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에 대한 아내의 극약 처방 (발레 박쥐)

자녀를 다섯 명이나 키우는 아내는

아이들과 집안일에 치여서 모양을 낼 틈이 없습니다.
아이들 뒷바라지와 살림살이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남편은 회사에서 돌아와서는 신문이나 뒤적거리고
아내의 눈을 피하고 아내와 대화하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아보겠다고 아내는 애정공세를 펴 보지만 남편은 전혀 뜻이 없습니다.
일에 지치고 언짢은 아내는 잠이 들고 남편은 아내가 잠든 틈을 타서
몰래 침대에서 일어나 집을 빠져 나와 클럽에 갑니다.
부부 사이에 권태기가 와서 남편은 아내에 대한 매력을 상실하고 아내가 귀찮기만 합니다.
남편은 춤추고 노는 클럽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아내는 남편 친구의 도움을 받아 클럽으로 남편을 찾아갑니다.
주부의 옷을 벗어 버리고 클럽여자들 보다 더 야한 차림을 합니다.
클럽에서 신나게 놀던 남편은 새로 나타난 여자가 아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도발적인 매력에 넋이 빠집니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아 버립니다.
남편은 야하고 예쁜 여자에 넋이 나가다 보니 아내라고는 생각지도 못합니다.
아내는 집에서 무릎이 빠져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 세상모르고 자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괘씸하여 남편의 친구와 짜고 싸움에 걸려들게 해서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남편은 감옥 속에서도 변장한 아내의 매력을 못 잊어 그리워하면서 지칩니다.
감옥 속에 갇힌 남편을 지치도록 해서 아내는 남편의 바람기를 거세해 버립니다.

누구 이야기냐 구요?
요한 슈트라우스 음악에 롤랑 쁘띠가 안무한 발레 “박쥐” 줄거리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네 이야기라고 해도 믿겠지요?
부부가 자녀를 낳고 익숙한 채로 살다보면 서로에게 처음 느꼈던 매력은 상실하고
권태기에 들게 되고 아내가 살림에 절어서 구질구질해 보이고
밖에서 만나는 싱싱하고 잘 꾸민 여자들에게 눈길을 돌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야기 거리입니다.
요즘엔 여자들의 사회 활동이 두드러지다 보니 밖에서 만나는 남자가 매력적인 여자들도 많습니다.
코를 골고 등을 돌리고 자는 남편에겐 매력이 반감되고 꽃미남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일입니다.
제가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
박쥐의 줄거리를 지금 우리네 생활과 비교해도 비슷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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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남자의 아내 입장이지만 같은 여자가 봐도 젊은 아내인 여자가
매력 없는 분이 이웃에도 많이 있습니다.
젊은 여자가 아무리 아이가 딸려 있다고 해도 몸을 깨끗이 씻고 머리를 단정히 빗고
옷을 챙겨 입어야 하는데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옷은 목이 늘어나고 헐렁해진 티셔츠에
퍼머 머리는 헝클어져서 산만하고 씻지 못해서 그런지 가까이 가면 설거지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늘 짜증이 잔뜩 나 있고 몸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런 아내가 기다리면 나라도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아내들은 반전이 필요합니다.
발레 박쥐에서도 남편과의 권태기를 멋지게 치료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술이 우리의 실생활에 주는 메시지가 많습니다.

박쥐를 해설해 주던 유형종 선생님은 같은 남자로서 남자가 거세되는 것에 조금 분개했습니다.
발레에서는 지쳐 쓰러진 남편 요한의 등에 난 박쥐 날개를 아내가 가위로 싹둑 잘라버립니다
분개하는 이유는 박쥐 날개를 잘라버리는 것은 남자에게 단순히 날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거세"를 뜻하는 것이며 남성성을 상실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클럽을 찾는 것은 가정을 등지겠다는 것이 아니고
남성성을 유지하는 정도의 가벼운 일탈로 판단할 수도 있는데
왜 로랑 프티는 이처럼 과격한(?) 설정을 한 것일까?
선생님은 안무가의 개인감정이 이입된 것으로 보시더군요.
보통의 아내 입장에서 남편의 바람기를 자를 수만 있다면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싶은 것이 맞겠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측일 뿐이지만
프티 자신과 지지 장메르의 부부 관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1948년 프티의 발레단에 합류한 지지는 원래 이 발레단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듬해에 완성된 <카르멘>의 타이틀 롤은 다른 발레리나의 몫이었다.
그러자 지지는 자기에게 주역을 주지 않으면 발레단을 떠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프티는 하는 수없이 예정을 바꾸어 지지에게 카르멘을 맡겼고 연습 기간 내내
다른 사람에게는 지지가 카르멘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본인에게는
투덜대지 못하며 간신히 준비한 끝에 실제 초연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안무가 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지지의 섹슈얼한 매력이 관객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결국 5년 뒤 두 사람은 결혼했으며 지지는 프티의 안무를 소화하는 무용수를 넘어 예술적
동반자로서, 남편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뮤즈로서 평생을 함께 했다.
어쩌면 지지에게 이끌려 지냈지만 덕분에 나름대로 보람 있었던 자신의 얘기를
결혼 25주년에 부쳐 <박쥐>에 투영해낸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
유형종 선생님의 리뷰에서 발췌

이렇게 해서 2009년도에 본 발레와 오페라 리뷰는 끝입니다.
이제 새로운 오페라와 발레를 보게 될 터인데
개인 적으로 오페라에 점점 흥미가 더합니다.
올해는 더 많은 발레와 오페라를 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면 바그너의 리벨룽겐의 반지를 보려고 합니다.
오페라 중에 가장 긴 17시간짜리 대곡이라 두어 달에 걸쳐서 봐야합니다.
평생에 한번 있을 기회가 될 것 같아 열심히 참석하려고 합니다.

음악에 아는 것도 없고 무식한 아줌마의 오페라 리뷰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는 음악방에 모아 놓았습니다.

순이

4 Comments

  1. 데레사

    2010-01-10 at 23:40

    순이님 글은 언제나 세상을 향해 그렇게 살지 말아라
    하는것 같습니다.
    아무리 귀찮아도 끼끗이하고 살아야 겠지요.

    새로운 한주간도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2. 벤조

    2010-01-11 at 03:31

    순이님,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어요. 리뷰 쓰시느라고.
    차근차근 본 대로 느낀대로…
    나중에 참고 할 일이 있을 때 다시 올께요.
       

  3. her77

    2010-01-11 at 04:49

    감사합니다. 늘 글을 읽으며 입가에 웃음을 달아놓는 귀한 재능덩어리 순이님의
    사랑을 먹습니다. ㅎ   

  4. jhkim

    2010-01-11 at 19:16

    와…………..
    역시 우리들의 순이님
    짱이야요
    최고야요
    감탄연발
    언제인가 세게최고의 3대 테너중 한분이오셔서
    공연도중 워낙 장거리출장에 지처서 나녀온 관계로
    졸다가 아내한테들켜서 아이쿠야
    순이님 더욱건강하시고
    바르신말 참을말하시는그 기상
    더욱 정신채리게 해주이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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