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털처럼 가볍게 춤추고 싶다. (지젤)

나는 노래 잘하는 사람을 많이 부러워합니다.
같은 노래를 불러도 감정이 있고 흥이 있고 즐겁게 노래 부르는 사람의 타고난 목소리라든가

끼 같은 것은 흉내 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춤도 그렇습니다.
유난히 몸짓이 무용 적이고 예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식적이거나 허풍스럽지 않고 몸매가 예쁜 것 하고는 상관없이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리듬을 잘 타서 그런지 표현 방법이 좋아서 그런지

몸으로 하는 연기의 감정 표현이 탁월합니다.

춤이나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소질일 겁니다.
나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춥니다.
여북하면 별명이 빙초산이고 젖은 담요겠습니까?
하여간 흥겨운 분위기에 젖는 일이나 노는 것은 할 줄을 모릅니다.
그렇다고 꼭 유전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은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난 막내여동생은 춤으로 밥을 벌어먹고 삽니다.
그런 것을 보면 춤을 출 수 있는 유전인자가 막내 동생에게로만 부모님이 몰아서 주셨나?

그런 느낌이듭니다.
동생이 춤추는 것을 "춤바람 동생"이라고 부르며 그다지 달가워하지는 않는데
발레 지젤을 보면서 저렇게 몸무게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춤을 추면
너무 좋겠다……. 춤을 잘 추는 것이 갑자기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털처럼 가볍게, 공중을 날아오를 듯 아름답게 감정을 표현하는 발레를 보는 내내

발레리나가 사람의 모습이 아니고 천사의 모습 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지젤을 발레의 햄릿이라고 하는 이유가
연극 관객이 "햄릿"을 좋아하듯이 지젤이 발레 중에 가장 많이 공연되기도 하고
발레관객은 지젤의 연기를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발레리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라는 군요.
1막에서는 쾌활하고 순박한 시골소녀 지젤로서,
2막에서는 신비한 영혼인 빌리로서
인간과 초인간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발레리나의 연기력과 발레 기술이
총 출동하는 만큼 기량이 있어야 맡을 수 있는 역이랍니다.
발레리나의 가장 큰 염원이 지젤 역을 하는 것이라는 군요.

지젤이 발레로 표현하는 인체의 아름다움은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데이지 꽃잎을 따면서 사랑이 이루어질까? 꽃 점을 치는 소녀의 발랄한 모습
사랑의 고통에 못 이겨 정신을 놓고 실성해서 고통 속에 헤매는 모습
처녀귀신이 되어서 알브레드와 추는 춤은 꿈속에 펼쳐지는 장면 같습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낭만주의를 그야말로 낭만만이 넘친다고 생각했는데
낭만이 그렇게 낭만스럽지 않다는 것을 지젤을 통해 배웠습니다.
낭만에 대한 오해를 지젤을 통해 푼 셈입니다.
1830~1840 경에는 광기와 몽유병을 소제로 한 오페라가 특별히 많았습니다.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같은 오페라에 나오는 광란의 아리아등은
그 내용의 비참하고 슬픈 것에 비해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청순가련한 여주인공 루치아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결혼 첫날밤 신랑을 죽이고 "그분의 다정한 음성이 들린다."이러는 것은
명백하게 정신 나간 행위이고 요즘엔 낭만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다정한 음성이 들린다."등은 환청과 환시 등 정신 이상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프로이드가 정신세계를 분석하기 이전에 내 놓은 모든 예술 작품은
광기도 아름다움으로 낭만으로 분류했습니다.
광기를 추하게 보지 않고 영혼과 육체가 별개라고 생각했다는 군요.

지젤에는 사랑에 배신당해 비통하고 괴로운 현실과.
환상적인 혹은 아름다운 비현실이 공존합니다.

영원한 드라마의 소재로 각광받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모든 처녀들이 동경했고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니까
처녀 귀신을 등장시켜 여자를 배신한 남자는 춤추다 죽게 만든다는
비현실적이지만 그러길 바라는 복수심이 들어가 있습니다.
떠다니는 영혼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여 거의 공중에 떠있듯
종종걸음을 걷는 빌리의 모습은 몽환적이고 너무 환상입니다.
백색 발레복을 입은 빌리들의 군무 배경이 되는 푸르스름한 공동묘지의
달빛이 흐르는 신비감을 풍기는 숲 속의 밤이 2막의 무대입니다.
고난도 기술을 요하는 발끝으로 춤을 춤으로써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이 아닌
땅으로부터 벗어나 공기 속을 떠다니는 초인간적인 모습을 춤으로 표현합니다.
발끝으로 걷는 발레 동작은 신기에 가깝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죽은 소녀들을 서양에서는 빌리라고 한답니다.
우리나라의 처녀귀신과 같은 것으로 빌리는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
한 밤중에 남자를 보면 붙잡아다가 춤을 추다가 멈추지 못하고 기진해
죽게 만든다는 서양의 전설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한 밤중에, 전설에서 그러하듯이, 빌리들은 무덤에서 일어나 춤을 춥니다.
소녀의순결했던 순간과, 죽음에 의해 너무 짧았던 인생에 대한 아쉬움에
한 맺힌 그들의 춤입니다.
그곳을 지나치는 상관없는 남자가 희생이 됩니다.
복수의 열망에 사로잡힌 빌리들은 남자들을 춤으로 이끌고 지쳐 스스로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원형의 왈츠로 춤을 강요합니다.

슬프고 아름다운 발레 한 편을 보고 났더니 그 잔영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나도 춤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춤은 무슨…..이런 생각으로 돌아갔지만)

춤바람 동생이 "언니 나중에 양로원가서 춤 배우느라고 고생하지 말고 한 살이라도 젊은

지금 배우세요. 춤도 조기 교육이 필요해요." 이러는데 그냥 웃고 맙니다.


지젤에서 빌리의 모습으로 새털처럼 가볍게 춤추는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동작은
꿈속인 듯 동화처럼 아름답습니다.

순이

1 Comment

  1. 리챠드

    2009-09-12 at 15:12

    엄청 멋진 댓글을 달았었는데여기 사정이 안좋아 실리질 않았네요
    벌써 며칠째 비가 내리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지난 주 부터이니 지겨워졌습니다.’
    정리하고 들어 간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오늘또 비행기 예약을 연기해야했습니다.
    누님의 문학과 예술에대한 정열에 감탄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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