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에게 배울 점 (돈 조반니)

돈 조반니는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로 쌍벽을 이루는 분입니다.
카사노바는 실존 인물이라고 하지만, 돈 조반니는 스페인 전설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유명한 귀족이었다고 하는데 실존인물 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어느 분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돈 조반니에 나오는 "저 곳 내 별장에서 결혼합시다." 라는 노래가 들리더랍니다.
살펴보니 돈 조반니가 여자를 꼬이는 장면의 달콤한 2중창을 카세트테이프로

크게 틀고 걸인이 동냥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더랍니다.
참 유식한 걸인이다…이러고 생각해 보니 돈 조반니라는 이름이
돈 주어봤니? 이런 느낌으로 전달되더랍니다.
그래서 얼른 천원을 걸인이 들고 있는 바구니에 넣어 드렸답니다.
"서로 손을 잡고 저리로 가자. 바로 저기 성이 보인다.
자 가자 나의 연인이여 함께 손잡고 가자…." 이런 내용의 바람둥이 남자가

여자를 꼬일 때 부르는 아리아의 의미를 지하철에서 전달할리는 없고

“돈 줘 봤니?” 라는 발음이 비슷한 돈 조반니 노래를 틀었을 것 같다고

재미있는 해석을 해 주어서 웃었습니다.

돈 조반니에 나오는 "카탈로그의 노래"는
바람둥이 돈 조반니가 각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를 꼬였는지
적어놓은 명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레포렐로는 돈 조반니의 하인인데 주인이 바람을 피우면
상대 여자에 대한 기록을 하면서 따라다니며 시종을 듭니다.
이 노래는 레포렐로가 엘비라 라는 여자에게 불러주는 아리안데
엘비라가 바람둥이 돈 조반니를 못잊어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자
돈 조반니는 여인의 순정을 바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돈 조반니가 상대한 여자들을 적어놓은 책을 꺼내 읽는 노래입니다.
그러는 레프렐로도 주인의 엽색 행각에 치를 떠는 척 하지만
보고 배운 건 이것뿐이라 행동은 마찬가지입니다.

아가씨,

주인님이 건드린 여자의 기록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640명, 독일에서는 231명,
프랑스에서는 100명, 터키에서 91명,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입니다.
시골 아가씨, 하녀, 거리의 여자, 백작부인, 후작부인, 공작부인
귀족의 따님 왕족 등 모든 계급 여자, 모든 스타일,
연령에 상관없이 수많은 여인들이 있습니다.

금발의 여자는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검은머리의 여자는 정숙하다고 좋아하며,
은발의 여인 앞에서는 부드러움을 찬양합니다.
겨울엔 풍만한 여인을, 여름엔 마른 여자를 좋아합니다.
몸집이 크면 당당하다고 하고 작으면 귀엽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이 많은 여자는 오로지 숫자를 채우기 위함이며,
특히 흥미를 가지는 것은 나이어린 처녀입니다.
부자건 가난하건 못생겼건, 예쁘건 치마만 둘렀다 하면 다
귀여워하시는데 그건 여자이면 누구라도 다 좋아하십니다.
아시겠습니까?
레프렐로가 부른 카탈로그의 노래는 이런 내용입니다.

2000명이라는 숫자도 대단하지만 그러고도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돈 조반니가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는 모든 여성에게 욕망을 느꼈습니다.
그의 엄청난 성적 욕망은 모든 여성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시켜 주기도 합니다.
시골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시골 청년과 결혼식을 앞두고 성장한 동네 처녀총각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데
성주인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신랑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성 안에 들어가서
놀라고 들여보내고 체를리나만 남게 합니다.
체를리나와 단둘이 남게 된 돈 조반니는 체를리나를 유혹하기 시작 하는데
"당신과 같은 예쁜 미인이 저런 무지몽매한 집에 시집갈 수는 없다"고
듣기 좋은 감언이설로써 그녀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우리 서로 손을 잡고 저리로 가자. 바로 저기 성이 보인다.
자 가자 나의 연인이여 함께 손잡고 가자…" 이러는데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여자가 있겠습니까? ^^
체를리나가 돈조반니의 유혹에 넘어가는 듯 하는 순간에 순정파 여인인
엘비라의 훼방으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돈조반니의 사탕발림 같은 칭송에 여성은 한껏 고양된 아름다움을 뽐내게 됩니다.
아! 내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성주가 나를 유혹할 정도로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인가?
나의 조그만 키는 사랑스럽고 애교스럽게 사람들에게 느껴지나보다……

자신감이 생기는 겁니다.
돈 조반니의 눈부신 유혹의 기술로 인해 여인은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이처럼 그가 유혹하는 모든 여성에게 새롭게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것은
희대의 바람둥이에게 배울 점이 아니겠습니까?
"돈 조반니 연애의 기술” 이런 책을 쓰면 베스트셀러가 될 듯합니다. ^^
그는 여인들과의 심리전의 대가라 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꿰뚫어 보고 가장 원하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상대의 단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점을 찾아내어 기술적으로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혹이 성사된 후에는 아무 미련 없이 여자를 버렸기 때문에
복수에 의해서 오페라의 끝에 돈 조반니는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런 벌을 받는 돈 조반니의 엽색행각 종지부에오페라를 보는 사람들은 안도합니다.
모든 여자를 다 사랑하는(?) 일이 용서가 된다면
여자의 입장에서도 남자의 입장에서도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상대한 여자를 기록하는 일이나 숫자를 채우려고 집착하는 것을 보면
옛날이니까 오페라가 되었지 성 도착증 환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누군가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물을 정신과 적으로 분류해 놓은 책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조반니는 흥미 있고 재미난 캐릭터임에 분명합니다.
바람둥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여자를 칭찬하고 눈부시게 하는 법! ^^

순이

5 Comments

  1. 벤조

    2009-09-18 at 01:46

    레포렐로 리스트?
    장자연 리스트는 어디로 갔을까?
    오페라보다 더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2. 로빈

    2009-09-18 at 07:02

    돈줘봤니? 참 재미있는 해석이네요.
    첫 부분을 읽으면서 한참을 웃어드랬습니다. ㅋㅋ   

  3. 트레이더

    2009-09-18 at 12:08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4. 소리울

    2009-09-19 at 01:22

    ㅎㅎㅎ 칭찬을 들으면 고래도 춤을 추는 법이니까….

    돈조반니? 자주 돈을 조바야겠습니다.
    이 가을에…   

  5. 포사

    2009-09-20 at 17:54

    돈조봤니 이야기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는 전차칸에선 절대로 돈조보지 않기에 잘 모르나,
    카사노바는 조금은 아는데 괜찮은 머슴아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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