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대한 작곡가나 소설가 예술가에 대해 그의 작품배경이 된
사생활 이야기하는 것을 즐깁니다.
거기엔 늘 불륜이 존재하고 그 갈등이 에너지원이 되는 것을 봅니다.
바그너의 작품 중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19세기 후반에 작곡된 음악 전체와
겨룰 만큼 비중이 큰 음악이라고 하는데 그 음악이 탄생된 배경에는
바그너의 현실 생활도 한 몫 거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그너에게는 베젠동크라는 돈 많은 스폰서가 있었는데 스위스 시절의 바그너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베젠동크의 아내와 바그너가 불륜의 싹을 틔우는 배은망덕을 범하게 됩니다.
퇴폐적인 신경 조직,예술적인 신경 조직에서 비롯되는 자극이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그너와 베젠동크의 아내가 불륜의 관계인 것을 눈치 첸 바그너의 아내 미나는
바그너가 베젠동크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로채 두 사람의 관계를 폭로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바그너의 고통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바그너는 뒷날 당시의 취리히가 “생지옥”이었다고 썼답니다.
왜 안 그랬겠습니까?
그 고통 속에서 태어난 작품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이다 보니 관계 속에서
잉태되는 고통이 더 리얼하게 작품에 반영 된 것은 당연한 일이 되겠지요.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부덴브르크 일가"와 "마의 산"을 써서 노벨 문학상을 1925년에 받았습니다.
그의 길고 형이상학적인 문체는 권위적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독일은 물론 세계 소설 문학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합니다.
특히 젊을 때부터 바그너와 니체에 빠져 그들의 음악과 사상을 작품에 적극 인용했고
많은 음악가와 깊은 교감을 나눴다고 합니다.
특히 바그너에 심취하여 오페라 "로엔그린"에서 "키 작은 프리데만씨"를
"브덴부로크일가"는 "지벨룽의 반지"를 페러디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트리스탄"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가져와 아예 제목마저 바그너의 작품으로 부터
따왔습니다.
줄거리는 숙모이자 왕비가 될 이졸데를 사랑하게 되는 콘월의 기사 트리스탄의 비극을 모방한 것이자 ,
바그너와 마틸데 베젠동크의 불륜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만이 바그너로 부터 가져온 것은 그 이야기의 내용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그너 음악의 핵심이랄 수 있는 라이트모티프를 자신의 문체로 만듭니다.
라이프모티프는 등장인물 하나하나 그리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낱낱이
개별음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개체가 하나씩 둘씩 짝을 이루며 드라마를 이루는 것이 바그너의 악극 개념입니다.
토마스 만은 "여인의 이마에 드리운 연푸른빛을 띤 실핏줄"을 라이트모티프로 삼아
그 실핏줄의 변화를 미묘한 감정에 반응하면서 긴장감을 조였다 풀었다 합니다.
눈썹위로 기묘한 느낌을 주는 연푸른 색깔의 작은 실핏줄이 병적인 느낌을 강조하기도하고
도드라져 나와 섬세하고 달콤한 표정에 긴장감과 조바심을 주기도 합니다.
실핏줄이 팽팽히 당겨지는 것으로 긴장감을 더욱 긴박하게 조성하기도 하고
파리한 실핏줄이 갈라져 보일 때는 관계의 결별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라이트모티프가 모여서 하나의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모티프가 모여 음악이 되는
것과 흡사한 과정입니다.
음악을 풀어서 글로 쓰는 대단한 글쟁이입니다.
나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지만
한글 맞춤법이 늘 어렵습니다.
띄어쓰기 문장부호 시제 이런 것이 정확하지 못하니까 글쓰기가 자연 서툴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이나 내용을 재대로 서술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습득하고 경험한 것으로 고집처럼 사용되는 언어와 더불어
많은 오타가 나를 비참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글을 쓴 후에 열심히 수정을 하고 용어를 고치고 하면 좋겠는데
쓰고자 하는 욕구에 비해 잘 못 사용된 언어를 수정하는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는 편입니다.
바쁘게 일하다가 자투리 시간이 나면 자판을 두드려 뭐라도 쓰게 되는데
그 쓴 것들을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있어서 수정을 해 보면 그건 처음에 생각했던,
아니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느낌이랑은 매번 다른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유치하고 미숙한 문체들을 그냥 한두 번 수정으로 마치는 것은 내가 게으른 탓도 있고
자꾸 손대려고 하면 본래의 느낌이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 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글이 늘지 않는 것은 사유가 치열하지 못한 탓입니다.
하긴 이것도 게으름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 좀 더
신중하고 깊은 생각을 한다면 좋은 글을 써 볼 기회가 있을까?
그런데 나는 호기심이 많고 재미를 찾고 기록하는 것을 말하는 것 보다 좋아하고
문자를 사랑하지만 갈등의 폭은 그다지 크지 않은 성격이라서
치밀한 글을 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 가장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서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렇지만 일반 범인이 흉내 낼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갈등을 포함한 위대한 사랑이 대작을 낳을 수 있었겠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
정직하고 건강하며 착실한 사람은 글을 쓰거나 연기를 하거나
작곡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맞는 말인가요? ㅎㅎㅎ
순이
SunLim
2010-03-25 at 14:48
이웃 동네에서 만나뵙는 반가움도 있습니다.
저도 써놓은 글을 다음에 다시 읽어보면 반토막은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대단하신 강인한 필력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 드립니다.
뽈송
2010-03-26 at 01:19
맞는 것 같습니다.
않는 게 아니라 잘 못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는데…
데레사
2010-03-26 at 06:47
ㅎㅎ
정직하고 건강하며 착실한 사람은 글을 쓰거나…. 않는 다고요?
그럼 우리 모두 같은 과의 사람, 정직하지도 않고 착실하지도 않고
건강하지도 않고 그렇나 봐요.
맞는것 같기도 하고 틀리는것 같기도 해서 웃어 봅니다.
허클로버~
2010-03-26 at 18:49
글이 너무나 좋은데요 나중에 모아서 모아서 책을 내셔서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
하게 뎁혀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대평원
2010-04-10 at 08:56
좋은 글이 행복만을 주는건 아님을 안지도 어언….
절망감을 주는 글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길이 있기에 나섭니다 오늘도….