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광화문 사거리 (템페스트)

일주일에 한번 나가게 되는 광화문 사거리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만납니다.

동화 면세점 앞에서 1200번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면
그 시간이 저녁6시 50분 즈음이라 광화문 근처에 직장이 있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미처 내리기도 전에 사람들이 버스에 타려고 몰려옵니다.
겨우 인파를 헤집고 내려서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는 사거리 건널목에 섭니다.
광화문 방향의 전광 탑에 뜨는 스크린에
생각이 에너지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을 팠다. 이런 종류의
희망을 생각하는 글이랑 화면이 짧은 순간이지만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빠른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호가 바뀌는 잠간을 기다리는 시간도 즐겁습니다.
교보빌딩에는 봄이 되어 새로운 글귀가 걸렸습니다.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짧은 글귀이시지만 내 마음도 환해집니다.
다 웃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반 당신이 반 이렇게 웃어서 아이를 낳으니
낳은 아이가 마을을 적신다는 시인의 발상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집에 와서 원문을 찾아 봤더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운 시냇가/ 장석남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한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건널목을 인파에 휩싸여 건너서 작은 길을 지나면
계단을 오르기 전 책을 읽는 남자와 만납니다.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단정한 남자를 매주 한번 만나게 됩니다.
그는 나를 알은체도 안 하지만 나는 그가 반갑습니다.
그 옆에는 다리아파 쉬는 아주머니가 함께 앉아 계시기도 하고
어떤 젊은 남자는 연인을 기다리는지 연신 휴대폰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며 앉아 있기도 합니다.
책 읽는 남자는 항상 그 자리에서 그 페이지의 글을 읽고 있고
옆자리 풍경은 늘 변합니다.

계단을 바쁘게 올라가 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선생님은 먼저 오셔서 강대상에서 뭔가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모차르트이 마술피리를 공부하는 날입니다.
마술로 태풍을 일으켜 사건을 만들고 수습하는 과정에 사윗감을 찾는 프로스페로
총독의 이야기가 템페스트이고
마술을 부리는 유명한 밤의 여왕아리아가 나오는 모차르트 마술피리입니다.
템페스트는 영국이 국보로 여길 정도로 고급한 영어로 쓰여 진 셰익스피어 글 중에서도
가장 말년에 쓴 글이라 그 언어의 현란함에 혼이 빠질 정도입니다.
마술피리에 관한 글을 25년 전에 남편의 회사 사보에 냈던 일이 생각나서
그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서 사보를 찾으려고 했는데 아직 못 찾았습니다.

마술피리나 템페스트는 마술을 부려서 사랑을 이루게도 하고
사랑을 방해하기도 하는 내용입니다.
어느 절묘한 순간에 마술이 개입해서 원하는 일들이 성사 되는 것은
조금 만화 같기도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일일 겁니다.
꿈처럼 달콤하게 두 시간 강의를 듣고 흡족한 마음을 하고
광화문 사거리에 나섭니다.

늦은 시간에도 여전히 광화문 사거리는 사람으로 분비고 있고 치워놓은 눈들이 구석구석에

쌓여있지만 봄눈이라 맥을 못 추고 녹아내린 눈물이 거리에 질척거립니다.
바람이 부는 광화문 사거리엔 두꺼운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은 행인들이 잔뜩 웅크리고 지나갑니다.
동화 면세점 앞에서 1200번 버스를 기다리며 동아일보 사옥 위에 있는 전광판을 바라다 붑니다.
엘지전자 에어컨 선전이 몸을 더 춥게 하는데
그 밑에 지나가는 자막은 마음을 더 썰렁하게 춥게 합니다.
부산에서 일어난 여중생을 죽인 범인이 검거되었다고 합니다.
오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굶주린 짐승 같은 김기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발을 하지 못해 텁수룩한 머리칼 사이로 보이던 적대감이 가득한 눈….
원치 않게 세상에 태어나 버려진 아이로 양부모 밑에서 자란 불우한
어린 시절이 세상에 대한 혐오로 바뀌어 그렇게 되었을까?
그도 가엽고 죽은 어린 여학생은 더욱 가엽습니다.
초등수사가 잘못 되었다고 경찰에 대한 질타도 만만치 않은데
잠 못 자고 애쓰고 만날 욕만 먹는 경찰도 불쌍합니다.

일산 신도시 방향 버스가 오자 출입문 앞에서 두 청춘남녀가 가볍게 포옹을 한 후
여자 친구를 버스에 태우고 남자는 물러납니다.
그녀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창밖에 있는 남자를 눈으로 찾습니다.
남자는 가까이 다가가 창문에 손을 대 봅니다.
여자도 창문에 손을 대어 유리를 사이에 대고 손을 맞잡습니다.
잠시 후 남자는 겨우 어렵게 창문에서 떨어져 나와 보도위로 올라섭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합니다.
눈빛은 서로를 향해 있고 휴대폰으로 속삭이는 애틋한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저렇게 헤어지기 싫으니까 결혼을 하는 거겠지.
좋을 때다!….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웃습니다.

1200번 버스가 오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몰립니다.
나는 재빠르지 못하다보니 거의 꼬리에 있다가 버스에 오릅니다.
다행히 한자리가 비어 있어서 어떤 남자 옆에 앉았습니다.
신문을 보느라고 어찌나 버스럭 거리는지 시끄럽습니다.
신문을 샅샅이 뒤지지만 원하는 기사가 없어서 그러는지 계속 앞으로 뒤로 넘기기만 합니다.
마침 라디오에서 김범수의 "보고 싶다."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신문 버스럭 거리는
소리에 묻혀 버리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는 가사만 어쩌다 들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랜데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신문을 버스럭 거리다가 지치는지 수색 즘에 오더니
신문을 접어서 발밑에 두고 조용해집니다.
나도 그제야 잠이 쏟아집니다.
버스에서 잠깐 자는 잠, 그것도 참 맛있습니다.

변화무쌍한 광화문 사거리에는 찬바람이 불어도 따스한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찬바람이부는 날도 문화와 사랑, 뉴스와 활기가 있는 광화문 사거리가 좋습니다.

순이

2 Comments

  1. 데레사

    2010-03-11 at 07:58

    순이님.
    아무리 불쌍하다고 해도 용서하기가 쉽지 않은 그 사람,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광화문을 열심히 다니시는군요.
    일산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시기도 쉽지는 않으실텐데…

    버스에서 잠깐 자는 잠은 나도 아주 좋아해요.   

  2. 하자스라

    2011-03-01 at 12:50

    난 서울 나들이할 땐 전철을 탑니다.우선 다리가 길어서 버스 좌석이 전철처럼 편치가 않습니다.183이라.그리고,안국역에서 내리면 인사동 거리도 재밌고요~ 경복궁역에서 내려도 내수동 길 걷다보면 옛 생각도 나고 변화하는 모습도 보고…맘 내키면 경복궁도 들러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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