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동반하는 상실과 고독의 시간들

설날인데 당직이라 점방에 늦도록 있다가 보니

술냄새를 푹푹 풍기면서 들어오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술이 취하지 않아도 몹시 까칠한 성품이신데 술까지 드셨으니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마뜩찮은 기분이지만 겉으로는 반갑게인사를 했습니다.

설날인데 어디 다녀오시냐고 여쭈었더니

집에서 쫓겨나서 친구들과 놀다가 술한잔 하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동계올림픽 중계나 보고 한숨 자면서 쉬고 싶었는데

출가한 자녀들이 와서 세배를 마치자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애들이 당신이 있으면 담배도

못 피우고 어려우니까 나가서 놀다가 오라"고 하면서 밀어내더랍니다.

어쩔수 없이 집에서 쫓겨나 친구를 불러내어 놀다가 들어가는 길이시라며

기분이 몹시 나빠 보였습니다.

모처럼 집에온 자녀들이 놀기 불편하다고 남편을 내어 쫒는 아내도 불만이고

세배 마쳤으면 빨리 갈 것이지 추운 겨울에 노인이 거리에 나가 방황을 해야 하겠냐고

자녀들에게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아마 술김에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에게 한바탕 하실 태세로 가셨습니다.

평소에 말씀이 많고 시비가 많은 분이라 싫어했던 분인데

오늘따라 할아버지가 몹시 외롭고 불쌍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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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인구의 증가로 인한 사회제도는 자꾸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지만
노년의 외로움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노인복지는모든 나라에서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 자스코라는 쇼핑몰에 갔는데 물건 구입을 하러 왔다기 보다는
시간을 보내러 나온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게는 연세가 드시면 관절에 문제가 많으시니까 조그만 유모차처럼 생긴 밀것에
몸을 의지해 걸어 다니는 분도 여러명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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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드시면 머리 부분이 더 춥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러신지 머리에는 머플러를 쓰고 아오모리는 눈이 많은 고장이라서
부츠가 아닌 고무장화나 운동화를신고 계셨습니다.
노인들은 고객휴게실에 우두커니 앉아서 두리번두리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어쩌면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졸고 계신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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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인구가 많아진 탓인지 노인용품이 많이 나와 있어서 관심이 갔습니다.
노인용 신발은 가볍고 편안하고 착용감이 좋은 재질로 되어 있고
노인용 영양식과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노인용품 매장을 세 번이나 돌아가면서 구경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노인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가는데 누구라도
실버세대를 겨냥한 물품을 만들어서 판다면 앞으로 사업성이 있어 보입니다.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5~60대 사람들이 7~80대가 되면
우리나라도 심각한 사회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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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전날
어머니께서 장을 보러 가시다가 넘어지셨습니다.
일산장날이기도 하고 설 대목장이라 어머니는 살 것도 있고
구경도 하실 겸 가신다고 하시기에 딱 안가셨으면 좋겠는데
말리기가 뭣해서 눈이 와서 미끄러우니 조심하시라고
당부를 했는데도 언덕길에서 미끄러지셨다고 합니다.

다행히 두꺼운 오버를 입으셨고 옷을 많이 껴입으셔서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근육통이 있어서 파스를 붙여드리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지난 추석 전날에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셔서
병원에 입원하여 시멘트 접합술을 받으셨고 그 전에는 계단에서 미끄러져
골반 뼈에 금이 가서 입원하셨고, 의자에서 떨어져서 갈비뼈가 두 대나 부러진 때도
있었고 무릎은 인공관절을 양쪽 다 하시고 생활하십니다.
동생들이 우리 어머니는 사이보그라고 할 정도로 유난히 골절을 많이 당하시는데
뼈가 약한 노인이라 그러신 가 봅니다.
이번에 넘어지셔서는 어깨뼈가 아프다고 하셔서 또 기브스를 해야 하나 하고
맘을 졸였는데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노인들 낙상사고라는 것이 한참 뛰어 다니는 어린이 사고와 비슷합니다.
어느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대책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
늘 사후약방문이 되는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설장을 보러 가신다고 해서 말리지는 못하고
일이 바빠서 따라 가지는 못하겠고 그래서 혼자 다녀오시다가
미끄러지셨다고 하니 후회가 얼마나 되 던지요.
그냥 집에 계시라고 할 걸
바쁘더라도 모시고 갈 걸
우리 어머니는 왜 당신 연세를 생각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실까?
별 별 생각이 다 드는 겁니다.

그래도 어쩌면 우리어머니가 행복하신지도 모릅니다.
명절이면 찾아오는 자녀와 손자 손녀가 수두룩하고 평소엔 심심할
틈도 없이 성경책을 보시거나 약국 일을 거들어 주십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약국에 나와 계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늘 바빠서 동동거리니까 소일삼아 약포지 끼는 것을 해 주시고
가끔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십니다.
연세 드신 분들과 필요이상의 얘기를 나누시면 (가령 자녀문제라던가)
아슬아슬 할 때도 있고 일하는데 번거롭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혼자
우두커니 집에 계시는 것 보다 점방에 나와서 사람구경도 하고
일하는 것도 도와주시고 하니까 훨씬 활기 있어 보이십니다.
혹시 노인을 혹사하는 것으로 사람들 눈에 비쳐질까 걱정도 되지만
어머니가 즐겨하시는 일이라 굳이 말리지 않습니다.
노인 일수록 몸을 많이 움직이고 손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노년에 동반하는 상실감과 고독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10년 20년 후의 내모습을 그려보며 외롭지 않게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궁리를 해 보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습니다.

70세가 넘을 때 까지 은퇴하지 않고 일이나 열심히 하면 모를까요!

그런데 누가 할머니가 하는 점방에 오겠어요?

심신이 다 건강한 노년은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순이

6 Comments

  1. 단소리

    2010-02-14 at 17:11

    10년 20년 후의 상실감을 갖지 않기 위하여는….
    우리들 사귀면 되는데…우후훗^*^ ..^*^   

  2. 데레사

    2010-02-14 at 20:16

    저도 때때로 나이를 잊어버릴 때가 있거든요.
    어머님도 아마 그러실거에요.
    미끄러운 날은 아무래도 좀 말리셔야 될것 같으네요. 벌써 두번째라니…

    순이님.
    나, 올해 70 이에요. 이제부터 나이는 잊어버리고 살겁니다. ㅎㅎ   

  3. 벤조

    2010-02-14 at 20:49

    그거 아세요?
    순이님 방은 어머니가 계시기에 더 훈훈합니다.
    순이 어머니, 빨리 나으세요~ 다시 장 보러 가셔야지요.
       

  4. 운정

    2010-02-15 at 00:08

    순이님, 걱정 마세요.
    사실 젊이이보다도 생각의 깊이는 노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이담에 순이님이 약국을 운영하셔도,
    지금보다 더욱 많은 손님들이 안심하고 찾아 올 겝니다.

    오늘도 즐겁게 지내이소…
       

  5. Lisa♡

    2010-02-15 at 02:37

    벤조님 말씀이 맞아요.

    동의합니다.

    사업구상에 좀 관심이 갑니다.   

  6. LINK4U

    2010-02-16 at 01:01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마음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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