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불어도 노천 온천은 즐거워

친구들과 1박2일 안면도로 여행을 떠나기로 예정된 주말!
금요일 저녁부터 천둥과 번개가 치고 바람이 몹시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집니다.

안면도에 가면 가을이 예쁘게 단장하고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설레임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날씨가 협조가 안 되니 이번 여행은
가을을 느끼기보다 친구들의 수다에 빠져있다 오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이야기 하며 노는 것도 좋지만 더하여 아름다운 가을을
조우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아침에 알람 소리에 눈을 떴는데 창문으로 번갯불이 번쩍 합니다.
밤새 오던 비가 그치지 않고 아직도 번개가 번쩍 거리고 있다니….
거실로 나가 창밖을 내다보니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어려운 시간을 마련한 여행에 우산을 들고 가야 한다니
기분이 반감되었습니다.

친구들과 만나 차를 타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자
비도 그치고 날씨는 차츰 깨어나기 시작했는데 바람은 여전했습니다.
오션 케슬이라는 친구네 콘도에 수속을 하고 객실에 올라가니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심한 바람에 바다 물빛도 검고 하늘의 회색 구름도 빠르게 움직입니다.
베란다에 나가려고 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무서워서 얼른 돌아섰습니다.
꼼짝없이 방에 있어야 하겠구나 생각하고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만 봐도 좋다. " 이러며 친구들과 여장을 풀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온천을 해야지? 이런 의견도 있었지만
온천은 노천에 있어서 이렇게 차가운 날씨에 수영복만 입고
노천온천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목만 밖으로 내 놓고 있으면 하나도 안 춥고
재미있다고 수영복을 가지고 가자고 해서 수영복을
가지고 온 친구도 있고 없으면 빌려 입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일단 목욕이라도 하자고 해서 친구들이 우르르 사우나로 향했습니다.

난 2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한 친구가 마음에 걸렸는데
이 친구는 내 수영복까지 준비해 왔습니다.
난 사우나 하는 것이나 씻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너무 씻는다고 어머니께
야단을 맞을 정도로 좋아하지만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꺼려합니다.
수영장이나 목욕탕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수영 같은 것은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수영복도 없습니다.
그것을 아는 친구는 백화점 세일 할 때 싸서 샀는데 커서 못 입는 것이 있다며
나보고 입으라고 여벌로 가지고 왔다고 주었습니다.
이 친구는 수영을 오래 다녔고 유방 절재수술을 받은 후에 왼쪽 팔에
힘이 없어서 재활을 위해서 수영을 계속한다고 했습니다.
밤색 수영복을 선물 받은 김에 온천탕에 들어가 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람 때문에 포기하고 사우나탕에 들어가는데 친구 경이가 마음에 쓰입니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평생을 친구로 지내오고 그가 유방암 수술을 받을 때
친구들이 나서서 돌아가며 간호를 하고 했지만 도려낸 가슴을 친구들에게
보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고
우리도 그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어쩐지 떳떳하지 못하고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목욕할 때 쓰는 비누 타올을 수술 받은 왼쪽 어깨에
슬쩍 걸쳐서 수술한 가슴을 가렸습니다.
목욕탕에서 비누거품을 내어 몸을 닦는 가벼운 비누 타올을 어깨에 걸친 것은
자연스럽고 일단 가슴이 가려지니까 그런 아이디어도 있구나 하면서
그녀의 센스에 일단 안심이 되었습니다.
경이의 남편은 우리 오라버니의 가정 절친한 친구여서 우리 집에 놀러오다가
둘이 결혼을 한터라더욱 가깝고 그 남편이 몇 년 전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경이는 유방암 수술을 받는 등 몇 년 새 모진 고통의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자신을 잘 지키고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서 친구들도 다 애틋하게 여깁니다.
오라버니 친구 부인이 된 남다른 인연으로 나와는자매같은 친구라
늘 마음이 쓰이는 절친한 관계입니다.

친구들이 목욕탕으로 들어서고 보니
" 동네 목욕탕 보다 못하다. 대강 씻고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이러며 실망감을 나타내는데 나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친구 경이가 마음이 쓰여서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씻어볼까 했는데 경이가
"이런 날씨에 노천 온천이 더 재미있는데 온천 하러 나가자."그럽니다.
평소 같으면 이런 날씨에 노천온천이 당치도 않고 내 취향도 아니지만
비누 타올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친구의 제안이라
무조건 그녀의 말대로 하고 싶어졌습니다.
"얘들아 눈이 오면 눈 맞으며 하는 온천이 그렇게 재미있대 잖아?
바다를 보면서 바람 속에 온천 하는 것도 추억이 되지 않겠니?
우리 온천 하러 밖으로 나가자." 선동을 했더니
차로 네 시간씩 이동해서 새로운 것이 없을까 해서 찾아간 사우나에
실망을 하던 터라 친구들이 다 동조를 합니다.
사우나 입장료만큼 다시 더 계산을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경이는 수영복을 입더니 가슴에 젤리 팩 같은 보형물을 수영복 속에 넣고
가슴을 쫙 펴고 자세가 당당해 집니다.
경이의 모습에 다른 친구들도 마음이 편해져서 수영복을 입고
노천온천으로 나갔습니다.
젊은 남녀 두 커플이 온천 하나씩을 차지하고 붙어 앉아 다정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고다른 곳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어 체감온도는 영상 5~6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폭풍 같은 바람이 불어도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목만 내어놓고
친구들과 앉아 있자니 온 몸이 노곤하게 풀리면서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먹구름 속에 간간히 노을이 비치는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얼굴은 찬바람에
귀가 시릴 정도지만 친구들의 우정이 아름답고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경이의 모습도 훌륭했습니다.

토요일 저녁이라 바람만 아니면 온천에 발 디딜 틈도 없겠지만
좋지 않은 날씨 덕택에 우리친구들이 전세 내어 놀 수 있었습니다.
해수탕 사과탕 석류탕 히노끼탕 등 여러 이름을 붙인 탕을
다 경험 하며 돌아다녀도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았습니다.
방에서 우리를 내다 본 사람들은 아줌마들이 웃긴다고 했을 것 같습니다.
저렇게 바람이 몹시 불고 추운데 노천 온천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웃고 떠드는 아줌마들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감기 들려고 무슨 이런 날씨에 노천온천이냐고 싫다고 하는 친구도 없고
유방암 수술을 받고 비누 타올을 걸치거나 수영복 속에 보형물을 넣고서도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현명한 친구의 모습은 누가 뭐래도 좋았습니다.
태풍 속에서도 먹구름 속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즐기는 노천 온천은
온천물만큼이나 따뜻한 우정이 모락모락 피어났습니다.
이런 친구들과 평생을 함께하는 내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순이

1 Comment

  1. 데레사

    2009-10-19 at 05:03

    순이님.
    주말 즐겁게 잘 보내셨군요.

    저랑 같이 수영하는 분 중에서도 유방 수술한 분이 계시는데 이분은
    샤워장에서 아이들이 쳐다보면 "할머니 아파서 수술해서 그래"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곤 해요.
    저보다 약간 높은 연세이시라 굳이 감추시지도 않고 얼마나 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시는지…..

    친구들이 모이면 좀 춥고 힘들어도 떠드는 맛에 또 한 즐거움이 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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