왔고 집을 떠나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글로 된 익숙한 광고를 만나면 무척 반갑습니다.
그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 대니까 우리 도치가 말립니다.
"엄마 그거 우리 동네 슈퍼마켓에도 붙여 있는 거예요."
"엄마도 알거든! 그렇지만 동네에 붙여있는 것 하고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것 하고 같니? "이랬더니
"우리 엄마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나도 내가 이상한 취향이라는 것을 느끼는데 그건 블로그 때문이 아닐까? ^^
우리 일행은 30명이 넘었는데 자리를 잡고 앉자 미리 준비가 되었던 듯
신선로같이 생긴 조금 큰 냄비에서 김이 오르기 시작하고 종업원이 냄비뚜껑을
열어주면서 우리나라 말로 " 소고기부터 드세요!" 합니다.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젓가락을 들고 고기를 넣으려고 하는데
60대 초반의 아저씨가 옆에 앉은 부인의 눈치를 보며 종업원을 부릅니다.
남자 종업원이 다가오자 "소주가 한 병에 얼마요?"라고 묻습니다.
“소주 한 병에 이만 원이고 가져오신 팩소주가 있으면 테이블 세팅비로
만원을 내셔야 한다. “고 설명을 합니다.
옆에 있던 부인이 "그 비싼 소주를 왜 먹으려고 그래요?" 버럭 화를 냅니다.
머쓱해진 아저씨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종업원이 돌아가고 우리도 조금 언짢았습니다.
아무리 싱가포르라고 해도 소주 한 병에 이만 원이 뭐야. 너무하는 거지
나도 이만 원 주고는 남편이 아무리 애주가라고 해도 못 마시게 하겠다.
심정적으로 은근히 버럭 하는 아줌마 편이 됩니다.
그렇거나 말았거나 나는 술하고는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사람이라
조금 색다른 샤브샤브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저 먹기 시작했습니다.
50대 후반의 아저씨 한분이 식사를 시작하지 않고 풀이 죽은 듯 가만히 앉아 있자 그 옆에 부인이 묻습니다.
"당신 배고프다며? 왜 빨리 안 먹어?"
"이 음식을 어떻게 소주 없이 먹나? 여기엔 소주한잔이 딱 이지. 한 병만 시킬까?"
한국에서야 당신 맘대로 소주든 양주든 드셨겠지만 여행을 나와서 아내의 심기를
건드려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남편이 아내의 허락을 구하는 모습이 처절합니다.
소주가 뭐 그리 좋을까………
그 부인은 대답을 하지 않는 걸로 남편이 비싼 소주를 먹는 것을 허락합니다.
용기를 얻는 아저씨는 호기 있게 종업원을 부릅니다.
"여기 소주 두병! 얼음같이 히야시 된 걸로." 히야시라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종업원은 빠르게 돌아서 가고 옆에 앉은 부인의 눈이 둥그렇게 커지면서 남편을
제지하려는 듯 했지만 버럭 하던 아줌마 때문에 조금 전 다른 사람들이 언짢아
진 것을 본 터라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속으로 화가 치미는 것이 표정에 들어 납니다.
소주 두병이면 사만원인데 아까워라…. 나도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닌데
비싼 소주를 시키는 아저씨의 낭비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참이슬 두병이 날라져 왔습니다.
종업원 손에 병목이 잡혀서 식탁에 놓여 진 얌전한 모습의 참이슬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금방 냉장고에서 꺼내온 초록색 병에 이슬이 조롱조롱 맺히는 모습이 매혹을 넘어서
미혹을 하는 느낌이 나같이 촌수에 들지도 못하는 술꾼에게도 듭니다.
부인의 지청구를 들은 앞에 앉은 아저씨도 비싼 술을 아내 앞에서 호기롭게 시킨 아저씨도
아무 말 없는 또 다른 내 옆에 아저씨도 매력을 발산하는 이슬공주를 앞에 두고 군침을 꼴깍 삼킵니다.
이제야 밥 먹을 맛이 난다는 듯 환해진 표정의 남자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아내들은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교양이라는 베일을
꺼내 얼굴을 관리하느라고 애를 씁니다.
이슬방울이 흘러내리는 녹색 병이 눈앞에 놓이자 남자들의 얼굴은 화색이 돕니다.
이만 원이 아니라 이십 만원을 주고라도 저렇게 행복한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순간 합니다.
아내 앞에서 감히 ^^소주를 두병이나 시킨 간 큰 남자분이 병뚜껑을 소리 나게 돌려서 따더니
"자~ 자~ 한잔씩 드세요." 라며 나긋나긋한 모습으로 여자들에게도 골고루 소주잔을 채웁니다.
병권을 잡는다고 하지요? 그분은 정말로 군사 지휘권을 가진 장군의 모습만큼이나 늠름합니다.
비싼 소주를 아낌없이 돌리는 그분 기분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나도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잔을 받았습니다.
한 병이 바닥나고 다시 한 병을 따서야 겨우 한잔씩 돌아갑니다.
소주잔을 받아든 내 앞에 남자는 거의 감읍을 하면서 단숨에 한잔을 목안으로 털어 넣고 나더니
잔을 높이 손에 들고는 캬~하~~~ 소리를 내는 표정이 만족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환상입니다.
경상도가 고향인 듯 "그래 바로 이기 아이가. 소주도 한잔 없이 우째 이걸 먹으라는 말이고." 소주 한잔에
기분이 좋아진 아저씨는 부인 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고 큰소리로 종업원을 불러 소주 두병을 시킵니다.
기습적으로 행해진 일이라 옆에 부인은 말려볼 틈도 없었고 만약 아까처럼 버럭 한다면 그건 장미전쟁을
선포할 것 같은 빈틈없는 행동이었기에 아내도 입이 앞으로 조금 나오는 것으로 불만을 대신하고 맙니다.
병권은 쥐어 본 사람만이 그 기분을 아는데 그걸 말리면 금세 싸움이라도 나지 않겠습니까?
다른 남자가 병권을 쥐고 독무대로 즐기게 두는 것을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
다시 참이슬 두병이 땀방울 조르르 흘리며 이슬공주 같은 자태로 식탁에 놓여지고
나서는 둘러앉은 사람들의 대화의 물꼬가 터집니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 서먹하던 분위기는 매혹적인 이슬공주의 출연으로
금방 화기애애해 지는 겁니다.
경상도 아저씨의 큰 목소리가 참이슬의 힘을 빌리더니 시끄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오데서 오셨는교? 일산요? 마 내 사촌도 일산에 사는데 잘 살아요. 마. 이기 없으면
밥맛이 안 나는 기라요. 이걸 어떻게 소주 한잔 없이 먹으라는 거요?"
부인 들으라는 듯 목소리가 커지고 남의 직업과 본적과 현주소와 자녀가 몇 명인지 까지
호구조사를 하듯 하는데 아무도 거부감 없이 대화가 진행됩니다.
내옆에남자! 빠질 수 없다 는 듯 이슬 두병을 더 시킵니다.
도합 여섯 병이면 12만원이나 하는데 아고 아까워라 … 내가 낼 것도 아니면서 계산합니다.
식탁에 모인 사람들이 이슬공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더니
오랜 지기처럼 마음을 틉니다.
그 때 내 눈에 들어오는 광고 문안은 이렇게 되어있었습니다.
(19도만 지켜준다면 마음을 허락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주 가격이 비싸졌다고 해서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변하지 않고 19도를 지켰을 것이고
그래서 서로 마음을 허락했나 봅니다. ^^
페이는자기가 시킨 소주 두병 값을 각자가 카드로 계산을 했습니다.
그 순간은 "그깟 소주 6병 값은 내가 다 내겠다"고 누구도 호기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처음 이슬을 시킨 아저씨도, 두 번째 이슬을 시킨 아저씨도, 내 옆에 아저씨도…..
그 후에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서도 인도네시아 바탐에서도 식탁에서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있는 어디에도 음식이 있는 곳에는 이슬공주가 등장을 했습니다.
그만큼 소주는 모든 나라에서 애호되는 술이 되었나 봅니다.
순이
데레사
2009-08-06 at 05:48
나는 술에 대해서 잘 몰라서 이슬공주가 사람 이름인줄
알았네요. ㅎㅎ
여행, 즐겁게 다녀 오셨나 봅니다.
벤조
2009-08-07 at 05:35
병권을 잡는다…흠~
이예수
2009-08-26 at 06:58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잘 쓰시는지
일일이 기억도 잘하시고요
그런데 좀더 환상적인 Beach여행으로 일정을 잡으시지 않으시고 …
은퇴하시고 아니면 당장 소설가 등극하셔도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