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 꼬인 스텝은 풀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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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허리를 다쳐 수술을 앞두고 있던 시간에 병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노인인데 마취도 해야 하고 척추를 교정하는 일이라
의사선생님은 수술이 아니고 시술이라고 간단한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어머니도 나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초조하고 막막해 있었습니다.
80연세에 자주 마취를 하는 것도 뇌에 충격이 될 것 같고
허리가 온전해 져서 사시는 날까지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수술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되었습니다.

수술실로 옮기기 30여분 전
노크를 하더니 낮선 남자분이 줄자를 들고 들어옵니다.
수술하고 나면 할머니께서 보조기를 착용해야 하기 때문에
보조기 사이즈를 재러 왔다고 설명하는 폼이 신경에 딱 거슬립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수술도 아니고 시술이라서 간단한 일이라고 하셨고
보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으셨기에 이분이 환자 방을 잘 못 찾아
오신 것으로 판단하고 "우리 어머니는 허리 보조기를 착용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없으셨는데 아마 다른 환자분을 잘 못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수술하는 것이 아니고 간단한 시술이라 보조기 착용할 일이 없습니다."
이랬더니 그 남자 분은 우리 어머니 성함을 말씀하시며 분명하다고 합니다.

수술실4.jpg

나도 의아한 느낌이고 어머니도 전혀 설명을 못 들은 일이라
이분이 환자를 착각하고 잘 못 오신거란 확신이 들기도 하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이라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는 것이 힘들고
심리적으로도 잔뜩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라 신경이 날카로운데
무슨 장사꾼 같은 사람이 다짜고짜로 복대를 맞추라고 하면서 줄자를 들이대니
어머니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아서
“보조기를 맞춰야 해도 수술이나 끝나고 하겠다고 수술 후에 다시 오세요”
했는데 수술하고 나면 더 힘드니까 지금 재야한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아무리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여러모로 자유롭지 않은 일이 많은 상태라지만
의료진도 아니고 의료기 판매인까지 환자에게 위압적으로 하는 행동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화가 나는 것 같고 나도 그렇기에 보조기를 맞춰도

주치선생님 설명을 들어보고 수술 후에 하겠다고 해서 일단은 돌려보냈습니다.

왜래 진료중인 주치선생님을 찾아가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보조기를 맞춰야 하냐고 물었더니
수술 후에 허리 지지대가 필요하고 그걸 하고 있어야 허리가 더 편하다고
허리 보호를 위해 보장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병실에 올라와 어머니께 주치의께서 보장구를 하는 것이 수술 후 회복에 도움이 되고
안전하다고 맞추자고 설명을 드렸더니 한마디로 딱 잘라서 "안한다." 하십니다.
선생님이 꼭 하라고 했다고 설명을 드려도 그냥 집에 있는 복대를 사용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 어머니는 원래도 고집이 센 분이시지만
연세를 드시면서 그 고집은 더 굳세어 지져서
한번 안 하시겠다고 하시면 그걸 설득할 방법이 없습니다.

수술 후에
허리 보조기 착용이 필수라고 의사선생님이 보조기를 맞추라고 하는데
어머니께서 안하시겠다고 하셔서 어찌 해볼 방법이 없다고
오라버니께서 설득해 보라고 오라버니께 전화를 했더니
오라버니께서 어머니께 전화로 설득을 하셨지만 "알았다 걱정하지 마라."
이러는 것으로 거절의 의사를 나타냅니다.
어머니께서 큰아들인 오라버니는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아들이 설득을 해도
"그럴 필요 없다! 집에 있는 복대를 하면 되지 뭐하려고 사십 만원씩 하는
복대를 해야 하느냐? 안 해도 된다." 거절을 하십니다.

주치의가 나섰습니다.
"어머니 수술이 아무리 잘 되었어도 한 달 반 정도는 보조기를 착용해야
안전합니다. 무리하시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보조기 맞추실 거지요? 어머니가 주치의 말을 들으셔야지요?
어머니는 제 말을 잘 들으시잖아요?" 이러시는데
"아닙니다. 수술만 잘 해 주시면 그냥 집에 가서 안정을 취하면서 조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집에 있는 복대를 사용할게요."
이러셔서 어머니를 누구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더 비싼 수술도 하는데 (허리에 시멘트를 하는 수술은 보험이 되지 않습니다.)
보조기구 값을 아까워하시다가 잘 못 되면 어떡하시냐고
의사선생님 간호사선생님 오라버니 우리형제가 다 설득을 해도
우리 어머니 고집은 당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엔 40여 만 원 하는 척추 보조기구는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퇴원해서
어머니가 평소에 쓰시던 복대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퇴원하면서 주치의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한번 안하신다면 안 하시는 분이라 강제로 사 드려도
사용하지 않을 분이라 맞추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거역해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고집이 보통이 아니십니다. 연세가 드시면 고집이 많아지는데
내가 설명을 미리 못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집에서 더욱 조심해서
움직이라고 해 주십시오."
" 어머니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술 실밥 뽑으러 다음 주에 오겠습니다."

이 일을 보면서 매사에 순서를 어겨서는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춤을 출 때도 스텝이 꼬이면 영 보기 싫잖아요?
그뿐 아니라 사소한 대화를 나눌 때도 박자가 맞지 않으면 서로 말이 꼬여서
싸움이 나게 되거든요.
수술 후에 주치 선생님이 어머니께 충분히 설명을 하신 후에
보조기 맞추는 사장님이 오셔서 허리둘레를 재고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었으면 보조기를 팔 수 있었는데
보조기 파는 사장님은 병동에 다른 분의 보장구를 맞추러 오신 김에
일거리를 줄여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결국엔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허리보장구는 어머니 성품상 착용하지 않을 것이 번합니다.

어머니께 몸을 새색시처럼 살살 움직이면서 집안에서만 다니시라고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을 했습니다.
연세 드시면서 갈비뼈도 부러지셨지 무릎인공관절 수술을 양쪽 다 하시고
이번에 척추에 시멘트까지 바르셨으니 춤바람 동생이
"우리 엄마는 사이보그야."이러며 놀립니다.

척추가 두 군데나 금이 간 팔십 노인을 간단한 시술로 치료해서
다시 통증 없이 걷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그냥 누워서 지내시다 돌아가실 번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요.
스텝이 꼬이는 바람에 보장구는 안사셨지만
토요일 무사히 퇴원하셔서 집에 오셨습니다.

순이

4 Comments

  1. 벤조

    2009-10-11 at 04:14

    안 하셔도 괜찮으실까요?
    저희 부모님도 90세, 83세 이신데,
    90세 노인의 고집때문에 83세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숨이 막혀 응급실에 실려가셨답니다.
       

  2. Lisa♡

    2009-10-11 at 04:15

    아이고…그 어머님도 참~~~대단하시네요.

    아무 일없이 잘 조심하면서 지내셔야겠네요.

    무탈을 기원합니다..사이보그 할머니!   

  3. 김진아

    2009-10-11 at 08:21

    그래도..보조기는 착용하시는것이 ..

    어찌되었든, 어머님의 몸이시니 움직이는 순간의 느낌도
    더 잘아시는 분 그죠,

    이젠 더이상 아프신일 없이 그대로 잘 아물어가며 쾌차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할머님 화이팅입니다~!!!!
       

  4. 데레사

    2009-10-11 at 09:30

    순이님.
    어머님 잘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미리 보조장구에 대해서 말씀이 있었드라면 좋았을걸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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