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에게는 무거움이 명백히 긍정적인 것이었다.
힘겹게 내린 결심은 운명의 소리…“그래야만 한다.”.와 연관되어 있다.
무거움, 필연성, 가치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무게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
이러한 확신은 베토벤의 음악으로부터 나왔다.
우리에게 인간의 위대성은 인간이 자기의 운명을 마치 아틀라스가 하늘을
자기 어깨에다 받쳐 들고 있었듯 받쳐 들고 있다는 데 있다
베토벤의 주인공은 형이상학적 중량을 들어 올리는 역도 선수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베토벤 현악 사중주 op 135 f 장조는 베토벤 최후의 현악 사중주이자
전체로도 마지막으로 작곡된 음악입니다."
이렇게 쓰기는 하지만 내가 다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음악사를 공부한 분들은 베토벤의 작품이 초기인지 중기인지 후기인지
가장 만년의 작품인지 어디서 썼는지가 중요할지 모르지만
대게의 사람들은 들어서 좋으면 그만 아니겠어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베토벤 현악사중주를
묘하게 섞어서 선생님이 설명을 하는데 나는 오리무중입니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도대체 무슨 상관일까?
존재의 의미가 가벼운 것일까 무거운 것일까?
가벼운 것이 의미 있는 일일까? 무거워야 하는 것일까?
이번 학기에 공부하는 것이 "문학과 클래식" 이라
문학작품 하나와 그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음악을 선정하여
비교해서 공부해 보는 시간입니다.
선생님이 공부하겠다고 예고한 문학 작품 중 집에 있는 책을 골라서
대강 읽어보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펴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지금 다시 보려고 해도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입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혼사를 앞두고 잔신경을 쓰는 일이 많은 때는
책에 집중되어 지지 않고 그럴 시간도 잘 없어서
듬성듬성 펴 보지만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활자인가 보다 이런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에 관해
강의를 듣고 나면 조금은 작품에 다가선 느낌이 드는데
이번 베토벤의 음악과 밀란 쿤데라의 문학의 상관관계는 아직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습니다.
뭔가 아주 강렬한 것은 있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고 조금도 가닥이 잡히지 않습니다.
오래전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나에겐 실제 그 소설이 갖는 깊은 의미보다는 오히려 지적 호기심과
약간은 허영심과 과시욕이 그 책을 읽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건 정말로 참을 수 없는 나의 지적 허영심이었습니다.
나는 타이틀에 현혹 되는 일이 많습니다.
제목이 근사하면 어쩐지 내용도 근사할 것 같은 믿음으로
책을 사게 되는데 이것도 경박함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소설보다도 까다롭고 묵직한 내용이라 나도 읽었어…
하고 본 척 하고 있었을 뿐, 아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 주인공 토마스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바람둥이 입니다.
그는 "섹스를 풋볼이고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가지지만
아무런 죄의식도 없고 별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유능한 외과 의사였지만 소련이 체코를 침공하여 공산화 되었을 때
의사의 직업을 버리고 유리 닦는 청소원으로 생업을 바꾸기도 합니다.
지식인의 고뇌를 엿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 소설에 가장 근접한 내용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여깁니다.
제네바에서 4년을 지낸 후 사비나는 파리에서 살았으며 여전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략)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녀 앞에 새로운 길이 열리고,
그 끝에는 여전히 또 다른 배반의 모험이 있다는 생각에,
배반의 순간들이 그녀를 들뜨게 했고 그녀의 가슴에 즐거움을 가득 채워주곤 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 남편, 사랑, 조국까지 배반할 수 있지만 더 이상 부모도 남편도
사랑도 조국도 없을 때 배반할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을까?
사비나는 그녀를 둘러싼 공허를 느꼈다.
그리고 바로 이 공허가 그녀가 벌인 모든 배신의 목표였다면?
물론 지금까지 그녀에게 이런 의식은 없었고, 그것은 이해할 만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려져 있는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는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하게 미지의 것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사비나는 결혼을 거부하고 토마스와 우리식으로 말하면 내연의 관계로 지내면서
또 다른 남자가 있고 직업이 화가인 자유분방한 여인으로 그려집니다.
“정조와 배신”에 관한 정의는 이렇습니다.
사비나를 유혹하는 것은 정조가 아니라 배신이었다.
정조란 단어는 일요일에 숲 너머로 지는 태양이나 화병 속의 장미다발을 취미삼아 그리던,
청교도적이며 시골 냄새를 풍기는 그녀의 아버지를 떠오르게 했다. (…)
배신.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학교 선생님들은, 배신이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것이라고 누차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배신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배신한다는 것은 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배신이란 줄 바깥으로 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사비나에게 미지로 떠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내용도 확연히 알지도 못하는 소설에 더하여 베토벤 현악사중주까지 가세를 하니
이건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태산처럼 무겁게 머리를 짓누르는 느낌입니다.
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보다 노골적으로 재미와 가벼움을 추구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생을,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려고 해도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 조차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내게 열려지는 시간을 사용할 뿐입니다.
무겁고 깊이 있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가볍고 즐겁고 재미난 것만을 추구합니다.
추구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을 말할 때 쓰는 것이지만
난 인생의 가치를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에도 머리를 쓰기 싫으니
인생이 가볍니, 존재의 의미가 뭐니 하는 것은 도무지 따져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대강 뒤적인 책 속에 토마스는 생각을 표현한 부분을 찾았습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이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마치 포로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모든 무기를 내던져야 하는 군인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방기하고자 하는 욕구.
밀란 쿤데라는 체코의 소설가이지만 프랑스에 귀화하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써서 체코를 침공한 구소련의 만행을
글로 온 세계에 고발했습니다.
그가 체코어로 소설을 썼더라면 그런 소설적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소련군의 탱크에 망가지는 조국의 모습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로 만든 "프라하의 봄"이라는 DVD를 구해서 봐야겠습니다.
영화에는 야나첵이라는 체코출신 음악가가 절묘한 배경음악을 넣었는데
영화와 어울려 책으로 읽는 것 보다 훨씬 재미있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문학이고 음악이고 알려고 하면 점점 더 머리에 쥐가 나는 현상을 보면
난 가볍고 경박한 것이 체질인가 봅니다. (자랑이라고 합니다. ^^)
순이
데레사
2010-03-19 at 05:50
누구나 다 그래요.
알려고 하면 점점 더 머리에 쥐가 나는 현상 말에요.
그래도 꾸준히 배우러 나가시는 순이님에게 박수 ^^*
벤조
2010-03-19 at 07:43
어쨋거나,
강의 맨 끝시간에는 왜 베토벤 음악과 이 소설을 결부시켰는지 알게 되실거 아니예요?
동의 안하면 모르게 되는것이고…ㅎㅎ
도치 결혼식 앞두고는 웨딩마치 같은 곡을 공부하면 좋겠네.
방글방글
2010-03-19 at 09:30
열심히 공부해 오신 내용으로
함께 나누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 ^
힘들게 하시는 그 이상으로
좋은 성과가 함께 하시길 바랄게요.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셔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